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단풍이 물든 고속도로를 달려보고 한계절을
뛰어넘은 이봄에 다시 그길을 달려 고향이란 곳을 다녀왔습니다.
봄이 이젠 끝자락에 서 있는듯 합니다.
산이며 들엔 이미 여름꽃이 피어나기 시작을 했으니까요.
어느집논엔 올벼가 심겨져 있었지요.
아마 추석이 오기전에 추수를 할 것입니다.
넓은들판이 바다를 보는듯 물결이 찰랑대고 있습니다.
아까시나무에 푸르른 나뭇잎과 함께 흰 파도거품 같은
꽃들이 달려 있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아까시꽃이 피였을때
마치 거대한 바다를 보는듯 했습니다.
초록의 물결속에 흰꽃들은 몸부림 치는 파도처럼 보였으니까요.
분명 아름다운 계절인데, 마음은 그저 무겁게 내려앉아
한숨을 토해내게 하고 있습니다.
어서...어서 모든것이 끝이나고 모두 잊어 버렸으면...
제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작은 토지가 있었지요.
사정이 어찌,어찌하여 정리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6년동안 숱하게 많은 것들을 쏟아붓고, 이젠 마음도, 몸도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였지요.
쉬고싶다고 하여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편이 살았을적...
현금으로 받지 못할 상황이 생겨서 몇사람이 분할등기를
해야 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준농지라 이름 지어진...
도시에 사는 사람의 이름으론 취득을 할 수가 없다하여 저흰
고향에 사시는 넷째오빠의 명의를 빌려 취득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가고도 그 땅은 제이름이나 남편의 이름이
아니였기에 경매에서 빠지게 되었지요.
그땐 참 감사했습니다. 무엇이건 한가지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제겐 위로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그것은 분명 한시적이였습니다.
차라리 없었던 것이 마음이 가벼웠을 것을...
제겐 잊혀져가던 일들이 다시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을 합니다.
지금까지 씩씩하게 살아왔던 것처럼 하려고 해도 잘 되질 않습니다.
아마...이젠 그만 하고 싶은모양입니다.
세상이 살만하다고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
그렇지요!
세상에 태여날때 어차피 빈손으로 왔으니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마음아파 하지 말아야 하는데...그것이 잘 되질 않습니다.
분명히 사람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지금 당하는 일들이
제겐 힘든 일이겠지만, 상대도 저보다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이란
것으로 감정정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작은땅을 넘겨주기위해 서류를 받으려 오빠를 만났지요.
점심시간을 이용해 나오신 오빠께서 터미널 한켠에 주차를 하시고
한줌도 되지 않을것 같은 동생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전 아무렇지 않게 샐샐거리는데 오빠께선 저와 눈도 마추려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새 흰머리로 가득하신 오빠를 뵈면서...
환갑이 얼마 남지 않으신 오빠가 할아버지처럼 보였습니다.
가슴에 치미러 오르는 울화를 억지로 참으시는 것이 보였지요.
그래도 전 연실 웃었습니다. 그래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되어도 전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습니다. 해야 하니까요.
오빠는 그러십니다. 여주에서 가지 말고 감곡에서 타고 동서울로
가라고... 아마, 길지 않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드라이브를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십니다.
오랫만에 오빠의 옆좌석에 앉아 고향길을 달려보았지요.
입맛이 없으시다는 오빠께 "오빠 저 배가 무지하게 고파요, 점심
먹어야 하는데..." 오빠께선 그래 니맘 다안다...너도 입맛이
없다는 것... 하시는 얼굴로 절 바라보셨습니다.
마음아프신 오빠께 꼭 맛난 점심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지요.
보쌈집엘 들어가 마주하고 앉아 전 오랫만에 오빠 손을 잡았습니다.
...................................
오빠께서는 늘 제게 미안해 하십니다.
저희부부 중매를 하셨다는 이유로...
발등을 찍고 싶다는 말씀을 또 하셨습니다.
어쩌면 오빠는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절 남편에게 시집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힘들고 고단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하지만 제게 주어진 운명이였다면
언제고 한번은 만나야 했기에 젊었을때 치루는 것이 살아가기에
훨씬 더 수월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단 한번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었습니다.
서류봉투를 내어주시면서 꼼꼼하게 설명을 하십니다.
인감도장도 필요할테니 가지고가고...
오빠께선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고 몇번을 반복하십니다.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이젠 제게 남아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에 대고 너무하십니다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날이였습니다.
하지만, 전 그러질 못했지요. 아직은 건강하고...제겐 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빠몰래 어머니 산소에 들르고 싶었는데...
오빠는 미리 아시고, 어머니산소에 들르지 말고 곧장 가거라
하십니다. 행여 어머니 산소에 가서 꺼이,꺼이 울어댈까 걱정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고향을 등지고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뻗어 있었습니다.
전 일부러 눈을 감았습니다. 이젠...정말 아무것도 없다, 없다...
차라리 홀가분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편으로 연결된 것들을 모두 치울 수 있음을...
내년 이맘땐...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행복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젠...사람들이 제게서 빼앗아
갈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맑게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또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모든것을 잃는다 하여도 성내거나 낙심하지
않는것입니다. 그래야 내일이 오늘 되었을때 해야 할 일이
있을테니까요. 모든것이 차고 넘친다면 살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모자란 것은 부요할 때가 반드시 있을테니까요.
산다는 것은...
가끔씩 나를 잊고, 다른이로 살아보는 것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