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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유로움...


BY 들꽃편지 2000-11-02

상수리 나무 잎사귀가 하나 둘떨어지는 창 안에 앉았습니다.
네모난 창가에 떨어지는 갈색잎이 함박눈이라도
아주 좋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가을이 물러감에 있어 미련보다는 겨울의 하얀날을
우리들은 그리고 있었습니다.

칼국수를 시켜 놓고 통나무가 타고 있는
모닥불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년전만해도 이 곳은 흙바닥에 나무등걸이 삐그덕거리던
주점이였는데, 나무로 바닥을 깔고, 대나무로 천정을
얼기설기 잇고, 까치집과 똑같이 만든 조명이 대롱거리는
깨끗한 주점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대에 맞추어 건물을 다시 지었는 줄 알았는데,
콧수염을 그전처럼 기른 주인 얘기를 들어 보니
음식점이 흙바닥이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
어쩔수없이 이렇게 지었는데,
손님이 그전보다 훨씬 줄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이런 주점은 흔하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며,
상수리나무 밑에 야외카페를 만들 생각인데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상수리 나무아래서 차를 마신다...!?!?!
"아유! 좋겠네요."
주인아저씨는 유리주전자로 커피를 가득 가져 왔습니다.

창밖에는 가을이 가볍게 날아가고요.
음악은 마음안에 촉촉히 젖어 들고요.
모닥불은 톡톡톡 잘도 타들어가고요.
우리는 첫눈내리는 날 이곳에 오자고 약속을 했구요.

즐기며 산다는 건.
멋지게 산다는 건.
품위 있게, 여유있게 산다는 건 모두 우리가 원하는 삶
아닌가요?
하지만 내게 주어진 그릇의 크기를 모르고 욕심만 자꾸
채우면, 그 삶엔 고통과 비관과 허무뿐이겠지요.

잠시 말을 줄이고 창쪽을 보았습니다.
햇볕... 눈시려 눈을 감았습니다.
이 부드러움, 이 한적함, 이 따스함.
난 이것으로 오늘 여유있는 한 낮을 즐기고 있습니다.

출입문엔 노란 국화가 피고 있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인부들과 통나무를 쌓고 있는 주인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돌아나오는 길가엔 장승들이 구부정하게 서 있었습니다.
키작은 나무에게도 가을이 속속 베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찻길을 건넜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