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선배가 한 명 있어.
두번의 강산이 변하고서야 우연히 연락이 된 선배...
역시 그 선배는 모대학 공대교수로 자릴잡고 있었지.
전혀 짐작도 못했던 선배의 목소리를 듣고 얼마나 반가운지
작은 평수의 가게가 떠나가라 큰소리를 질렀지...나도 모르게...
그만큼 반가웠던 선배...찾고 싶었던 선배였어.
철이 없었다고나 할까...
나이와는 맞지 않는 순수함과 생각없이 내뱉는 말투에서
친구와 나 그리고 그 선배와의 젊은날...
선배가 다니던 K대 공대의 연구실엔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조잘거림으로 그득했었어...
그 선배를 마지막으로 본 건...
85년 4월의 어느 봄날이야...
28도라는 경이적인 기온을 장식한 대구에서의 친구 결혼식이 있었어...
하루 전날 그 선배와 대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었지.
너덧 시간을 지금 생각해도 쉴새없이 떠들었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았던지....
오죽하면 손님들이 조용히 좀 하라고 했을까...
나는 친구의 예비 시댁에서 하루를 자고...
선배는 여관방을 빌어 연구논문을 밤새워 작성해야 한다며
헤어졌었어....
결혼식이 끝난 후 좀더 있다 가라며 붙잡는 친구의 삼촌과
선배의 틈에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나를 쳐다보던
그 선배의 눈길이 지금도 선하다.
"야! 너 잘살고 있냐?"
"뭐 사는게 다 그렇지 뭐....선배는요?"
"나야 항상 덕을 쌓고 있잖냐...모든걸 덕으로 다스리지...ㅎㅎㅎ"
"결혼은 왜 이렇게 늦게 했어요?"
"내가 연애할 줄을 알아야지...시간 보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선배...그런데 왜 메일 안보내요..."
"야...내가 그랬음 진작에 장가갔지....그런건 영 취미가 없어.."
하는 선배이다...
역시 선배답다.....
선배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근데 너 말이야.... 너 그렇게 고상한 애였니?"
"왜요..."
"잠시 니 홈피 보니까 사진도 옛날보다 더 예뻐지고 ...
그림도 그리고...글도 쓰니.."
"ㅎㅎㅎ 글은....그건 내 일기나 다름없구.....
그림은 그냥 취미로 그리는거지......"
"그래도 참 좋아 보인다.."
"그래요?"
추켜 세우는 말에 내 입은 함지박 만해지고....
그후 다시금 흘려보낸 내 목소리에서 20대 후배인 줄 알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아직 그래도 니 목소린 젊다"는 말에
또 나를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들었어...
그 착각 속에서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
그리워 할 수 있는 대상.....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되잖아...
잠시 생각하면서.....
나에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람.....
난 그런 사람들이 좋더라.....
때 아니게 장대비가 내리는 오늘.....
추억의 저 편에 남아 떠 오르는.....
그리움의 날개짓을 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