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름... 그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
어젠 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초여름 날씨에 간만에 오는 비라 무작정 비님을 나무랄 수도 없어 내심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번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오름답사였기에 이번엔 기어이 같이 가고야 말리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때 맞춰 비라니....
'원.. 하늘님도 무심타..' 하며 반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아침에 보니 물기가 좀 있긴 해도 비가 오진 않을 것 같은 날씨였다.
어쩌면 산행에는 오히려 이런 날씨가 제격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정해지자 분주한 마음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마구 쑤셔 넣고는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집을 나섰다.
제주도에는 368개나 되는 오름들이 있다고 한다. 어느 누가 일일이 그 수를 세어 기록해 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름에 평생을 바쳐 연구했거나 목숨처럼 오름을 아끼는 사람이리라. 아마 보통 부지런한 사람은 아닌 듯 싶다.
제주도 지형을 놓고 봤을 때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나, 오늘 답사지 일대는 오름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한라산과 성산, 그 외 주위의 여러 오름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민오름>이었는데, 나는 이곳을 가 본적도 없거니와 이름조차 생소한 곳이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차로 겨우 기어 들어가서 거기서부터는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오름들은 특별히 사람들을 위한 길이 만들어져 있지가 않다. 대개 목장에 속해 있거나...국유지가 대부분이어서 필요에 의해 일부러 만들어 놓지나 않으면 사람이 지나다닌 자국 외엔 거의 없어져 버린다.
사람이 자나 다녔던 발자국을 따라 생긴 좁다란 길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풀이 자라고 가시 넝쿨이 서로 엉켜서 다시 사람의 손이 채 미치지 않은 원시의 처녀림처럼 되어 버린다.
다행히 오늘 간 곳은 목장지대를 포함하는 곳이어서 한 사람이 지날 수 있을 만큼 너비의 길이 나 있었다.
그래도 워낙 왕래가 뜸한 곳이라 이리저리 마구 자라난 가시넝쿨과 나그네들의 산행을 방해라도 하듯 마구 삐져나온 나뭇가지들을 헤쳐가며 한발한발 올라갔다.
앞은 키가 큰 삼나무들과 이름 모를 여러 잡목과 들풀들로 엉켜 있어서 대체 어디가 오름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기 어려웠다 .
걷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선 기다리던 오름의 정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고 나니 하늘이 열리듯이 서서히 울창한 나무들과 무성한 잡초들의 장막이 걷히고 정상인 듯한 평지가 나타났다. 해발 260미터. 오름치고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제주의 오름들의 높이는 낮은 것은 100m 남짓의 것부터 400m 이상 되는 것까지 그 높이와 모양과 분화구의 깊이도 다양하다. 이처럼 오름이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것이, 산도 봉우리도 아닌 것이라고나 할까?
정상에 오르니 다시 움푹 패인 말굽형의 분화구가 있었고 주위는 사면이 다 오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름은 결국 동료 오름들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오름에 오르니 비로소 오름이 보인 것이다. 앞쪽으로 가깝게 보이는 게 <아부오름>이라 했다. 이곳은 작년 어느 때쯤 영화 "이재수의 난"의 촬영장소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
오름의 한가운데엔 목걸이처럼 둥글게 삼나무가 심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부 오름> 안에 다시 분화구가 패여있는 특이한 형태의 오름으로, 제주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다들 익히 알고있는 산굼부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즉, 오름의 높이(50미터) 보다도 분화구의 깊이(70미터)가 더 깊은 특이한 형태의 그것이다.
그 뒤쪽으론 <다랑쉬 오름>이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이곳은 4.3사건 당시 희생된 넋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알려진 다랑쉬굴이 있는 곳이다. 한번도 오른 적은 없지만 예전에 먼발치에서 한번 바라본적이 있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밀레니엄 시대의 장을 열면서 새로운 맘으로 새 삶을 준비해보고자 올해 1월 1일 <용눈이 오름>에 해돋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먼발치로 볼 수 있었던 이 <다랑쉬 오름>을 오늘 보니, 마치 오랜만에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 옆쪽으론 <성불 오름>이 있었고 내가 서 있는 곳과 <성불 오름> 사이의 널따란 평지엔
한 무리의 말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노닐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전형적인 초원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구름에 가리웠던 해가 다시금 나타나면서 목장 안은 해그림자가 쏴..하고 장막을 걷듯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했고, 저기 발아래에서 날고 있는 한 무리의 백조떼는 먹을 것을 찾고 있음인지 분주하게 이리 저리로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날고 있는 새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저 그 무리들이 전진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시인이 '날고 있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했던가...
내가 본 한 무리의 새떼는 전후좌우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무언가 목표를 찾으려 애쓰며 날고 있었다. 아마 사방을 끝없이 살피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상엔 '파손주의 - 국가중요시설' 이라 쓰여진 대리석으로 된 작고 납작한 사각모양의 물건이 박혀있어서 이 오름이 국유지임을 짐작케 했다. 아니 어쩜 이곳은 봉화를 올렸던 곳인지도 몰랐다.
오름은 예전의 봉수, 즉, 신호체계의 하나로서도 이용되어 왔고 공동생활의 터전으로 목마의 사육 또는 묘자리 등과 같이 제주 사람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었다.
산은 내려오기 위해서 오른다는 말도 있듯이 정상에서의 가슴 떨림을 채 잠재우기도 전에 다시 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경사가 가팔랐던 탓인지 내려오기는 올라가는 것보다 배나 더 힘들었다.
거의 평지까지 다 내려왔을 즈음 만난 것은, 여태껏 말로만 듣던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 산 속의 오두막 마냥 초라하고 허름한 것이 내 상상 속의 그것과는 아주 딴 판이어서 머리 속의 별장이라는 사치스러운 단어를 무색케 하고 말았다.
폐가가 된 초라한 그 모습은 마치 그 님의 말년의 삶을 조용히 말해 주는 듯 해서 몹시 씁쓸했다.
내부는 한 50평정도의 공간이었고 각 방마다 놓여진 침대며 안락의자. 그리고 서구식 욕실.싱크대가 딸린 부엌. 이건 그 세대를 대변하는 것들로는 여겨지지 안을 만큼 당시의 호화스러웠음을 말해 주는 듯했다. 안방인 듯한 곳에 따로 딸려 있는 화장실은 도저히 옛날의 발상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괜찮은 평수의 고급 아파트에 필수 종목처럼 딸려있는 부부욕실도 어쩌면 그때의 그것을 본뜬 것은 아닐는지...
어떤 이유에선지 전혀 관리가 안된 이곳은 사방으론 크고 작은 잡목들과 들꽃들로 가득했고 잡초는 조금의 빈 공간도 허용치 않으려는 듯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앞과 옆쪽엔 오래된 듯한 커다란 동백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여태껏 그리 큰 동백나무는 본적이 없었다.
과연 그 님께선 재임기간동안 이곳에 몇 번이나 와 본적이 있으신 지. 정녕 한번이라도 와서 지낸 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어디에도 그와 관련된 기록은 없는 듯했다.
어쩌면 저리도 무성하게 자라 버린 동백나무만이 그 해답을 알 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민오름>을 벗어나서 한숨 돌리고 다시 찾은 곳은 한동안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문제의 그곳... 땅이 갈라졌다느니, 화산 작용의 시작됨의 징조라느니, 말 많았던 갈라진 땅(구좌읍 송당리 소재). 바로 거기였다.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바닥이 둘로 쩍 갈라져 틈이 벌어진 게, 한여름 땡볕에 두 조각으로 골이 패인 빨래 비누와도 같았다.
결국은 오랜 침식작용과 비바람에 의해 물이 흐르고 해서 저절로 생겨난 틈으로 잠정적인 결론이 났지만, 현재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팀이 설치하고 갔다는 쇠막대(?)는 여전히 땅 갈라짐의 정체를 지켜보고 있다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쇠막대의 움직임을 살펴, 꽂힌 자리의 위도가 혹 달라지기라도 한다면 또 다른 결론를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제의 그 땅을 조금 올라가니 아주 경사가 심한 오름이 나타났는데 해변 쪽에서 보아, 안쪽에 있는 것이 <안돌 오름>, 바같쪽에 있는 것은 <밭돌 오름>이라 했다.
그 왼쪽으론 샘의 원리인 낮은 곳으로 흐르는 철칙을 무시해 반대로 바다 쪽이 아닌 산 쪽으로 흐른다해서 붙여진 짙은 녹색의 잡목들이 많은 <거슨새미 오름>이 보였다.
<밭돌오름>은 오름에 유난히 돌이 많아 그렇게 불려진다고 한다. 이곳은 유난히도 노오란 개민들레(학명: Dentilion)가 많이 피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진분홍의 엉겅퀴와 샛노란 씀바귀 그리고 미나리아재비와도 잘 어우러지고 있어서 마치 들꽃의 연회장을 연상케 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들꽃들은 왜 이리도 이쁜지 모르겠다. 크지도 않고 작고 아담하면서도 진한 색을 띠고 있는 게 많다.
샛노란 개민들레는 노란색을 아주 싫어한단다. 그래서 자신이 싫어하는 노란색을 밖으로 힘껏 밀어내고 있어 결국 사람의 눈엔 노랗게 보인다하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철 지난 철쭉은 이미 꽃을 떨구어 버리고 잎만 무성한 채, 피마자 나무랑 산수국과 함께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가파른 경사면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내려오는 길에 침입자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구리 한 마리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개구리 거죽은 내 기억 속의 녹색 혹은 청색을 띠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얼마간을 굶주린 듯 날씬한 몸매에 그 몸을 둘러싸고 있는 거죽은 물에 잘 갠 겨자빛을 띠고 있었는데 아마 오름의 개구리는 물 없는 곳에서 살아서 그런 색을 띠는 거라고 짐작했다.
올챙이는 아가미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물 없이는 못 살지만 개구리는 사람처럼 허파로 숨을 쉬기 때문에 굳이 물이 필요치 않다고 동료 한사람이 친절히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간만에 걸어서 그런지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젊어서 한땐 한 달에 한라산을 코스를 바꿔가며 세 번이나 오른 적도 있었는데, 그 것에 비하면 오늘의 오름답사는 훨씬 쉬운 일이겠지만 운동부족의 탓인지 다리에 힘이 없다.
그러나 오름 정상에 다다랐을 때 느꼈던 설레임과 가슴 뿌듯함을 기억한다면 오래도록 나의 오름사랑을 그만두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