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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5] 멍게 예찬


BY ylovej3 2001-04-06

[숭늉 5] 멍게 예찬. width=400 height=200> TV를 켜니 거제도 앞바다에는 멍게 잡이가 한창이다.

촬영중인 고깃배 안은 잡아 놓은 멍게로 가득 차 있고 ,겨울 끝의 차가운 날씨에도 바쁜 손길을 늦추지 않는 어부들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다.

그 한편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리포터는 바닷바람과 마주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좀 더 실감나게 보이기 위해 줄곧 웃음을 머금고 있다. "이 곳 거제도 둔덕면에는 우렁쉥이 잡이가 한창인데요......' 열심히 설명하는 그녀의 환한 얼굴은 수북히 쌓인 멍게 덕분에 더 붉고 생기있어 보인다.

난 우렁쉥이란 말보다는 멍게란 말이 더 친숙하다. 방언이었지만 표준말보다 많이 쓰여 우렁쉥이와 함께 표준말이 된 걸 보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멍게란 말을 더 좋아하는가 보다.

이 곳 거제도는 나에게 있어 언제나 정겨운 곳이다. 친정 부모님의 고향이기도 하며 지금도 친가, 외가의 친척이 살고 계시고 선친도 이 곳 선산에 모셔져 있다.

2년 전 여름, 이 곳과 남해안 일대에서 멍게 집단 폐사로 수 십 억원의 피해를 봤다는 뉴스를 접할 때도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이 아팠었다.
그런데 2년 전의 집단 폐사된 바로 이 곳에서 이처럼 탐스럽고 싱싱한 멍게를 수확하고 있다는 것이 실로 반갑고 다행스럽다.

장면이 바뀌어 리포터가 한 상 가득 차려진 멍게요리 앞에서 '맛있겠다'며 애교 섞인 호들갑을 떨고 있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나도 덩달아 군침을 꼴깍 꼴깍 넘기고 만다.

멍게회를 비롯해서 멍게전, 멍게비빔밥, 멍게뚝배기, 멍게샐러드 등.. 어느 것 하나 먹음직스럽지 않은 게 없다. '난 멍게회밖에 먹어 보지 못했는데 멍게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저렇게 많았었나?' 절로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특히, 나의 입맛을 당기는 것은 멍게 뚝배기다. 우리가 흔히 먹는 된장찌개에다 멍게를 넣고 조금 더 끓이면 된다는데 저렇게 쉬운 걸 ....... '오늘 저녁 당장 해 먹어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나는 부산에 살면서도 생선회를 잘 먹지 못했다. 살아있는 생선을 바로 잡아 먹는다는 것도 끔찍했고 회를 입안에 넣었을 때 뭉클뭉클한 감촉이 싫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멍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고등학생 때던가? 엄마가 한 바구니 가득 사오신 멍게를 많이 망설이다 먹어 봤는데.... 처음 먹었던 그 날의 알싸한 맛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멍게의 생긴 모양을 보자면, 주홍색의 단단한 껍질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둘러싸고 있고 한쪽 구멍으로는 물과 배설물을 찍찍 뿜어 대는 것이 먹음직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내가 멍게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독특한 향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입안에 넣었을 때 뭉클뭉클함이 생선회와는 다른 부드러움이 있고 씹는 동안은 상큼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고 다 먹고 난 후에도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감도는... 생선회와는 다른 독특한 맛이 분명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까 내가 무슨 멍게 예찬론자 같다. 그 정도는 아니고..
지금은, 멍게뿐만 아니라 생선회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단지 먹지 못하는 경우가 두 번 있는데.....한 번은 '없어서 못 먹는 것'이고 또 한번은 '안 줘서 못 먹는 것'이다.*^^*

대학 선배 한 분은, 제주도 여행할 때 해녀가 바로 잡아준 멍게 맛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술자리에서 습관처럼 얘기하곤 한다.
제주도 성산포 바닷가에서 해녀가 잡아 준 멍게를 초장에 푹 찍어 소주와 곁들여 먹는 모습.....자연산인 멍게의 맛에 바다와 해녀와 돌의 어우러짐이 맛을 더 했을 테니 그 때를 잊지 못함이 오히려 당연하리라.

멍게 얘기를 하다 보니까 부산의 바닷가가 문득 그리워진다.
남천동, 광안리, 해운대, 송정 그 어디든 상관이 없다. 푸른 바다의 품속에서 발버둥치는 파도와 마주 할 수만 있다면......

가까운 횟집에서 생선회와 멍게와 곡주를 사 가지고, 마음 맞는 이들과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추억을 안주 삼아 많은 얘길 나눴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백사장을 마구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미친척하고 목청 높여 노래도 불러 봤으면 좋겠다.

평범한 아줌마의 욕심나는 희망사항이다.

2001. 4. 6.

바다가 그리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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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지기(知己)를 만나 마시면 천잔으로도 모자라고
말은 마음이 맞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많은 법이다.
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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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 백석 -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만 생각이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여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