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간 해외연수를 가는 남편을 따라 유럽에 간 친구의
빈 집을 들를 기회가 있었다. 유난히 꽃을 좋아한 친구
라 앞마당은 가지가지의 꽃으로 흥겨운 잔치마당을 벌
리고 있는 집이다. 주인이 없어도 그 집 마당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울타리 가까이 빙 둘러 서있는 청매, 홍매는 이미 꽃이
진 뒤 물방울 모양의 작은 열매가 매달려 있고, 자목련
도 파아란 잎이 제법 모양을 내어 반들반들 빛이 난다.
한쪽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가 군데군데 박혀
있고 그 사이사이에 철맞춰 꽃이 핀 화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진보라 제비꽃, 자생수선화, 튜립, 그리고 야생화 중에
할미꽃, 금낭화, 복수초 등이 꽃이 피었거나 이미 지었
거나 꽃망울이 맺힌 상태로 깜찍한 자태를 모두고 서있
다. 한창 물오른 마당을 정신없이 돌아보고 있는데 저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마당 구석어귀에서 진실이가 늘어진 젖꼭지를 새끼에게
맡기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나, 진실
아, 너 옆집에 가지 않고 집 지키고 사니? 반가움에 얼
른 뛰어가 등어리를 쓰다듬어 줬더니 반갑다고 손등을
핥는다.
진실이는 친구가 키우는 하얀색 진도개 잡종인데 어찌나
순한지 짖을 줄을 모른다. 그 순둥이가 그래도 밥값은
하느라고 주인 떠나기 한달전쯤 강아지 네마리를 순산해
서 친구가 좋아 방방 뛰며 해산관을 하더니...
네마리 중 세마리는 어디에 분양이 됐는지 누런 털북숭
이 새끼 한마리만이 지 에미 젖꼭지를 악착같이 물고
뱅뱅 돌고 있다. 한눈에 봐도 개구진 티가 졸졸 나는
새끼는 나를 힐끗 보고도 젖꼭지는 놓지 않는다.
진실아, 혼자 집 지키느라고 욕본다. 그래도 새끼가 한
마리 남아 있으니 덜 외롭겠네? 네가 있는 줄 알았으면
먹을 것 좀 가지고 올걸. 난 네가 옆집에서 사는 줄 알
았다. 미안한 마음에서 사람에게 하듯 말 건네며 연신
등을 쓰다듬어 줬더니 이 놈도 사람이 그리웠는지 내 옆
에 등을 기대고 슬그머니 주저 앉아 버렸다.
세달쯤 됐나? 마치 보기 좋게 토실토실 살이 오른 새끼
가 에미 젖 실컷 빨았는지 이번에는 내게 와서 물어 당
기고 찝적대고 장난이 한창이다. 요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더니 네놈이 그 짝이구나. 노는 짓이
하도 귀여워서 알밤을 먹였다.
진실이 새끼 에미 젖 정신없이 빠는 것을 보니 아들 생
각이 절로 난다. 자경이는 순전히 우유로 키웠는데 인
장이는 세 살 먹도록 젖꼭지를 빨았다. 내가 직장을 나
가 이 놈도 우유로 키웠는데 몇 일 호되게 앓아 꼼짝 못
하고 끼고 있는 사이에 젖을 물려 봤더니 그 맛에 빠져
그 후로 계속 엄마 젖만 ?았다.
퇴근해서 현관에 들어서기 무섭게 통통통 뛰어 나오며
한 손으로 가슴을 들쳤다. 엄마 찌찌, 찌찌...오래 전
에 말라 붙어 나올리 없는 빈 젖꼭지를 꼭꼭 깨물어 가
며 빨면서도 다른 한 손은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젖꼭
지를 뱅뱅 돌리고 찌르고...하여간 어찌나 엄마 젖을 바
치는지 할머니가 아무리 떼어놔도 소용이 없었다.
그 버릇이 계속 가 엄마가 없으면 꿩 대신 닭이라고 할
머니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런 놈이 커서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목소리 우렁우렁, 어른이 다 됐는데 아직도
이 놈이 찌찌타령이다. 인장아 징그럽다. 네가 지금 몇
살인데 엄마 찌찌 타령이냐? 했더니 지도 우스운지 히히
거리고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너네들 아직
도 엄마 찌찌 만지지? 하셔서 찔렸어요. 나보고 하는 말
같아서...그래도 나는 좋아. 엄마 찌찌 만지는 게 제일
좋아...막내 티 내느라고 응석까지 부리면서 하나밖에
없는 에미 찌찌 열심히 주무르는 아들 녀석 가관이다.
키는 컸어도 내가 보기엔 여전히 철딱서니 없이 개구진
막내 아들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면 세살 적 앙
징맞은 녀석의 모습이 어제인듯 그려진다. 87,8년 그 해
는 유난히 시위가 많았었다. 퇴근하고 나는 광화문, 종
로, 신촌, 시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참여했다.
어른들이 최루탄 공세도 마다않고 죽을둥 살둥 참가하시
는데 젊은 것이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였다. 어떤 토요
일, 그 날도 최루탄에 지랄탄까지 어찌나 세례를 지독하
게 받았는지 숨도 못쉬고, 눈도 못뜨고 죽을 것같은 공
포에 간신히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마루 한가득 장난감 차를 가지고 놀던 아
들 놈이 나를 보자 냅다 놀던 것을 땡겨 버리고 달려 나
온다. 양 팔 들어 엄마 찌찌 하며 내 품에 뛰어들다 에
취, 에취 하며 기절을 하고 도망쳤다. 최루가스가 묻었
으니 얼마나 매웠겠는가? 눈물까지 흘리며 연신 재채기
를 해대던 아들은 엄마가 무서웠는지 그 날은 옆에 얼
씬도 안했다.
토요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내 아들이 돌아
온다. 버스를 타고 와도 되련만, 그 새를 못참아 나는
마중을 나간다. 옆자리에 태워 한주일간 있었던 학교 얘
기, 친구 얘기, 이러구 저러구 듣는 재미가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돌아오면 무엇을 해먹일까? 아무래
도 오늘은 시장을 다녀 와야겠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