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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철쭉에 풀어놓은 푸념


BY dansaem 2002-04-26

우리 집에서 오분정도 거리에 작은 서원이 하나 있다.
대문이 굳게 닫혀 있을 때가 많지만
옆으로 돌아가면 뒤쪽에는 담장이 없다.
그리로 맘대로 드나들 수가 있다.
서원 앞에는 큰 돌을 깔아서 진입로를 만들어 놓았고
넓은 잔디밭과 요기조기 어울리게 심은 소나무와 철쭉이 있다.
지금은 그 철쭉이 한창이다.

오늘 그 곳으로 아이들의 소풍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두 녀석이 함께 갔다.
나는 아이들이 먹기 좋게
김을 반으로 잘라서 꼬마김밥을 만들고
간단한 샌드위치와 과일을 준비해서
점심시간에 맞춰서 갔다.

도착하니 마침 엄마와 함께 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반환점까지 달려가서 풍선을 분 다음
아이와 꼭 껴안아서 터뜨리는 것이다.
두 녀석이 어쩌다 보니 한 반이 되었다.
그래서 큰 아이는 이름도 모르는 고학년 누나 한사람과
짝을 지어주고 나는 작은 아이와 짝이 되었다.

두 팀이 함께 경기를 하는데
우리와 같은 조가 된 엄마는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
받아든 풍선을 들고
"나는 풍선 못 부는데..."
하며 엄살을 한다.
나도 풍선을 잘 못 분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도착은 우리가 먼저 했다.
앞 사람들을 보니 풍선이 잘 안 터지길래
나는 될 수 있는대로 크게 불어야지
하며 있는 힘껏 볼을 부풀려 가며 풍선을 불었다.
그런데 옆의 엄마는
글쎄, 무엇만하다고 해야할까...
그래 멜론만하게 불더니 아이랑 껴안지도 않고
그 손에서 그냥 터지더니 달아난다.
나는 아직도 풍선을 불고 있는데...

아마도 손톱으로 뜯은 것 같았다.
길게 기른 손톱에 까만 메니큐어를 바른 그 엄마는
어린이 치약 하나를 받아갔다.

난 그냥 여유있게 불어서 풍선을 가슴에 안고
아이와 힘껏 끌어안았다.
안 터진다.
다시 한번.
그래도 안 터진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주시던 선생님이
"해담이 어머니, 폼 좋~습니다."
한다.
한번 더 끌어 안는다.
펑!

점심을 먹고 보물찾기를 한댄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하던 그 보물찾기,
변하지 않는 메뉴인가 보다.
보물찾기와 더불어 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수건돌리기.

점심을 먹고 여기저기 둘러도 보고 구경도 하는데
한 엄마가 와서 그랬다.
"저 쪽에 보물찾기 숨겨놨어요.
가서 미리 찾아놔요. 그래야 맘 편히 놀지."
"보물요? 지가 찾겠죠, 뭐."
하고 말았다.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보다 엄마들이 더 열심히 찾는다.
작은 녀석은 관심도 없이 저쪽 바위위에 앉아서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큰 놈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는
"엄마! 너무 꼭꼭 숨겨놔서 못 찾겠어요.
엄마가 좀 도와주세요."
한다.
같이 기웃거려보지만
학교 다닐 때도 한번도 보물을 찾아본 적이 없는 엄마 눈에
작은 종이쪼가리가 눈이 띌 리 없다.
큰 놈은 금새 시무룩해진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들 하나씩 들고
선물과 바꾸는 줄에 서 있다.
대부분 엄마들이 찾아 준 것이다.
심지어는 숨기는 걸 미리 봐두었다가 몇개씩 찾아서
친한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왜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기쁨을 빼앗는 걸까?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가 보다.

선생님들의 모습도 그리 좋진 않았다.
가장 평평하고 그늘 좋은 곳에 길게 자리를 깔고
김밥은 물론이고 떡과 과일, 술까지...
더군다나 야외에 상까지 준비한 그 정성들이라니.
선생님들이 스스로 한 것은 아닐텐데...

물론 선생님께 성의를 표시하고
대접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고
운영위원회의 주요임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운영위원회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곳도 있겠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예전의 학부모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더 심각하게 부딪힐텐데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할 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푸념을 한다.
정말 웃기는 짬뽕들이라고.

난 왜 이렇게 불만투성이일까?
울 신랑이 붙여준 별명처럼 내가 원래 투덜이라서일까?
너무나 투명한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과
흐드러지게 핀 산철쭉 사이에서
난 푸념만 늘어놓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