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스며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세월의 흔적 만큼이나
흐릿하게 나의 꼬마 소녀시절의 영상이 낡은 필름처럼 비쳐온다
한걸음도 시멘트의 영향을 받지않고는 걷기힘든 요즘 환경인데
그래도 나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지금도 먼지 폴폴 날리는 흙바닥 이었다.
교문에 들어서면 일제시대 때의 낡고 검은 교사동이
한없이 넓고 먼 운동장으로 인해 그렇게 멀리 바라다 보였는데 내 눈앞에 펼쳐
진 산뜻하고 현대식 건물인 새 교사는 내 손에 닿을듯 가까이에 보임은 왜일까?
봄날 환경 심사날에는 초를 가지고 가서 마루바닥에
하얀가루가 맺히도록 칠하고 마른걸레로 박박 문지르면 교실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매끄럽게 될때까지 우리들은 팔이 아픈줄도 모르고 교실을 온통 빙판처럼
만들어 잘못 걷다간 넘어지기 까지 했던 그런때도 있었다.
재잘되던 5학년 4반교실 동편 교사동의 저녁 땅거미가 앳된소녀엿던
중년여자를 알아보지 못함인지 무심히 어둠을 드리우고있었다.
교대를 막 졸업하시고 스물둘의 아름답기 그지없던 총각 선생님을 몰래 가슴속
에 숨겨두고 글짓기 시간에 두서도 없는 내 글을 여러 반아이들 앞에서
읽어주시며 천진한 소년마냥 웃으시던 그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초여름 이었을까 나는 대청마루에 긴 장대를 걸쳐놓고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를 닭들이 헤집어 놓지 못하게 쫓고있을때 내 가슴을 사늘하게 만들던 그 선생님이 대문께에서 들어서고 계신걸보고 난 그 자리에 석고상 처럼 굳어 버렸었다.
엄마도 들에 나가시고 계시지 않는데 선생님의 느닷없는 방문에
난 아무말도 못한체 장대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목이 타셨는지 냉수한잔을 부탁하셨고 나는 넓적한 사발에
펌퍼물을 퍼올려 시원한 물 한 그릇을 드리자 선생님은 너무 물맛이
좋다고 하신것 같다.
엄마가 오시고 선생님이 가시려하자 엄마는 한사코 선생님을 붙드셨다.
그리고 부랴부랴 엄마는 추어탕을 끓이셨다.
우리집에는 항상 조그마한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동동띄우고 미꾸라지들이 대기하고있었다.
조부님께서 모내기논에 물을 대시며 웅덩이의 물을 퍼고난뒤 바닥에
드러난 웅덩이에서 항상 미꾸라지를 잡아오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국수를 끓이고 크다란 사발에다 추어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 선생님께 드렸다.
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왜 지저분한 추어탕을 선생님께 대접하여 나를 챙피하게 할까?
난 매일 먹는 추어탕에 질려하고 있었으니까
국수는 또 어떤가 지금처럼 때깔고운 미백의 그런 깨끗한 색깔이 아닌 동네 방앗간에서 뽑은 국수는 붉은 기운마져 도는 굵직하고 곱지도 못한것을 대접하는것에 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이셨는지 그렇게 볼쌍사납고 맛없는 추어탕을 더 드시고
가시는게 아닌가.
그런후 나는 선생님을 똑바로 볼수가 없었다.
내내 가슴속에 선생님을 잘 대접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망과 선생님이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는 자격지심에 .......
그리고 세월이 지났다.
미스때 선생님이 근처대학에 여름방학 연수교육을 오셔 친구와 함께 만났다.
결혼을 하신 선생님은 몸이 많이 불어 있었고 그때 선생님은 나의 속된 마음을 바로 잡아주셨다.
"그 여름날 니네집에서 먹었던 추어탕 국수맛은 그 어떤곳에서도 맛볼수가 없었노라고"
나는 그때의 기쁜 마음을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다
잘못했다고 잠시나마 내 가슴속에 엄마를 원망하며 담아놓았던 그 오해를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다 내마음을 알고계셨을 엄마는 그 어디에도 내 애타는 부르짖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는 나의 사랑하는 내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이십년이 지나 모처럼 고향길에 나는 내 초등학교를 가보았다
외형적으로는 많이 변해있었지만 그때 내 친구들의 재잘거림과 선생님의
정답던 그 모습은 아직도 빛바랜 영상처럼 내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스승의 날을 맞아 잊었던 선생님의 기억에 몇자 적으며
선생님 은혜 감사드립니다.
리아의 그림방:swan1103.hiho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