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단편
제목 : 우리사는 이야기(4)
글 : 두리사랑 (심 용구)
부제: 세월을 잃어버린 나의 아버지( 1 )
잠깐 눈을 붙이고 선잠을 한시간 남짓 잤나보다.
딸램이가 휴대폰을 들고와서 전화왔다며 전화기를 건냈다.
"누구야 이시간에"하며 시간을 보니 밤 12시30분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는데 어머니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야~~엄만데 어디쯤 오고있냐?"하고 걱정담긴 목소리로 물으셨다
"아고~~어머니 여직 안주무시고 기둘렸어요?"
"출발할때 전화하고 출발한다니까 왜 기둘리셨어요"
토요일이라 차가 밀리니까 저녁늦게나 출발한다고 했는데
밤에 출발한줄 알고 걱정돼 기둘리셨나 보다.
"죄송해여 걱정끼쳐드려서 아직 출발안했구요"
"지금 준비해 출발할께요 어머니"
"천천히 안전운전해 갈꺼니까요 기둘리지 마시고 주무세요"
하고 전화를 끈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부모님 소지품을 챙겼다.
내려가는 길에 지방출장도 겸하기로하고 출장가방과
작업복도 챙기고 제법되는 부모님의 살림들도 차에실고
새벽 2시에 2.5톤 탑차를 몰고 한적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꽉찬 둥그런 달이 별들속에서 말벗이 돼주며 길안내를 해주고
싱그런 밤바람은 차창문으로 힘차게 들어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차오디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번 시골행의 여정은 더욱 가슴이 설래이며 기쁨으로 가득했다.
내일은 아버님대의 소망이던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에 산일을 한다
아버지대에서 따로 산을 매입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셨었다.
그곳에 상석과 비를 세우고 망구도세우고 잔디와 나무도 더심고
막내작은아버지가 주관해서 하시지만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또 장손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장손으로서 참여를 한다.
지금은 두분다 크리스챤으로 신앙인이 되셨지만 자손들에게
뭔가 남기고 싶어 열망을 하셨던 일이기에 더욱감동이 인다.
꼭 신앙적인것을 떠나서도 깔끔하게 단장을 해놓으면 명절이나
조상을 찾을때 가족들끼리 모두 모여 하루를 편히 보낼수있는
의미를 둔다는 깊은 뜻도 느낄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올해 80세가 되셨다.
어머니는 69세가 되셨고 15살에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셔서
늦장가든 아버지와 54년동안을 살고계시고 딸넷 아들넷 8남매를 두셨다
내위로 누님이 3분 계시고 큰아들인 나를 낳고 나서야
어린나이의 모진 시집살이를 좀 면할수 있었다 하신다.
늦장가든 아버지에 남존여비사상이 강한 집안에 시집와서
어린나이에 내리 딸만 셋을 낳으셨으니 고모님들의 억센 시집살이를
다 감내하느라 젖은 옷고름을 이루 다 말씀하실수 없다며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시면 눈에 눈물을 한가득 담으신다.
시골집에서 두분이 사시는게 편하시다며 모시겠다는 자식들의
성화를 한사코 거부를 하시던 부모님에게 4년전에 반강제적으로
우리집에 모시기로 하고 2년동안 서울 우리집에 모셨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만약에 두분중 한분이라도 어느날 돌아가시면
이 자식한테 부모봉양한번 못하게 해서 평생을 가슴에 못박으실
작정하셨느냐고 집사람과 같이 억지 때를써서 모시고 왔었다.
하지만 평생을 농사를 지으시면서 땅과 더불어 사시던 두분은
우리가 아무리 잘해드린다고 해도 양이 안차시는지 결국 2년만에
서울을 떠서 시골집에 다시 내려가시겠다고 성화를 하셨다.
그럼 봄 여름하고 초가을까지만 시골에 계시고 그담엔 또 우리집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하고 조건부로 다시 시골집에 가셨는데
벌써 만 2년동안이나 시골에서 살고 계신다.
새벽2시에 출발하여 정읍집에 도착하니 아침 6시였다.
두분은 이미 일어나셨고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해놓구 계셨다
거의 매달 출장일정에 맞춰 부모님을 뵙지만 같이 밥상에 앉으면
의례 눈물이 나와 항상 청승을 떤다.어머니는 나무라시지만
반백으로 온통주름뿐인 두분을 뵈오면 눈물이 앞을가려 한번에
밥을 다 먹지못하고 꼭 나눠먹게 된다.
아마도 나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거도 있겠지만 시간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바라보고 뒷수발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아린마음에
그렇게 울어버리고 만다.
천성이 농군의 아들로 6남2녀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위의 두 형님마저 젊은나이에 보내시는 아픔을 감내하며
실질적인 집안의 어른으로 부모노릇을 묵묵히 하며 사셨던 아버지.
한복이 잘 어울려서 평생 한복만 입으시고 막걸리라도 거나하게
드시면 여지없이 춘향전의 사랑가와 육자배기를 간들어지게
부르시는 낙천적이며 기분파이셨던 젊었을때의 아버지.
논에서 일하시다가도 한복바지를 둘둘말아올리고 흰고무신에
흙이 잔뜩묻어 있어도 아랑곳하지않고 자식이 보고싶어 왔다며
4km나 되는 국민학교에 오셔서 담임선생님과 막걸리잔을 주고받으며
선생님과 두분이 어깨동무하며 팔자걸음을 걸으시던 아버지.
소풍갈때면 누나들과 동생들은 5원 10원씩주던 용돈을 나한테는
100원씩이나 항상 쥐어주시고 아무리 바빠도 넌 공부하라고 하고
일도 안시키고 누나들만 게으르다고 닥달하시던 아버지.
우리 아들은 나중에 한자리 할꺼라는 소망에 늘 삶의 모든걸 걸고
힘있게 사셨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셨다.
국민학교에 장학재단이 설립돼서 한해에 졸업생한명에게 그당시
15000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남강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내가받았었다.
그리고 근처의 중학교에도 시험봐서 3년장학생으로도 합격하였는데
동내어른들이 정읍시내로 공부를 시켜야 된다고 해서 방향을 바꿔
정읍에 있는 중학에 진학을 하고 장학금 일부를 등록금으로 내고서
기분좋게 술한잔 하신 그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는 쓰러지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시간과 세월을 잃어버리셨다.
원인은 고혈압이었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6개월동안 중환자 생활을 하시며 그 많은 병원비에
가산은 기울고 결국은 치유불가와 뇌막염이라는 병명과 함께
장례준비를 하라는 통보와 함께 집으로 모셨었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시간은 멈추고 어머니의 눈물겨운 간병은
시작되며 우리 8남매는 어려운 학업을 해야만 했다.
별 비방만 있다하면 천리를 마다않고 달려가 구해서 먹이시고
그 와중에 나쁜사람들에게 비방약이라고 사기도 당하며
눈물겨운 어머니의 간병은 효험을 보지못하고 아버지는 차도가 없이
식물인간처럼 그렇게 누워만 계셨다.
그렇게 2년여를 지나고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힘든 삶을 의지하고 기도를 하기시작하며 우리들을 다독여주셨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정성인지 점차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며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되기까지는 근 10여년이 흘렀다.
우리들은 고학하며 어렵게 학업을 진행했고 아버지는 어디 육신의
결함이 없이 일어나시고 다만 시간의 흐름을 멈추인체로
맑지못하는 정신으로 살아가셨다.
모든 사고를 쓰러지시기전의 가치기준과 사회모습으로 대화하시는
아버지로 인해 간병의 고통은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우리아버지는 내가 조합장이 되신줄 알고 청탁을 하신다.
(그때 당시는 군수보다 조합장이 더 권력이 있었다 한다)
연세가 팔순이 넘으신 지금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시며
매식사도 일꾼들 밥처럼 많이 드시고 소화도 잘시키시고
자식들이 모이면 기분이 좋으셔서 사랑가와 판소리를 들려주신다.
매달 집에 들리거나 전화시엔 목소리로 나는 아버지의 건강을 첵크한다
어느때 집에가면 목소리가 힘이없어 보이면 영락없이 감기나 어디가
편찮으실때다.어머니는 큰 목소리때문에 아직도 주눅이 든다고
나무라시지만 싫지는 않으신 표정이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좀 유별나시다.
아직도 멈춰버린 기억속의 젊음이신지 어머니가 안계시면
온밤을 하얗게 지새신다.그래서 서울에 행사가 있어도 어머니는
하룻밤도 겨우 지내고 시골에 가셔야 된다.
우리집에 모실때도 부모님방에는 노크하고 문을 열어야될정도로
주무실때도 두분이 꼭 껴안고 주무시고 낮에도 두분만 계시면
꼭 신혼부부들처럼 잼나게 애기하고 스킨쉽도 하시며 지내신다.
그런 부모님을 뵈올때면 나는 언제나 불효자가 된듯해 눈물짓는다.
사업한답시고 잘안될땐 소홀하고 같이 모시고 살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기대에 부흥한 권력을 가진사람도 못된 평범한 자식이되어
부끄럽기 그지없다.
40이넘은 자식이 온다하면 주무시지도 않고 올때까지 걱정하며
기다리시고 자신들이 드시지않고 냉장고에 아껴둔 고기며 생선에
잔치상처럼 차려주는 부모님을 뵈오면 나는 죄스러움에 늘상
눈물밥을 먹는다.
온전히 건강하시지는 않지만 하늘아래 계셔주셔서 감사하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불효의 모습이지만 뵐수 있어 감사하고
현실에 맞진않지만 내편에서 말씀해주시는 목소리를 들을수있어
감사하고 어머니와 해로하시며 계서서 더욱 감사할뿐이다.
나는 이 감사할수 있는 마음이 오래도록 되기만을 기도할뿐이다.
2002 . 4 . 28 정읍 시골집에 들르며
가정의 달 5월 어버이날이 있는 주일을 맞아 부끄러운 나의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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