몇 날을 후두둑 거리는 빗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습니다.
사실은 빗 소리 때문이 아니라 살아 온 날들의 무게 때문 이였을 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작스레 세월이 지난 것은 아닐 것이 분명 한데도 전 지금 이자리가
낯설고 제 삶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 준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지요.
하늘이 높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고추 잠자리들이 공중에서 비행을 하고
매미가 가는 여름을 즐기기 위해 목청를 한껏 높이는 것을 보면 분명 가을이
그리 멀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 이른 코스모스가 피여 있기도 하고, 달맞이 꽃이 만발 한 것을 보면 가을은
머지 않아 우리 곁에 달려와 여름 동안 지치고 고단했던 몸과 마음을 싱그런
바람으로 감싸 안아 줄 것입니다.
해마다 가을이 오려고 하는 이 맘때가 되면 가슴 아리게 어머니가 그리워 집니다.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야 계절을 가리며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계절 보다 그립고 가슴이 아려 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어머니께서는 먼 길을 다녀오실 일이 생기셨습니다.
제 둘째 오빠댁이 부산 이였는데, 아마 어린 제가 알기엔 큰 일이 생긴 듯 했지요.
개학을 앞두고 있으니 데려 갈 수도 없었을 테고, 혼자 두고 가자니 입이 짧아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절 남의 집에 맡기고 갈 수도 없으셨을 테고...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꼭 가셔야 하는 일이 였으므로 전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아마 일주일은 족히 지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날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보내던 전, 버려 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이제 무엇을 해서든 혼자 버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첫째는 밥을 잘 먹어야 하고, 두번째는 혼자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하고...
전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세계에 대하여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절 절대 버리지 않으 실 것이라고 확신을 하면서도, 서러웠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잠이 들지 못하고 몇 날을 보냈고, 절 버렸을지라도
어머니를 미워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절 버리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 실 것이라고, 어린 마음에도 혼자 고생 하시는 어머니가 늘 불쌍 했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어이 없는 일이고, 있을 수도 없었던 일인데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코스모스가 낮은 언덕에서 하늘 거리며 웃음을 흘렸고, 개울가 월견화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웃던 날. 서쪽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 들기 시작하며 하루를
닫는 시간에, 그립고 그립던 어머니께서 환한 웃음을 날리시며 제게 오셨습니다.
저도 어머니도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서로 알 수 있었지요.
절 혼자 두시고 가슴 조리셨을 어머니의 마음과 버려졌을 지도 모른다는 제 두려움을
눈에 글썽이던 어머니의 눈물이 노을에 반사되어 루비처럼 붉게 보였습니다.
눈은 우셨는데, 입은 웃으셨지요.
산다는 것은...
어머니 나이만큼 되었을때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전 어머니가 주셨던 애틋한 사랑을 제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지
아이들이 제 나이가 되어 어미를 추억 할 만한 좋은 기억이 있을까를
우리들은 지금 좋은 어머니 인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때는 아닐 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