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입니다.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계시기는 하나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
이상한 노래만 불렀던,
잠자리...똥통....이런 단어 몇 개로만 남았지만.
교정에 앵두가 열리면 주발에 담아 한 알씩 주시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빠란 호칭으로 부르라 했지만
쉽지가 않다.
첫 애를 낳고, 당직병원에 갔을 때입니다.
의료보험 카드를 내밀고 다시 받아 들고 앉아있는데
다시 부르며 의료보험 카드를 달래 드렸다.
"너 혹시..."
"네, 그 학교 졸업했는데요"
"내가 그때 oo과목 가르쳤지"
그런데 당황하여 허둥지둥 빠져나오고 이어 놓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난 검은 얼굴에 멀리서 통학하던 촌 학생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감추고 싶은 나의 학창시절과 함께 멀어져있다.
아들 녀석이 책이 담긴 봉투를 전하자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선생님이 선물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이 자꾸만 걸린다.
오늘 게시판에 올라온 시가 눈에 띤다.
잊을 수 없는 촌지/양 정 자
일찍이 부모님 두 분 다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우리 반 이경혜
저만큼 밝고 착하게 키우기 얼마나 힘드셨을까
꼬부라진 허리 몇번이나 곧추 펴시며
스승의 날, 학교에 찾아오신
일흔 살의 호호백발 할머니
"철모르는 어린 것들 가르치시느라
얼마나 힘들 것이요. 선상님"
가실 때 허리춤에서 건네주신
꼬깃꼬깃 접혀진
할머니 체온 따뜻했던 천 원짜리 한 장
안 받겠다고 몇번 사양했다가
되레 흠씬 야단 맞고 도로 받은 자장면 값
꼭꼭 간직했다가 할머니 말씀대로
경혜랑 맛난 자장면 사 먹었네
내가 받은 가장 작은 촌지
그러나 가장 잊을 수 없는 큰 촌지
마음이 담긴 촌지, 기억에 남는 촌지임에 틀림없다.
난 아이들을 맡기고 한번도 선생님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도 어려운데 불쑥 찾아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져서다. 그냥 맘으로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 밖에 없다.
아침에 학교에 보내면서 '선생님 말 잘 들어라' 라고 말했다.
선생님,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