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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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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없어져도..


BY 김옥경 2001-04-16

가방안에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가방 주머니마다 뒤져도, 호주머니를 다 살펴보아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 답답한 거은 '아차, 그게 충전중이었지'라든가
'책상위에 두고 그냥 왔구나...'하는 식으로 그 행방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가만 있자 그걸 마지막으로 쓴게 언제였나, 어제는 쓴 적이 있나?
어제 어딜 갔었지? 어떤 옷을 입고 무슨 핸드백을 들었나?...
한심한 기억력으로 어제와 그 근처들을 애써 다시 엮어 놓아보아도 핸드폰 부분은 깜깜할 뿐이고 어렵사리 복구시킨 어제 그저께의 사건들이래야 하나같이 해도 그만 아내도 그만이었던 변변찮은 일상사였음에 입맛이 쓰다.

사실 핸드폰이 내게는 별로 역할이나 용도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하고픈 때에 꺼내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는 잊어버리는 사오정 전화였으니까.


어쩌다 한번쯤 없어도 좋을 것들을 떠올려본다.
신용카드를 빼놓고 나간 날은 충동구매를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어 다행이고,
승용차가 없는 날은 조금이라도 더 걸어서 좋고,
이메일 작동이 시원치 않은 날은 오랜만에 편지지를 꺼내어 끄적일 것이다.
텔레비젼이 안 들어오는 저녁엔 모처럼 식구가 모여 앉아 음악을 듣거나 밀린 이야기를 날 수 있을 것이고,
정전이 된 밤에는 잠자고 있는 양초들을 모두깨워 촛불잔치라도 열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순간적으로는 당황스러운 결핍들이지만 조금 있으면 대신 넉넉한 낭만을 허락해준다.

그런 줄 알았으면 됐고, 또 다음부터는 휴대폰을 잘 챙기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