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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대물림


BY 칵테일 2001-04-10

산꼭대기의 파란색 공동화장실.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는 평균 경사 35도의 골목길.
주로 소주·라면만 팔리는 동네 가게.
옛 삼성전자 로고가 남아 있는 1970년대식 거리 간판.
아직도 두 집에 한 집꼴로 연탄을 쓰는 곳.

여기는 2001년 4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101 "난곡".
(중앙일보 기사 발췌)

****

누가 그랬던가.
가난은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그렇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가난의 병폐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며칠 전부터 중앙일보에서 기획 기사로 [서울 최대의
달동네 신림동 '난곡']을 내보내고 있다.

2천여 가구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저소득층이 모여 살고
있는 난곡에서는, 그야말로 가난이란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너무도 크고 깊은 수렁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넘어 그나마 지금 정도의 생활
수준으로 향상된 것도 실상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불과 몇십년 전의 암울한 궁핍에서 벗어나, 그야
말로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룬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번 음지였던 곳은 여간해서 양지가 되기는 힘든
것인지, 아직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궁핍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

한 때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의 수가 얼마네..하며 언론
에서 수시로 부각시켰을 때, 나는 솔직히 "설마, 정말
밥이 없어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굶을까..."하는 의구심
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고,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근근히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의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가난.

청빈한 삶에 대한 예찬을 한 글들이 적지않으나, 검약과
검소도 어느 수준에서 행해지는 것이지 않을까.

절대 빈곤의 상태에서 검약이나 검소란 어쩌면 언어유희
인지도 모르겠다.

그 신문의 취재팀은 말한다.
▶실업이 고착화하고 ▶근로 의욕이 감퇴하며 ▶장래에
대한 극도의 절망감이 번지는 등 '빈곤의 함정'이 확산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더 우려시 되는 것은 주로 막노동이나 실업자로 힘들게
살아가는 1대의 열악한 직업 여건이 그대로 후손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2, 3대 역시도 막노동을 하거나 아예 직업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게다가 학력 또한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 이하인 1대들의
교육 빈곤 또한 그대로 2대(주로 중졸) , 3대(주로 고졸)
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지속적으로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선진 사회로 진입할수록 자수성가가 힘들 뿐 아니라, 설령
신분이 상승되는 계기가 있다해도 그것이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할 만큼 희박한 일이라고.

우리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이 가난했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웠기 때문에 특별히 가난이 문제될 것은 없었다.

가난한 집 아이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의해 충분히 우수한
성적을 내며 모범생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외망국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거의
사교육의 극성으로 인해 공교육이 붕괴될 위기에까지
처해있지 아니한가.

그러한 상황에서 공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하면,
그들이 이 심각한 학력만능 사회에서 발붙여 성공할 확률
이란 더욱 더 희박해지는 것이다.

가난은 누구의 선택도 아니고, 또 가난으로 인품과 도덕성
이 검증받는 시대 또한 아니다.

가난해도 마음만은 부자라면서 서로 서로 노력하고 아끼며
살아냈던 옛시절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난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기회와 혜택을
박탈당하는 소외된 이웃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할 수 없다는 말에 빗대어, 그저
게으른 자의 몫이라고 힐난하기에는 그들의 절망적인
삶의 행로가 너무 고달프지 않은가.

가난한 부모를 둔 탓에 대를 이어가며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대판 계급사회가 아닌가 말이다.

가난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대문으로 나간다는
말을 들으며, 그래도 사랑이 모든 것을 다 이뤄줄 마법의
방망이쯤으로 생각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실제로 가난때문에 가족이라는 끈끈한 관계조차 붕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모두가 풍요를 추구하고 또 선택된 삶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가난하고 그늘진 삶을 사는 이들은 불공평한 삶에 대해
당연히 부당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그들의 소외된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지만, 과연 이 빈부의 현격한 격차는
무엇으로 메꿀 수 있을 것인지.

기사를 읽는 내내 왜 그렇게도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참
으로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