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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에 전재산 2000만 원에 사회생활도 많이 해보지 않은 백수 며느리 또는 사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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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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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겨울안에 있는가 (1) 그녀 .


BY jiwoo 2000-11-13

나는 그녀를 모른다.
사람을 안다는것이 그사람에대한 이름이나 학벌이나 사는곳, 나이 ... 그런걸 의미한다면 나는 분명 그녀를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나처럼 산책을 즐겨하며 언제나 같은 운동화를 신고 나오며 머리카락이 나보다 더 긴 생머리이며, 나와 엇비슷하게 말라있으며 키가 163정도 되며,걸음걸이가 항상 휘청인다는걸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아는것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지난 밤 잠든 사이에 피부밖으로 밀려나온 비듬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 습관처럼 산책을 나간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현관 밖을 나간다는건 그 이른아침에도 용납이 되지 않아
나는 정성들여 양치와 세안을 하고 머리를 정갈하게 빗었으며 입술엔 립그로스까지 바르는 완벽성을 드러낸다.
현관문을 열때 울리는 철컥하는 쇠소리는 언제들어도 참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어쩌면 그 소리에 반해 늦잠자는 일을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늦었다.
영화 '산책'을 보면서 갖었던 편안함을 떠올리며 잘 기억나지 않는 노래도 더듬어 흥얼거려 본다.
회색의 모자달린 점퍼에 운동화를 챙겨신고 나가며 하늘이 맑지 않음에 다행이다 싶었다.
그녀를 만날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풀빛으로 흔들리는, 나보다 한발 앞서가는 흐릿한 그림자만 묵묵히 따라 걸었을 뿐이다.
그녀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거 같다.
물가에,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우리는 한번도 이야기를 나눈일이 없다.
잠시 멈칫하다가 그녀를 그냥 지나쳐 걸었다.
얼마 못가 다시 그녀에게 돌아온다.
"나... 기억하죠 ? 오늘은 늦었네요 ...!"
그녀는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도 않았다. 새벽이 아닌 낮시간에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나보다 한참 어려보였다.
우리는 나란히 물가에 서서 보이지 않는 태양빛에 광합성하는 식물이 되기로한다.
"그만 갈래요 ..."
그녀가 저만치 멀어져 간다.
참 닮았다 ...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까 .....
그녀의 뒷모습은 나와 너무 흡사하여, 가슴이 서늘해졌다.
계단을 오르고 테니스코트를 돌아서는것으로 그녀는 내게 모습을 감춘다.
깊지않게 흐르는 혹은 고여있는 갑천 위로 삐죽이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콜라를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 했다.
걸음을 빨리하여 아파트 상가에 들어가 캔콜라 하나를 집어들고 값을 치르지 않고 그냥 나왔다.
"이따가 아이들편에 보낼게요 ..."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는 그리 인자하지 않은 웃음으로 먼저 대답을 한다.
"그랴 ... 천천히 갔다 줘유 ."
목을 타고 위속으로 빠르게 침투하는 코크 액을 삼키며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을 땐
햇살이 어깨까지 내려와있었다.

나는 .... 그녀를 모른다.


11월 어느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