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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77

아들 시간 빼앗아 쓰기.


BY 雪里 2002-06-30


"네 오후 시간은 엄마가 쓸거야."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는둥, 내일로 미루면 안되겠냐는둥,
온갖 잡다한 얘기를 늘어 놓는 작은 아들을 꼬드겨서
시골로 향하는 차안.

운전하는 아들옆에 내가 앉고
아들방에서 이틀을 뒹굴던 아들 친구와
가끔식 들르는 여자친구가 뒷자리에 앉아
차창을 활짝 열어 놓고
몰려 들어 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린다.

"사람이 사는집 같지가 않아서 그래.
아빠는 병원에서 힘드는일 하지 말라지, 난 허리땜에 그렇지,
너라도 같이가서 풀좀 베어 줘야지. 꽃들이 불쌍하잖아."

별로 내키지 않는 일에 따라나선 아들에게 눈치가 보여
먹을거라도 챙기라며 연쇄점 앞에 차를 세우게하고
배춧잎 한장을 꺼내 건네니 어미맘을 알아채곤 웃는다.

내 허리통만한 허벅지 아래로 숭숭 돋은 검을털을 훔쳐보다가,
눌러쓴 모자 아래로 나와 있는 염색한듯한 노란 머리칼에
시선을 멈추고는 잠시 혼자 미소를 지어본다.

형이 태어난지 14 개월만에 태어난 이 작은 아들.
온 집안 식구가 형에게만 사랑을 쏟느라
자세히 들여다 보지도 않아
건넌방에 혼자 누워서 순하게도 크던 놈.
젖 부족한거 알고 우유도 잘 먹고 놀기도 잘하던 이 아이.

연년생이라 가끔은 기저귀도 같이 차고, 같이 젖병도 빨고,
그러면서도 형에 가려서 거저 키운것 같을만큼
스스로 제몫을 찾아 챙기던 이 작은 아들.

가끔씩 떼가나면 아무도 달래지 못하게 울어 제껴서
일찌감치 "뗑끼"라는 별명을 얻더니만
지금 다 커버린 작은아들의 아이디 "thanky".

오후 네시쯤이 되서야 산바람이 내려 불고
낫을 든 어설픈 손놀림을 하기 시작한다.

연신 조심하라는 어미의 잔소리에
엄마나 조심하라며 빨리 지나가고 있는 아들의 흔적이
꼭 옛날 가위로 빡빡 깎고 나온 시골소년 머리통 같다.

음료수를 따라들고 내려오는 여자아이의 손길이
예뻐서, 햇볕에 그을린다고 얼른 들어가라 이른다.

손전화도 없는 아들의 거처를 잘도 알아챈 친구들이
승용차로 들이 닥쳐서 밀리는건 일뿐인데도
반가워하는 모습들이 정말 좋아 보여서
삼겹살이라도 구워 저녁 먹자니까 좋다 한다.

차로 토종 흑돼지고기 사러가고,
장작을 피워 불을 준비하고
화가 아저씨댁 상추뜯고 고추도 따고...
저만치 내려가서 마늘은 얻어다 까고.
시골의 인심이 금방 테이블위에 그득하다.

앞마당에 즉석으로 마련해진 저녁 식사에
소주도 한병 꺼내서 따라 주었더니
아들 친구들이 M.T 온 기분이라며 좋아들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이,
솔잎향을 가져다 주고는
여름밤의 추억 거리들을 섞어 가지고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굽는 고기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로 오르다말고
산바람을 따라 내려가고
모처럼 고기굽는 냄새에 취한 잡종 발바리는
혼자 있던 외로움도 잊은채
한점의 고기에 목숨을 건 것처럼
덤비다가 혼나고도 또 덤빈다.

어스름한 어둠의 베일이 마을을 덮을 즈음
테이블에 빙~ 둘러 앉아 받아든 커피잔.
한모금 입에 문 커피향이 느끼함을 싹 가져가고는
가슴가득 푸근함을 채워주고 있다.

아랫집 화가 아저씨는 덕분에 즐거 웠다며
잦았으면 좋겠단다, 이런 시간이.

"나, 아무래도 오늘 손해 본것 같아, 시간도 돈도."

모처럼 아들의 시간까지 얻어 놓고
그대로 두고 가야할 무성한 잡초들이 생각나서
풀들이 보이지 않을만큼 편안한 어둠을 앞에 두고
아들에게 한마디 건넸더니,

"나중에 제가 와서 할께요. 대신 설겆이는 저희가...."

"말로만~! 언제 와서 해 줄려구..."

혀끝에서 나오는 소릴 넘기고
행여나 싶은 맘에 해 놓는 말,

"그러면 고맙구, 그러면 이런 저녁 또 해 줄께."

훈련중 인듯한 헬리콥터 세대가
날개마다 불을 달고는 낮은 비행을 하며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가더니 또 다시 지나간다.

소리치며 흔들어 대는 모습들을
그들이 보기는 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