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날 나는 그를 만났네>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마구 자극하는 오월, 그를 처음 만났다. 조금은 두려움으로 다가갔지만 그는 겁내지 말라는 듯 그저 조용하게 손을 내밀었다. 내미는 손을 처음 잡던날 내 가슴은 마구 콩당거렸다. 첫날의 두려움과는 달리 한 번 두 번 그를 대할때마다 서서히 빠져드는 날 보았다. 원래가 한 곳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는 나. 십대에는 친구에게, 이십대는 이성에게, 그리고 삼십대는 나의 아이들에게 빠져 있었다. 어느 곳이고 빠져 있으면 나는 아예 다른 것은 없는 양 오직 그 곳에만 있었다. 그래서 이성을 사귈 때에도 양다리를 걸치는 일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되면 사귀던 사람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꼭 헤어져야 했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살림 재미에 푹 빠져 살던 범생이에게도 드디어 반란이 온 것이다. '과연 나란 누구인가" 의 물음이 올 때는 내 품을 조금 벗어난 자식과 공사다마한 남편으로 조금은 심적으로 외로움이 오기 시작한 때. 나는 바로 그 시기에 그를 만난 것이다. 그는 질투하는 법이 없이 나를 모든 사람에게도 감추지 않고 보여주었으며, 결코 독점하려 들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통해, 그 동안의 가정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놀라움과 환희의 날들이었다. 어느 날 부턴가 나는 그에게 온전히 빠져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집안 청소와 설겆이를 재빨 리 해 놓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를 만나고 있으면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그를 만나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는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그의 지식을 얻어 점점 유식해지고 그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의 교제도 많아졌지만 우리 집안은 더 이상 예전의 범생이 시절의 집이 아니었다. 창틀의 먼지는 쌓여가고 냉장고는 비어가고 아이들의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내 손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더 이상 내 입에서는 잔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전화 안 한다고 심통도 부리지 않았다. 나는 이웃집 사람들과의 왕래도 끊었다. 내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지만 내 생각은 오로지 그한테 가 있었다. 급기야 나는 그의 집에 내 방을 하나 얻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나는 그의 발목에 완전히 잡혀 버렸다. 아이들과 남편이 잠자리에 들면 슬며서 빠져나와 그와 시간을 보냈다. 밤새도록 있어도 싫증도 나지 않고 피곤한지도 몰랐다. 내 나이 36, 이 나이에 이런 열정이 있을까 싶었다. 늦바람이 무섭다란 말이 딱 어울렸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족을 위해 말없이 일해 주는 남편과 귀여운 내 자식들 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아침상을 위해 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위해 집앞 공원에도 나가 그 동안의 미안함을 보상해 주고자 작은 노력을 했다.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서 벗어나는 연습을 했다. 찾아가는 횟수를 줄이고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면서 말이다. 창틀의 먼지를 털어내고 시장도 가서 반찬거리 사들고 오고 아이들 잠자리에 동화책도 읽어주며 조금씩 내 자리를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젠 난 그가 필요할 때만 가고 있다. 정보가 필요할 때,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내 방의 정리가 필요할 때 등 . 이제는 그가 날 아무리 불러도 내가 가고 싶을 때만 간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나 한테는 필요한 존재이기에 완전히 떨쳐 버릴 순 없다.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모자라 내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려 들었던 그의 이름은 바로바로 컴퓨터 하고도 인터넷이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