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이 있으셔서 오후늦게 외출하셨던 어머님께서 돌아오셨어요.
'강아지 오줌 뉘었냐?'
'아뇨... 아직..'
'근데, 아범이 아직 밥을 안 먹었단다. 얼른 상 봐라.'
하셨어요.
어머님은 계모임에서 식사를 하시고, 남편은 당연히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줄 알았었는데 식사시간이 지났을 것 같은 시간인데남편은 참고 있었던 모양이예요.
(남편은 어머님 모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모시고 들어오느랴..)
나와 두 아들녀석은 배 두드려가며 맛있게 저녁을 먹고 막 설거지를 끝낸 참이었거든요.
부랴부랴 국을 다시 데우고, 김치를 내고 상을 보았지요.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 같다'
고 하지요?
종일 바깥일을 보고 돌아온 남편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꼭 그말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하고 웃게 돼요.
낮에는 저두 아이친구 엄마들과 식사를 하고 돌아왔어요.
벌써 3년째 모임을 계속해 오고 있는데, 다들 얼마나 검소하고 수수하고 알뜰살뜰 사는지, 얘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배울 점들이 참 많아요.
단정한 카트머리에 곤색 쟈켓을 아주 어울리게 입은 경민엄마, 찰랑거리는 머리를 흔드며 아직도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을 짓는 현신엄마, 부지런함을 무기로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는 주영엄마, 목디스크 때문에 병원을 자주 다니는 상민엄마, 학교일에 큰 수고를 했던 일수엄마, 청와대를 가면 아주 어울릴듯한 보경엄마, 다정다감한 웅식엄마, 집안일보다는 회사일이 더 좋다는 은비엄마, 있는지 없는지 조용조용 자리를 빛내주는 민희엄마,
그리고 저까지 열명이 한 자리에 모였지요.
점점 죄어오는 경제의 어려움과 아이들 공부에 대해서 얘길 나누었어요.
건강을 위해 운동을 계속 해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벌써 증상이 심해진 몇몇은 한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지요.
가만히 보면 안 아픈 사람이 없는 듯 해요.
또 세상을 참고 참고 참아서 (특히 이 땅의 주부들)
속병이 생긴 사람들도 있었지요.
어디 한,둘 이겠어요?
.......
돌아오는 길에 어떤 할머니를 한 분 뵈었어요.
다리가 불편하신지 병원에서 보았음직한 디귿자 모양의 기구에 보행을 의지하고 계셨어요.
손으로 그걸 앞으로 한 번 밀고는 발을 억지로 옮기고, 또 한 번 그것을 앞으로 밀고는 또 발을 옮기시고...
불과 몇 미터의 거리를 가는데도 무척 힘이 들어 보였어요.
제가 도와드릴 아무런 방법이 없는것 같았어요.
우리는 서로 그 할머니를 보다가 한참 멀어진 후에야 겨우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멋있게, 건강하게, 즐겁게 살자!'
보도블럭엔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고 가을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치닫고 있는 듯 해요.
세무잠바를 입은 저는 추워서 덜덜 떨었구요.
지글지글 끓는 온돌방이 생각나요.
그런 방구들에 맘에 맞는 친구와 편안히 누워 조곤조곤 얘기하는 맛도 괜찮겠지요?
시어머님은 오랫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얘기를 나누셔서 즐거우신 듯 해요.
저두 친구들 만나 수다떨고 오니 맘이 가볍구요.
(시어머님과 며느리가 한 날 각각 계모임을 다녀오는 것두 즐거운 것 같네요.)
좋은 친구가 있으세요?
속상할 때 달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얘기해도 흉보지 않고 다독여줄 친구가 있으세요?
남편도 좋지만, 자식도 좋지만
때로 같은 여자로 충분히 상대방을 감싸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친구가 있어서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오래 서로 마주보며 나이들어갈 그런 친구가 꼭 있어야 해요.
내일은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하세요.
아침일찍요.
낙엽이 떨어지는 공원에서 만나 따뜻한 차를 한잔 나누세요.
*공부를 넘 많이 하신 어머님께서 눈이 꺼끌꺼끌 하시다고
지금 안약을 넣으셨어요.
옛날 세종대왕께서 독서를 넘 무리하게 하셔서 눈병이 나셨다고 하지요?
무리하시면 안 좋은데...
평안한 밤이 되시길 바래요.
낼서부턴 알콩달콩 잼있게 아직두 부부싸움을 잘 하시는 저희 친정집 얘기를 조금씩 할까해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