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부전동에서 수영동으로 이사를 하여서 주일날은 새로운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높은 탑위의 십자가는 그윽한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고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 중에 난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매우 큰 눈과 큰 키로 한 시도 떼지않는 것이다.
그 남학생은 그 때부터 주위의 모든 사람을 동원해서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거절 했다.
내가 예기하는 상대마다 찾아 다니면서 접근 금지를 요청하였고
만나 주지 않자 드러 눕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도 그의 애절한 편지는 친구로 부터 전해 졌지만
나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거절하게 되었고
급기야 그 남학생을 좋아하는 여학생으로 부터 질타와 미움을 받게
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도저히 그 에게로 가지가 않았다.
중3이 되어서 연합고사를 보는날 교회 임원인 우리는 엿을 돌리게 되어서 다 돌리고 나서 그 남학생은 나에게 엿을 건넸지만 난 거절하니
그는 그 엿을 던지고 울면서 뛰어 가는 것이다.
연말이 되어서 망년회를 하려고 난 친구와 교회로 가는 길에 그 남학생은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난 친구를 보내고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 그는 진정으로 자기가 싫으면
성경책에 손을 얹고 싫다고 얘기하라는 것이다 .
난 그렇게 했다. 그리고 갑자기 날아오는 따귀에 난 울었다.
그 일로 소문이 온 교회와 지역에 퍼져 어느 누구하나 나에게 접근하는 남학생은 없을 정도 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남학생은 언제나 나를 먼저 보내고 그가 다른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축제가 매년 있었다.
그 남학생은 매년 축제에 왔다는 것을 우연히 찍힌 사진 속에서 발견 하게되었다.
그의 부모님도 독자인 그 남학생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애원 했다, 한번만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고3이 되었다. 이제 부산을 떠나야만 한다.
나의 진로는 서울로 결정이 나 있었고 또 찾아온 마지막 축제날
그 남학생은 학교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고
우리는 나의 학교에서 그의 학교까지 걷고 또 걸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거의 7년을 나만 바라본 그 남학생에게 난 지금에 와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의 상처입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 있든지 나를 원망하지 말기를 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