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몸을 담고 있는 타향을 살만한 고향으로 가꾸고 계시는 金智相 선생님의 글을 올립니다.
장마철이 닥치기 전에 꽃밭에 김매기를 끝낼 작정으로 손길이 바빴다.
그러다가 나는 풀 뽑는 일을 멈추고 문득, '내가 무슨 자격과 권리로 이 어린 생명을 뽑아 죽이고 있는가. 이들도 제 철을 맞아 땅 위로 고개를 내밀고 살아보겠노라고 하는데 왜 잔인하게 문질러 버리는가. 이름 있는 화초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은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 나는 잡초가 마치 기생충처럼 여겨져 사정없이 뽑아버리고 있다. 잡초 때문에 영양분을 빼앗겨 화초의 성장이 방해가 된다는 생각만 했지 서로 의지하고 지지대가 되어준다는 생각은 뒷전이었다. 잡초를 뽑아낸 코스모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것을 보고 서로 얽혀져 살게 그냥 둘 것을 공연히 풀을 뽑았다는 후회까지 했다. 이 땅이 이름 있는 화초들만 독점하고 살라는 터전은 아니건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에 '잡초원' 을 따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인간사도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쓸모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모두가 제 영역에서 맡은바 제 구실을 하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화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
내가 꽃길을 가꾸게된 것이 올해 4년째다. 정년단축 정책에 따라 예정보다 빨리 교직을 떠나게된 나는 하고픈 일과 꿈을 접고, 아쉬움을 남긴 채 서둘러 사십 여 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어디 학교 교육만이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 찾아보면 할 일은 또 얼마든지 있을 것이란 기대로 마음을 달랬다.
1999년 2월은 내 생애의 또 하나 큰 획을 긋는 때였다. 교직생활의 마감과 동시에 새로운 날의 시작이 교차되는 시기였으니까.
단독주택에 살고있는 나는 평소에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꽃길조성의 꿈을 키워 왔었다. 우리 마을 앞에는 낮으막한 야산이 있고, 들려오는 뻐꾸기와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사정없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쥐고 흔든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지금처럼 글을 쓰도록 나를 유인하기도 하며, 꿩이 푸드득거리는 소리는 마치 내가 깊은 산사에라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도 한다. 낭만과 한적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우리 마을을 나는 사랑한다. 서울에 살면서 시골과도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좋은 마음은 잠시뿐이고, 언덕길에 버려진 쓰레기더미를 보면 한심스런 생각이 앞선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 인간이 훼손하며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은 마치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행인들 역시 혐오스런 모습을 보며 찌푸린 얼굴로 코를 막고 외면하는 지경이다.
그렇지만 '누가 여기에 쓰레기들을 버렸느냐.'며 남의 탓으로 돌릴 뿐이고, 바쁜 도시생활에 시달렸음인지 아니면 무관심 때문인지 어느 누구도 더러운 것을 치우려는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결행하기로 했다. 행정기관에 가서 공공근로자 지원요청을 했고, 동회와 구청 청소과를 오가며 건의하고 실정을 설득한 결과 십여 명의 공공근로자를 배정 받게 되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지금 회고하면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마구 버려진 쓰레기를 걷어내고 운반하느라고 차량과 장비가 투입되고,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를 여러 차례 실어내고 나니 날아갈 듯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리고 비탈진 언덕에는 층계를 만들었다. 쓰러진 고사목을 운반해다가 4층으로 만드는 작업이 또 여러 날 지속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흙이 그대로 흘러내릴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IMF 여파로 인해서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많았던 까닭에 그들의 도움이 컸다. 나는 나대로 그들은 도울 기회가 주어져 기쁜 마음으로 새참 준비에 바빴다. 주로 고기와 막걸리였지만 정성껏 마련한 음식은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며 고마워 했다.
꽃길이 조성되어 가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신나게 일한 탓에 땀흘린 성과에 만족할 수 있었다. 밑거름으로 계분(鷄糞)을 몇 포 뿌리고, 장미와 철쭉, 영산홍 등의 꽃나무와 대추, 감, 복숭아, 은행 따위의 유실수를 여러 그루 심었다.
식목일 행사로 개나리 묘목을 많이 심었으며 마을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마을 환경 지킴이' 들의 활동이 빛을 더했다. 물주기와 담배꽁초 줍기에 동참한 학생들에게는 소속된 학교장으로부터 표창장(봉사상)을 받도록 추천하였고, 이들은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착한 어린이 모범상을 받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환한 얼굴로 내게 상장을 보여주는 그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보는 듯 하여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웠다. 이는 사회교육과 학교교육이 연계된 바람직한 성과였다.
학교운영위원(지역 대표)으로 활동한 나는 매사에 환경교육을 관련시켰고, 예절교육을 곁들여 인사성 있는 친절한 아이들로 변모시킨 것이 큰 보람이었다. 내가 꽃밭을 돌보는 때가 주로 아침이었기에 등교하는 아이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누며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간혹 내 모습이 꽃밭에서 보이지 않으면 우리 집 대문의 벨을 누르며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동네가 떠나갈 듯 외쳐댄다. 이제는 인사 받기가 성가실 정도가 되었으니 이만하면 예절교육의 성과도 만족한 수준이라 하겠다. 이렇게 되기까지 내 주머니에서는 늘 사탕이나 초콜릿이 떠날 날이 없었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 고 했다. 청소년들의 선도 역시 우리 어른들의 몫이란 것을 깨우치는 대목이 아닐까?
그러나 구름 위를 나는 듯 신바람 나는 나에게 먹구름을 끼게 하는 어른들이 있어 가끔은 우울하고 실망스런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새벽에 꽃밭에 나가보니 한참 예쁘게 자라던 비비추가 몽땅 뽑혀져 누워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어이없고 화가 나서 손댈 생각도 못하고 그냥 서있었다. '누가 그랬을까?' 절대로 우리 아이들의 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아이들을 신뢰하고 있었으니까. 누구의 입에선가,
"골목 안에 세 들어 살고있는 술주정뱅이가 그랬나봐."
"어젯밤에 술김에 화풀이를 했나?"
"도망간 마누라 머리끄댕이 잡아뜯듯 했네."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목격자가 없으니 확인되지 않은 추측일 뿐이었다. 아무리 화나고 술김이라지만 한 두 포기도 아니고, 말 못하는 화초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애꿎게 모조리 뽑아 놓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공들여 심고 물주며 가꾼 것인데 이럴 수가 있을까. 꽃길 가꾸기를 당장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허탈하고 맥이 풀렸다.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시던 동네 어른이 꽃삽을 들고 나와 도로 제자리에 모두 심어주셨다. 딱한 듯 혀를 차며 돌아서시는 뒷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마치 친정 오라버니와도 같은 푸근함에 나의 분노는 봄눈 녹듯 사그라들고 나는 곧 물뿌리개로 시든 비비추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열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훌륭한 분이 계셨기에 나는 다시 힘이 생겼고, 꽃밭 가꿀 의욕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또 이런 웃지 못할 일도 종종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른 봄 파릇파릇 돋아난 국화 싹을 쑥인 줄 알고 모조리 훑어 가는가 하면 명아주와 과꽃 싹도 뜯어다가 나물해 먹는다고 가져간 할머니도 있고, 엉겅퀴를 약재로 쓴다며 뿌리째 뽑아가서 이름을 써 붙인 팻말만이 덩그마니 남아있기도 했다.
「자연관찰 재배원」이란 간판에 어울리도록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도 가꿀 계획으로 열심히 뛰다가 보면 맥빠지는 일이 허다했다. 심지어는 상식을 벗어난 일도 생기곤 했으니까…….
후룩스와 아젤리아를 심었더니 그날로 뽑아가 버렸고, 옥잠화, 한련, 채송화까지도 남아나질 않았다.
참으로 딱한 사람들이다. 여러 사람이 오가며 즐기는 꽃이 아닌가. 모두가 보기좋자고 애써 가꾸는 꽃길인데, 자기도 함께 돕지는 못할망정 어째서 그것을 뽑아다가 울안에 심어놓고 혼자만 즐기려는지 도무지 그 옳지 않은 이기심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필요하면 자기도 사다가 심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 점이 아쉽다.
그런 중에도 몇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미담사례가 나를 감동시키곤 했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K선생 내외분이 꽃나무들을 차에 싣고 와서 꽃밭에 심어주고 가겠다며 삽을 달래더란다. 외출중인 나를 대신해서 남편은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어디에 심어야 적합할는지 몰라서 고맙다는 인사만 건네고 심는 것은 사양했다고 했다.
서울에 상주하는 분도 아니고 지방대학에 계신 교수님이 주말에 상경하여 이사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지 짐작이 가건만, 바쁜데도 불구하고 내가 가꾸는 꽃밭을 배려해준 고마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정 들여 가꾼 화초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그냥 버리고 돌아설 수 없는 발길이었을까. 몇 십 년 동안 함께 살며 추억이 담긴 것들과 결별하는 아쉬운 심정이 배어나 있어서 나는 가져온 꽃들을 시들지 않도록 정성껏 심어 가꾸며 그들의 아름답고 고마운 뜻을 되새겨 보았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악인이 없다.' 고 하지 않는가.
백합을 옮겨와 심어준 배선생님,
화분의 국화가 시들었다며 가져와서 땅에 묻어 주고 간 김마리아 고리띠 선생님,
그리고 백일홍과 꽈리, 봉숭아와 족두리꽃 모종을 손수 해주고 단풍나무 묘목을 몇 십 그루씩 갖다준 김수일씨 등. 모두가 훌륭하고 정겨운 분들이다.
이처럼 내가 시작한 일에 동참해서 도와준 이웃의 정성이 있었기에 명실공히 자연관찰 재배원이 제 구실을 하게 되었다.
달개비와 명아주, 강아지풀은 초등학교 저학년 관찰용 교재로 요긴하게 쓰이고, 봉숭아는 고학년 실험용으로 귀하게 사용된다.
그 뿐 아니라 요즈음은 유치원 꼬마들이 병아리떼처럼 선생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팻말에 씌어진 꽃 이름을 따라 읽는 것을 보면 땀흘린 값진 보람을 가슴 뿌듯이 느끼게 한다.
그밖에도 등산로 산책길에 꽃을 가꾸는 나와 마주치는 낯익은 얼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동이 트면 어김없이 골목길을 쓸며 꽃밭에 있는 내게 밝은 미소로 다가온 어느 노부부가 머뭇거리며 내 손에 쥐어준 것은 돈 봉투였다. 과일이나 시원한 음료수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마땅치 않더라며 약소하지만 받아 달랜다.
깜짝 놀란 내가 봉투를 돌려주려 했으나 편지라며 받으란다. 겉봉에는 「예쁜 마을 예쁜 꽃길을 위해 수고하신 손길에 감사합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짤막한 글이지만 찡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고맙고 내용이 아름다워 겉봉투만 받겠다."고 하니 한사코 뿌리치며 달아났다.
"어디 사시느냐"고 물으니 이제 곧 이사를 간다고 했다.
'더구나 이사갈 사람이….'
'돈 봉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이미지로 인해서 안 좋게 인식되었다한들 뉘라서 이것을 나무라겠는가.
세상에는 이런 아름답고 순수한 사람들도 있는가 싶어서 한동안 멍하니 할말을 잊었다.
내게는 서울시장이 준 「환경상」과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도 있지만, 이처럼 진한 감동을 받기는 처음이다.
또 누구인지도 모르게 우리 집 대문에 매달아 놓고 간 비닐봉지 속에는 싱싱한 상추와 들깻잎을 정성스레 차곡차곡 담은 고운 마음씨도 함께 들어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떡을 전해 주고 간 고마운 사람 등등. (아직까지도 그가 누구인지를 나는 모르고 있다.)
이런 곱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한 이 세상은 살기 좋은 낙원이다.
오늘 아침도 총총걸음으로 언덕길을 내려가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정겨운 인사를 받으며 모두에게 좋은 하루 되기를 기도한다.
<金智相>
김지상 선생님은 교사퇴임 후 지역사회봉사일과 사람사랑 글사랑으로 예전보다 더 바쁘십니다.
40여년간 12개의 학교를 거치며 아이들과 함께 한 사진자료, 교육자료를 모아 전시하여 해방 후 우리교육의 산 증인이 되셨고
교단수상집 '거울 속의 해바라기', '해바라기의 미소', '해바라기의 환희'를 내셨고 지금은 고희수상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