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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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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39


BY 후리지아 2002-06-27

이제 햇살이 여름처럼 따갑게 느껴집니다.
장마에 접어들 것이라 했는데...하늘은 장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푸른빛을 자랑하며 살살거리고 있습니다.
나무잎들의 빛깔도, 여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여름이 가면...모두 사라질거야...
혼잣말로 주문을 외우고 있지요...
한계절이 가고 나면...해결될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하지만
사실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무뎌진 것일겁니다.
힘들고 무거운 일들은 실제는 내성이 생겨 둔해지는데도...

요즘은 매일 새벽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어느날은 푸르다못해...청명한 하늘에서 푸른물이 뚝뚝 떨어 질것만
같아 몸을 움추리기도 합니다. 오늘새벽 하늘엔 보름을 지난
하현달이 덩그러니 앉아 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지요...
한쪽이 찌그러들긴 했지만 그 달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빛을 내 뿜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올려다보며, 매일매일 자신의
모습을 달리하는 달도 제 몫을 잘 해내고 있는데...만물의 영장이란
사람인 전...제 몫을 다하며 살지 못한 것만 같아 마음이 분주해
졌습니다. 할 일이 많은데도, 피곤하다는 이유로...밀어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그래서 또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날마다 반성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최소한 똑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을테니까요.

몇일전, 돌아가신 친정아버님의 기일이였습니다.
오빠들께서는 왠만하면 함께 가자고 했지만 전 아프다는 핑계로
올해도 아버님의 기일에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해부터인가 형제들이 모이는 곳을 슬슬 피하게 되었지요.
오빠들께서 제게 뭐라시는 것도 아닌데, 형제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불편합니다. 솔직한 마음은 혼자 참석하는 것이 싫어서 일것입니다.

제겐 기억에도 없는 아버님의 기일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유년을 보내며...어머니와만 살던 전 아버지가 있는 집이 비정상이고
제 집이 정상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야 제가 결손가정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엄하시던 어머니는 단 한번도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신 것에대하여
엄살을 부리신다거나, 탄식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단아하고, 정갈하시던 어머니처럼 저도 살 수 있을까 가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비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려고
제 형제들에게 어머니는 지나치리 만치 엄하셨습니다.
정직하지 못하면 체벌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제겐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쯤 전 어머니 주머니를 열어 5환짜리 동전을 하나
꺼낸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일을 아시게 되셨지요.
전 처음엔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한 오빠들
직장을 다니는 오빠들, 서울로 유학을 간 오빠들...
제집엔 어머니와 저 둘만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저 말고는 어머니
주머니를 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끝까지 거짓말을
고수했지요... 화가나신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정적이 흐르고...전 그 시간이 정말 무섭고 두려워서 사실을 말씀
드릴까 하다가도, 혼나는 것이 겁이나 모른척하고 있었지요.
어머니는 무엇인가 결심을 하신듯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십니다.
잠시 뒤...몇발은 될것같은 새끼줄을 들고 대청마루로 올라오시더니
대들보에 새끼줄을 걸어 어머니 목을 메시는 것입니다.
전 놀라 엉엉 울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게 말씀을 하십니다.
"에미가 자식을 잘 못 가르쳐서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으니 어미죄가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구나, 그러니 이 어미는 죽어야한다. 옛부터
자식이 잘 못을 하면 어미가 잘 못 가르쳐서 일어난 일이니 어미가
죄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다."
그 말씀이 얼마나 단호하신지 전 마당으로 내려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새끼줄을 치울 생각은 하시지
않으십니다. 전 그때처럼 시간이 길고 지루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를 울며 빌었던지...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정신이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고한 모습으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십니다.

다자란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 그 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절 겁주시려고...소위 말하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될까
염려가 되시어 묘책을 생각해 내셨는데...전 어머니가 정말 죽을까
겁이난 나머지 기절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몇마디 하시고 덮어 주셨더라면 전 지금과는
다른 심성으로 자랐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론 전 절대 거짓말은 해서는 않돼는 것이고...
정직하지 못하면 어머니가 죽는 것으로만 알아 지금까지 정직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지요...저 역시 제 딸들에게 정직에
대하여서는 극단적일 만큼 엄하게 대합니다.
어머니의 심성을 닮게 됨을 전 감사드립니다.

오늘처럼 햇살이 따가운 날이나...아버님의 기일이나 어머님의
기일이 돌아오면...유년의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하루를 삽니다.

저도...이다음 제 딸들이 저만큼 나이먹어 어른이 된다음 저처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남겨 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됩니다.
늘 좋은 어머니가 되려고 하지만, 제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들을
힘들게 할 때가 종종있습니다.
정말 좋은어머니가 되고 싶은데...

산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어떻게 살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 정해진 대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지금 이시간에 정말 정직하게 사는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라서 중요한 일을 가끔씩은 잊기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내년에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아버님 기일이나 어머님기일에
참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족모임에 참석지 못한 이유가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
이라는 것을 알았으니...내년에도 참석지 못한다면 오빠들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혼자 가기 싫어서요.-

산다는 것은...
가끔씩은 유년의 기억을 꺼내어 고단하고 지친 세상을 희석 시키며
사는것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