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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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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열심히 살아보자


BY cosmos03 2002-06-11

" 고모! 서울 언니가 쓰러졌대 "
이것저것 잡다한 프로들을 생각없이 리모콘으로 돌려대던 내게
딸아이가 건네준 전화로 들은 소식이다.
멍~
그랬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 나지않고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겅둥대는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무얼하는지 무얼생각하는지.
수도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해 대는일을 할뿐.
왜 그러냐는 딸아이의 말도 귀에 들어오질를 않고
저녁때가 되어도 아이에게 저녁밥을 차려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시누이와 올케사이에
뭐 그리도 애틋한 정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큰 올케는 우리 친정의 기둥이었다.
종가집의 맏 며느리.
일년에 차려대는 제사만 해도 수 많고.
시도없이 때도없이 드나드는 일가친척의 수도 만만치를 않았다.

친 시동생 하나.
배다른 시누이 하나.
달랑 남편까지 세명이라지만
뭔놈의 족보서열이 그리도 높은지
모두가 조카이고 질부이고 아저씨고 아주머니들 이었다.
엄마 살아생전에야 그 모두가 엄마의 몫이었지만...
엄마 돌아가신지가 벌써 십수년.
묵묵히 큰 올케언니는 그 모든것을 해 왔었다.

퇴근도 미리 땡겨서 하고온 남편과 작은오빠내외.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서울에를 올라갔다.
상태가 얼마만큼인지...
요즘에는 의술이 워낙에 발달이돼 웬만한 병은 병도 아닐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들을 품으며 그렇게 올라간 서울 병원에서는
몇시간째 큰올케언니는 수술실에서 몸도 마음도 죽어있는 상태로
의사들에게 영혼을 맏기고 큰 오빠의 가족들은 모두가 초 죽음인채로
발들만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수술 7 시간째
거의 8 시간이 다 되어갈무렵.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나오며 가족들의 면회를 허락했다.
삼남매의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갔을때.
차마 두눈다 뜨고는 보지 못할정도로 언니는 참혹했다.
얼굴을 퉁퉁 부어있엇고.
상의가 나온 몸의 여러곳에는 핏자국들이 있고
목에는 두개의 구멍을 뚫어 작은 호수가 꼽혀있다.
그 의식없는 상태에서도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담요를 어깨위로 덮어주는 내 손끝은 떨렸고
내 눈은 자꾸만 젖어온다.

흔히 말하는 뇌졸증.
수술하기도 힘이든 정 가운데 동맥이 터졌다고 한다.
그동안 언니의 몸은 본인 자신만이 알았지
어느 누구도 얼마큼 심각한지
아니면 무슨 지병을 앓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었다.
그냥...
항상 그자리에 누구의 아내라는 이름과
어머니. 그리고 올케 혹은 형수 질부등...

" 아이구~ 우리 예쁜 고모왔네 "
온 얼굴 하나가득 반가움으로 맞이해주던 올케언니 였는데...
이젠.
그 모습, 그 목소리 다시 들을수 있을까?
" 우리 고모는 훌륭해. 그리고 작가선생이야 "
농담으로 내 뱉는 그 말도 내겐 정다움이었는데...
병실문울 나서는 내 귀에 언니의 그 목소리가 들리는듯하여 잠시 발걸음이 주춤 거려진다.

큰 오빠의 삼남매는 모두가 눈물만을 짖기에 바쁘고.
사위들도 며느리도 얼굴가득 수심이 차 있다.
남편인 큰 오빠의 넋도 반쯤은 모두 나가있는듯.
정신 수습을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일어날수 있을까?
의식은...돌아올까?
아니, 솔직히 말해 살수는 있는걸까?
뇌졸증으로 그렇게 큰 수술을 하고 그 예후가 좋은사람.
아직 못 보았는데...
기적이라는게. 아니, 작은 희망이라도 남아있는걸까?

이튿날
의식없는 큰 올케언니의 모습을
그냥 눈에만 담고는 서로의 생활이 있는지라
아무말 못하고 서로 눈들만을 마주한채 우리 대전 식구들은 내려와야했다.
내려오는 내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큰 언니의 모습이 나를 갑갑증나게 한다.

살아만주어도...
깨어나만 주어도...
하지만.
살아나면, 깨어나면.
그 다음은 어찌 되는건가?
정상인처럼 살아갈수가 없다는건 입밖으로 내지는 않아도
모두가 알수있는것을.
점점더 뇌 기능은 떨어져 어린아이로 돌아갈것이고
일어나 정상인처럼 생활은 할수가 있겠는가?
대 소변 만이라도...본인 스스로 처리할수가 있겠는가?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큰 올케언니의 의식불명은 나를 지금도 아무것도 할수없게 만든다.
그냥.
답답하다는 말밖에는.

방금전 통화에서도 수술전과 똑같다는 말뿐.
달라진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다는게...아니, 살아있다는게 이리도 불투명 할수가.
언제 어느때 내 인생도 어느곳에서 소리없이 주저앉지는 않을지.
미래가 두려웁다.
예측할수 없는 내일에
그냥...
오늘만 열심히 살아보자.
내일이 되면 또 오늘만 열심히 살아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