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권태'라는 말 속에는 이미 그 말이 의미하는 나른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듯 합니다.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그게 바로 권태입니다.
매사에 권태를 느낄 수 있지만, 오늘은 특히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권태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천년만년 사랑을 맹세했던 연인들의 사랑도 3년이나 5년을 고비로 그 빛을 바랜답니다.
그러니 아무리 애틋했던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들이 막상 살아서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그들 역시 어느 시점에선가 권태기를 맞았을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반하여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데, 불행히도 그 사랑을 꾸준히 지속시킬 수 있는 평균 햇수란 고작 한 3년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별 대단치 않은 관계는 대략 3년 안에 결말이 난다고 해요.
뭐, 친구사이네, 어쩌구 하는 어정쩡한 관계도 어쩌다 한 3년 넘다보면 결국 '사랑'이 되는 수가 많은데, 그것은 또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이란 결국 햇수로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서로가 이성애를 느끼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인간관계라도 한 3년 이상 지속되다보면 세칭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기 때문에, 별 볼일 없던 남녀 관계도 친구가 연인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애를 3년 이상 하다가 결혼한 부부들은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도 가볍게나마 찾아오는 '권태기'를 미리 경험하게 되기도 하죠.
연애를 너무 오래하다가 결혼하면, 막상 갓 결혼해 신혼이어도 그게 별로 새로울(?) 것 없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답니다.
또 그 3년의 의미 속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성적(性的)으로 싫증을 느끼지 않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이란 점도 포함됩니다.
자, 그렇다면 연인 사이건, 부부 사이건 막상 그들이 권태기를 맞이하였을 땐 과연 어떻게 해결할까요?
연인 사이이라면 의외로 간단할 수 있습니다.
당분간 만나지 말든가, 아예 헤어지든가하여 해결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부부 사이가 되다보면 자칫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연인 사이처럼, 부부가 권태기가 찾아왔다고 해서 그저 쉽게 헤어진다면, 과연 이 세상에 해로할 부부가 어디 한 쌍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 있는 것입니다.
일시적이건 어쨋건 간에 이미 싫증이 조금이나마 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봐야하는 사이란 것에 말입니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더 도움이 될 텐데, 한 지붕 아래서 한 솥밥을 먹는 사이가 어떻게 얼굴을 안 보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말부부에겐 권태기가 늦게 찾아오거나, 아니면 아예 미미하게 왔다가 지나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보고 만나는 사람에 대해 신비감이나 신선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꽃노래도 서너번 들으면 싫어진다고, 아무리 미인이랑 살아도 그게 매일 '아이고, 예쁘네.'하며 감탄하고 살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자도 마찬가지지요.
듬직한 체구, 또는 날씬한 모습, 뭐 등등...... 그렇게 좋아보였던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미련스레 보이거나, 허약하게 보이는 등, 실망스러울 날이 올테니까요.
제 친구가 그럽디다.
어느 날, 친구 남편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데, 그 모습이 그렇게 꼴보기가 싫더래요.
밥을 다 먹으면 '돼지같이 밥도 많이 먹네.' 하다가, 어쩌다 밥을 남기면 '남자가 깨작스럽게 밥을 남기고 난리야.'한다나요.
결혼 8년 쯤 지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트림 소리가 역겹게 느껴지고, 소파에 길다랗게 누워있는 모습도 꼴사나와 보이더래요.
예전엔 아랫배가 좀 나온 것도 '중후'해 보여 좋더니만, 권태기가 되니까 아랫배에 살 안 뺄 거면 자기 곁에 오지도 말랬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혹시 아이스크림 통째 껴안고 먹었던 제 친구를 기억하십니까?
이 곳에 '찜찜해도 아이스크림은 달콤해'라는 내용으로 올린 글에 등장하는 제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 이젠 뚱보가 아닙니다. 55kg(?)쯤 되는 날씬한 몸매의 주인공이 되었어요.
한방병원 비만 클리닉에 수십만원씩 몇 달 갖다 바치면서 치료 받고, 또 한편으론 헬스클럽에서 땀을 바가지로 뽑았던 모양입니다.
남편의 따끔한 말 한마디에 충격받아서, 그 친구, 물불 안가리고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었답니다.
결혼한 지 10년도 한참 넘은 그 친구에게, 아내를 소 닭보듯 하는 남편의 행동과 말 한마디는 당연히 친구에게 자극이 되었던 거죠.
뚱뚱한 여자는 정말 싫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살 안 뺄 강심장의 아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남편은 사회에서 '쭉쭉빵빵'의 늘씬한 미녀들을 수도 없이 보고 사는데, 집에 있는 마누라는 퍼진 만두마냥 있으니......
어쨋든 그 친구는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전화 목소리에서도 자신감과 즐거움이 넘쳐나게 묻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권태기는 누구에게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권태기를 상대가 어떻게 슬기롭게 넘겨주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너, 나 싫어졌냐?, 좋다, 나는 너, 뭐 대단히 좋아서 사냐?' 이렇게 막 나가서는 서로에게 결코 좋을 게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태기가 찾아온 것처럼 보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론 그 상대에게 '예전엔 그렇게 내가 좋다고 목매더니, 어떻게 나에게 그럴수가?' 하는 미운 마음은 일단 먼저 접어야합니다.
그리고는 그 상대에게, 그토록 뜨겁게 사랑했던 옛날의 처음 감정으로 되돌아가, 따뜻하게 다독여주어야합니다.
밉고 섭섭한 마음은 접고, 그렇게 사랑으로 대하다보면 권태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반대로 자신에게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 상대도 나처럼 권태기를 슬기롭게 넘겨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줄다리기입니다.
어느 한 쪽이 줄을 놓으려하면 약간 힘을 주어 당겨서 그가 다시 줄을 당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서로가 팽팽하게 다시 잡아당기는 줄다리기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쪽이 줄을 놓으려한다고 해서 상대쪽도 줄을 놓아버리면 그 줄은 아예 바닥에 팽개쳐지고, 결국 그 게임은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비록 권태기가 찾아왔어도 영원히 헤어질 것이 아니라면, 다시 사이좋아질 때를 대비해서 서로가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안 돌아올 듯하며 우물에 침 뱉고 돌아서도, 결국은 돌아와 다시 그 우물물을 마셔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사 아니던가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밉게 보여도, 다시 예쁘게 보일 때를 생각해서 조금만 덜 미워하는게 바로 권태기 극복 방법입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