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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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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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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74


BY 녹차향기 2001-04-23

봄만 되면 꼬옥 찾아오는 불청객,
겨우내 먹을만치 열심히 살이 폭폭 찌드록 먹고 겨울을 지냈어도
뭔가 몸에서 부족한 것이 있었는지, 봄만 되면 입안이 여기저기 헐기 시작하지요.
입을 한 두번쯤은 다 헐어보셨겠지만, 눈물 날 정도로 아프지요.
매운 김치를 아무 생각없이 덤썩 집어먹다가도, 양치질을 조심조심 한다고 하다가도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게 되잖아요.

전 그게 좀 심해요.
동시에 서너개쯤 헐기도 하고, 요상야릇한 부위에까지 입안에 안 헐어본 곳이 없을 정도예요.
요번엔 아랫어금니 (왼쪽) 와 입몸사이의 계곡에 염증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으슬으슬 몸에 오한도 오고, 미열이 오르내리면서 자주 자리에 드러눕기도 하고.
임파선이 퉁퉁 부어서 목도 뻣뻣해지는 느낌.
이게 병명도 있더라구요.
베체트병!!

으레 봄만 되면 앓고 지나가는 병이니 미리미리 조금 헐 것만 같다 감이 잡히면 약을 바르고 단단히 단도리를 하지만, 그래도 꼬옥 며칠은 끙끙 낑낑 거리고 자리를 보전해야 하거든요.
요 며칠동안 그랬어요.
황금같은 주말을 침대에 누워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오늘은 또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 지 초죽음 되다시피 누워 있었거든요.

큰애도 컨디션이 좋질 않아 희노란 얼굴을 하고 학교준비물로 옷에 물을 들이는 염색약을 사러 인근 대형마트에 혼자 나갔지요.
주말이라 다들 봄나들이다, 쇼핑이다, 외식이다 시끌벅적했을텐데, 혼자 준비물사러 나간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엄마, 그거 여기서 팔지 않는대요. 어떻게 해요?"
"그냥 돌아와야지 뭐. 셔틀버스 타고 얼른 와라."
"예...."
아이의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요.
준비물을 못 산 허탈감, 감기기운, 아무도 없이 혼자 외출한 쓸쓸함 같은 게 짙게 묻어났지요.

여기저기 알아보니 영등포에 있는 모닝글로리에 가야 그걸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몸을 추스리고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가 가까운 시간, 모닝글로리는 8시에 폐점을 한다고 하고요.
부석부석한 얼굴에 모자를 하나 푸욱 눌러쓰고 물감을 사러 나섰어요.
마침 마트에서 돌아온 아이가 함께 동행하겠다고 하였지만, 아이의 머리가 뜨끈뜨끈 하더라구요.
감기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얼른 갔다올게, 집에 올라가 샤워하고 학교갈 준비하고 있어"

버스를 타고, 지하도를 빙빙 돌아, 또 횡단보도를 건너 그곳에 도착하니 7시30분, 물감을 사고 안심을 한 후 가게를 돌아보니 너무 깜직하고 예쁜 물건들이 많더군요.
샤프를 쓰고 싶어했는데... 아이생각이 얼른 떠올라 괜찮은 샤프를 골랐어요.
버스타러 가는 길에 오렌지 삼천원어치와 낼 아침 먹을 식빵, 페스트리 몇 개를 사고 집에 도착하니 이미 8시 30분이 훌쩍 넘어있었어요.

초인종을 누르자 큰 애가 문을 열며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하며 꽉 끌어안지 않겠어요?
어제 엄마의 입안을 들여다보고 너무 아프겠다고 눈물을 글썽이고,
종일 침대에서 비실비실 하고 있는 엄마가 다저녁에 물감을 사러 애써 외출한 것이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겠지요?
옆에서 작은 애가
"어!! 형 운다."
하자 정말 눈물을 찔끔 거리는 거예요.

우리 애들은 참 눈물이 많아요.
남자애들이 그러면 손해보는 것도 많을텐데,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잘 울어요.
저두 그렇지만요.

머리는 이미 뜨끈뜨끈 상태를 넘어서 훨훨 탈 것 처럼 열이 나고 있었어요.
바삐 서둘러 밥을 먹인 후, 해열제를 먹이고, 머리에 물수건을 얹어주니 조금 지나서 차츰 좋아졌지요.
지금은 가서 만져보니 열이 없네요.
식은 땀을 많이 흘렸구요.
낼 아침엔 더 좋아졌음 좋겠네요.

부모가 살아가는 이유요?
이 세상이 자꾸 발전하는 이유요?
인류의 역사가 진화를 거듭하는 이유요?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이유요?
내가 내 자신을 보다 떳떳하게 만들어가는 이유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이유요?

그거, 다 자신의 발전, 나의 영광,영달을 위해서인줄 알았거든요.
이제와 보니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의 마음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의 수고로움에 눈물글썽이던 아들때문에
또 내일은 뭐 맛있는 거 먹일까 하고 연구하잖아요.
중학생되는 일, 학교교육, 학원에서 밤 12시 가까이 까지 있어야
한다는 조 밑에 있는 글들이 마음을 자꾸 무겁게 하네요.

우리 아줌마들이 생각이 바뀌면 조금씩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모두 평안한 밤 되세요.
좋은 꿈 많이 꾸시고, 낼을 행복한 한 주 시작 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