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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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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당신의 세가지 이름


BY allbaro 2001-05-29

사랑, 당신의 세가지 이름

햇살이 하늘과 맞닿은 산꼭대기 쯤에, 기사의 창을 찔러 넣고 억지로 하
늘과 땅사이를 갈라 새벽을 밀어 넣었으므로 갑자기 다가온 아침이었
습니다. 그렇게 태양이 하늘과 땅끝으로 날카롭게 빛나며 눈을 뜨기 어
렵도록 길게 뻗고, 땅 아래로 아득히 가라앉는 침대위의 사내는, 나직
히 중얼거리는 Chet Baker속에서 둥실거립니다. 때로 AM7:00은 타버
린 재조각을 다시 끌어 모아 불씨를 지피는 것 같은 시작입니다. 언젠가
는 다 타버리고 없는 그래서 얼굴에 재를 뒤집어 쓰고 다시는 깨어 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그리하여 영원한 시작이 되는 어색하고 불안한 출
발의 날이 오겠지요... 그저 두려움만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든 새로울
것 없는그런 시간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상한 이 아침에, 가슴속의 화석이 되어 버린것
같은 당신의 이름을 어제로 부터 이어진 덜깬 무의식의 내가 중얼거리
듯 불러 본것은 이즈음에 일어나 가장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말
두 안되는 일이거든요...

안녕하세요? 그렇게 당신이 윤곽 뚜렷한 입술을 열구 하얀 치아 사이로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었을때, 아마 이제 부터는 절대로 안녕하거나 절
대로 안녕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뇌의 이곳저곳을 복잡하게 스치
느라 잠깐 말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습니다. 한참후에 골라낸 말이, 예
쁜옷이군요... 아... 네~ 이거 아빠가 입학기념으로 사주신 것이예요.
그렇군요. 상당히 안목있으신 분인가 봐요. 어머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어쨋든 당신은 초생달같은 미소루 다가오므로 나의 가슴은 온통 흔들
려 버린 어지러운 '설레임'이 당신의 첫번째 이름이었습니다. 참 예쁜
이름이군요. 그래요. 자주 부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찬란한 당신의 젊음에 둘이 함께 말려들고, 이세상 끝까지 함께 하
겠다는 치기에, 덩달아 그러자!라고 생명을 덜어 답을 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였던 우리는, 시간과 기다림의 더 깊은 의미를 알
지 못하고 서로를 소모 하였습니다. 기다림으로 소모 하였고, 미움으로
소모하였고, 그리움으로 한방울의 남은 정열까지도 다 소모해 버렸습니다.

한때, 이세상 누구보다도 아끼고 살피고, 무엇이든 가지고 있는 것
을 모두 주고도, 늘 가슴벅찬 행복으로만 남았던 기억이었네요. 이제는
때로 나무그늘 아래 벤치와, 정물이 되어 숲의 소란스러운 잎사귀들과
태양으로 만들어진, 명멸하는 흙길 위의 반짝임에 흐릿한 눈빛을 두며,
나도 모르게 4개의 담배 꽁초를 호주머니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전지
가 닳아버린 장난감 인형으로 희미한 램프마저도 꺼져버린 절대정지
시간을 폐에서 걸러진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보냅니다. 그러므로 당신
의 두번째 이름은 태양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던 '찬란함'이었습니다. 분
홍색 원피스의 베르사체 문양으로 라인 깊은 짙은 초여름을 선사한 눈
부신 당신입니다.

때로 저주스러운 것은 지나친 영민함으로 당신을 보아버린 눈, 당신을
안아버린 팔, 이 행성의 구석구석 푸른 기억으로 채색이 되어 숨을 곳
마저도 없는, 당신을 알아버린 나의 운명입니다. 당신의 사랑스러운 모
습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당신이 한때 사랑에 빠져 버린것도 아마 당
신을 탓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잠시나마 우리를 한번에 얽어 버
린 장난기 심한 운명에게 감사하던 그입으로 다시 그를 탓할 수는 없기
에 차라리 당신을 놓아보낸 나를 다시한번 책망하여 봅니다. 그때 그시
간에 왜 그곳에 있었냐고 물어 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름다움이 내겐
지나친 것임을 어쩌면 그렇게도 알지 못했냐고도 물어봅니다.

뭐라고 말을 할까요? 내가 스스로 원망하는 나에게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당신이 알려주지 않은 이별로 하여 나는 오늘도 답을 찾지 못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리움'이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얼룩진 세
번째 이름으로 지금까지 늘 우울한 한사내의 습기 가득한 눈동자와 함
께 입니다.

은빛 분무기가 달린 초록색 호스로 무지개가 아름다운 아침 이었습니
다. 조그만 텃밭에 기대와 생명의 물을 주다가 지난밤 어린이가 새털같
은 발자욱을 남긴것을 보았고, 고추모종이 땅에 누운것을 보았습니다.
부목을 대고 고추모를 세워 보았습니다. 아마도 살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저녁에 다시 무
지개를 앞에 두고 타원형 물줄기를 따라 그 고추모종 앞에 섰을때, 파릿
한 잎줄기가 다시 하늘을 보고 당당히 작은 어깨를 펴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가장 격려가 필요한 시기 ,인생의 좌절을 누군가가 어루만
져 주었다면... 그렇게 표류할때 등을 보이며 떠난건 당신이지만, 이유
는 있었을것 입니다.당신은 내게 부목이 아니라 부담이 될까를 생각 하
셨나요? 그럴리가 없어요. 라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것을 스스로
알아차린 것은 뭐라고? 하며 곁에 있던 형님이 다시 물어본 때문 이었
습니다. 아니요. 그냥이요. 혼잣말이요. 몇년이고 계속되어온 눅눅하게
습기찬 혼잣말이요...

사랑해요.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래서 무서워요. 많이 두려
워요. 그렇게 말하던 당신을 기억하면 아직도 페라가모의 향이 코끝에
머뭅니다. 당신이 내게 준 사랑이라는 단어는 늘 그 향기의 느낌으로 다
가옵니다. 조금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가오다 때로 멀어지다 그렇게
남습니다. 그렇군요. 인간의 언어는 주는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받는
사람의 언어이군요.같은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크기와 심성과 상황
에 따라 늘 달리 들리는 것이로군요. 해서 말을 아껴야할 필요를 느낍니
다. 한마디 말을 하고 두마디 이유를 대야하고 전해들은 수 많은 사람에
게 해명을 해야할 바다 밑바닥의 파랗게 얼어버린 시간이 올지도 모른
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당신과의 언어들이 그렇습니다. 그렇지요?

언어가 조금만 불편하였다면, 당신과의 오해는 더욱 줄어들고 늘 할말
만 하고 살았던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줄을꼬아 매듭을 지어 편지를
주고 받던 시기에도 과연 미사여구를 총동원하는 따위의 연서가 가능
하였을까? 몇 마디의 말이 허공으로 떠난뒤 ,그 꼬리를 잡지 못함을 아
쉬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생긴 것인지... 잘가! 라고 뱉듯이 말을 하
고 잘가지 못한 것은 결국 나였다는 자괴감이 날마다 가슴을 파고들고,
저며들고, 우울한 밤, 허공으로 떠나는 담배연기로 스며들고...

오늘 세번 그렇게 당신의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비오는날 아스팔트 위
의 동그랗게 무지개 지던 기름방울같이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사전에도, 영화에도 음악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유명사인 당
신의 이름 석자는 정말로 단어가 맞나요? 그런가요? 늘 조그맣게 라도
소리내어 이름을 돌아 보노라면 Dark Blue의 얼룩이 가슴에 덩어리진
채 그대로 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이름은 잠시 머무른 나무그
늘 아래의 바람 한점 일렁임에도 후우~ 한숨을 공간으로 밀어 올리는
서늘한 눈매의 절대 명사 입니다. 어떤 것과도 상대적인 비교가 가능하
지 않은, 당신과 내가 그토록 자주 사용하던 사랑한다던 단어는, 아직
사전에도 영화에도, 소설에도 귓가를 스치는 Jazz 에도 그대로 입니다.


문1)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 하는지 아래에서 고르시오...( )

1. 매우 그리워 한다.
2. 그립다.
3. 그저 그렇다.
4. 생각하고 싶지 않다.
5. 제기랄 이따위 질문이 있냐?

초승달이 붉은 오늘밤, 나는 물기어린 빈 웃음을 짓고 있답니다.


한 세시간 쯤 한마디도 안하고 살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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