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인 끈을 자르며...
어느 스님이 적은 글을 읽었다.
소포의 매듭을 자르려는 행자에게 말한 것이다.
"끊지 말고 풀어라. 그렇게'툭'끊어 버릇하면
마음도 그렇게 된다. 맺힌 것은 풀어야 하느니라."
소포의 끈도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을 자르는 일이 쉽겠는가.
기독교인이 일언 하에 타종교를 잘라버리는 것이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배척하는 것이나,
오른 손잡이로 기세를 몰아, 외손잡이에게 타박하는 것이나,
나중에는 걸림이 생길 것이다.
내 친구가 왼손잡이라서 밥 먹을 때 자꾸 걸려
자리를 바꾸며 담부턴 잘 앉자했다.
늘 보이지 않던 오른손에 대해 난 알지 못했다.
그 친구는 오른손이 육 손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 있다는 말에 병 문안을 갔고,
무슨 수술이냐고 물어도 얼굴만 붉히는 것이다.
성형으로 오른손이 자주 사용될 것이고
어쩌면 상처가 아문 것처럼 자연스럽게 치유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친구는 결혼을 미루고 있다.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그 녀석의 얼굴 생김새나 집안 형편이나 뭐 잘났다고 결혼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게 된다.
딸 셋에 장녀라 부모님 모시며 평생 산다는 변명하는 데,
실은 수술하기 전까지 오른손의 아픈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추억 속에 풀지 못한 실타래가 많다.
늘 포기해야 했던, 공부도 그랬고,
세련되지 못한 말이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착함 때문에
늘 내가 해 놓고, 남이 생색내는 것에 울분이 쌓였다.
어른들이 내게 심어 놓은, 고집에 대한 벌은 구타였다.
할머니도 그랬으며, 학교 선생님도 그랬다.
매몰차게 자른 기억들을 보자면, 남들에게 지기 싫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누구보다 못하다는 소리, 열등감에 의해서 말이다.
나보다 음악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있고,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나보다 탁월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고,
나보다 머리가 비상하여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있고,
나보다 무수히 많고 많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보지 않았다.
끙끙 알며, 싹둑 잘랐다.
그래서 꼬리표처럼 사람 가려 사귄다는 말도 들었고,
친구들이 몰려다니는 와중에도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
아직 미숙한 성격이 문제다. 대화는 더 그렇다.
남에게 말로 전달하는 능력은 난 빵점이다.
풀지 못한 내 자존심도 풀어야하고, 이기심도 풀어야 한다.
오늘 어떤 분의 이메일을 삭제하고 전화번호도 삭제한다.
편지를 쓰다가 헤어지게 되면 불에 태우며 기억을 지우던,
누군가에게 호기심이 생기면 적어 놓았던 주소나 연락처를 찢어버리던,
이메일 쓰다가 친구에게 불쑥 내 잔재 남기 싫으니 꼭 삭제해 달라고 부탁하던,
풀지 못하고 자르기에만 열을 올려,
내 나무 가지들은 전부 피투성이가 됐다.
여러 가지들이 자라야 하는데
가지를 필요 이상으로 마구 쳐버렸다.
가지 없는 빈 몸뚱이가 되어 생각한다.
외롭다, 쓸쓸하다, 풀고 싶다고?
술에 의지해 술술 풀고 싶고,
말에 의지해 술술 풀고 싶고,
그래야 털실로 무엇이든 작품을 만들 것이 아닌가.
자른 부분은 다시 묶기도 하고 말이다.
실은 묶을 수 있어 다행이다.
사람은 자른다는 것은, 다시 찾아 묶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줌으로 해서,
내가 자른 끈의 의미를 알았으니, 당신은 나의 선생이요.
오늘 이메일 주소와 연락처를 삭제하고,
이메일 받은 것들 전부 삭제합니다.
참, 컴퓨터는 좋은 것이요, 필요에 따라 삭제 버튼 하나면 지워지니 말이요.
그리고 이것은 복구가 안 된다는 것이 맘에 걸리지만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글들은 가끔 기억을 모태로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