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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恨!


BY 프레시오 2000-11-01




"에미야~ 별일없지? 그저 느이들만 건강하믄 된다 알쟈아~"

이건 언제나 변함없는 어머님께서 큰며느리인 내게 전화로 하시는 말씀이시다, 내쪽에서 "어머님도 건강하셔야 하니
식사 거르지 마세요" 라고 하면 "그래 내걱정은 말고 그저 그저 느이들만 건강하믄 된다아~" 일년 열두달 변함없는 멘트이지만 어머님의 진실한 사랑이 느껴 지기도 한다,


우리엄니
주무시기전 소주 반병을 드셔야만 하신다는
새까맣고 볼품없는 주름 투성이 삐쩍 마른 할머니이신
우리 엄니는 정말 서리서리 한이 많으신 분이다,
23년전 내가 시집와서 남편은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고
나는 시댁에서 남편이 우리들이 기거할 방을 구하여 연락 오기를 기다리며 한달여를 지낼때일이다,


심심해서 다락방에 올라가서 앨범을 들추던 나는 정말 기겁을
할뻔 했다, 무심코 들여다 보던 내눈에 가위로 싹뚝 오려진
채 나혼자 남아있는 사진을 봤던 것이다, 사진은 결혼전에
시댁에 드나들며 어머님과 안양유원지에 놀러가서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사진마다 무참히 나만 남기고 어머님은 잘라져 있으니 얼마나 놀랐던지 막 시집온 새댁으로 가슴이 섬? 하기도 하고해서 어린 시동생에게 물어 봤지만 시원한 대답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당돌한거 같아 어머님께 여쭐수도 없었다,


오랫동안 궁금증을 가지고 지내는 동안에 오해는 깊어만가고
남편이 있는 전방으로 떠나기전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머님께 여쭈어 보았다, 사진을 보여 드리며 얼굴을 살폈다,
어머님의 대답은 내마음을 더 쓰리고 아프게 했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아! 차라리 오해로 남겨놓을걸, 그러고 보니 집안에 어머님의 사진은 정말 단 한장도 없었다, 얼마나 세상에 나신것을 원망했으면 이렇게 까지 하는 마음에 나는 그날밤 뒤채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엄니
7살때 부모님을 다 여의시고 오빠랑 둘이 살았는데 그 오빠 마져도 어느날 나가서 돌아오지를 않으셨다고(사고인듯하다)
혼자남은 소녀는 자식이 없는 어느집에 양녀로 가게 되었고
그당시에 양녀란 지금과는 달라서 어린나이에 잔살림을 도맡다
시피 했는가 보다, 거기서 하나밖에 없는 혈육을 그리며
얼마나 서러운 어린시절을 보냈을까? 기다리던 오빠는 결국 오지를 않고....
17살 어린나이에 양어머니가 정해준 신랑에게 결혼을
한것이 바로 시아버님 이었다, 옛말에 남편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드라 하는말은 들어봤지만 부모복이 없으면 남편복도 없다는 말은 못들어 봤는데.....


우리엄니
" 내가 애비를 얼마나 때렸는지 가슴이 아프다"
이얘기는 평소 말이 없으시던 어머님이 소주한잔 기울이시면 18번으로 하는 말씀이시다, 마치 당신의 한을 쏟아 버리시려는듯 ...
모진고생을 하다가 시집을 왔지만 손위동서가 아이를 못가진
덕에 먼저 아들(나의 남편)을 낳은죄로 말로 다 할수없는 모진 설음을 받으셨는가 보다, 어머님의 말씀으로는 그럴때마다 아들(나의남편)을 죽어라 때리고 욕을 해댔다고 하신다, "죽어라 네가 죽으면 내가 편할거 아니냐" 고 하시며.... 어머님 말씀으로는그렇게 안하면 형님이 직접 아들을 들볶고 구박 할까봐 미리 당신이 막으신다는 생각으로도 그렇게 했다고....


우리엄니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하루전 어머님은 헐떡이시며 힘들어 하시는 아버님에게 귀에대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 그때 그돈 어디다 ?㏈? 경원이가 월남에서 가져온돈 말이유" 그게 언제적 얘기인데 아직도 어머님과 아버님의 풀지못한 애기가 된단 말인가? 한집에 수십년을 함께 살아오시면서 말이다,
어머님은 내게 말씀 하신다, "애! 끝까지 내게 그얘기 안하시고 떠나셨다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 까지 " 하시며 끝까지
당신을 무시 하셨다고 생각 하시던 우리 엄니는
평생 풀어야 할 숙제를 못풀었다는 얼굴이셨다,


나의 남편이 월남에 지원을 해서 어려운 집을 돕겠다고 다녀 왔는데 그때 아마 그당시 형편으로는 꽤 많은 목돈을 가져왔었나본데 늘 어머니를 무시하고 사시던 아버님이 몽땅 가지고 나가셔서 그날 안들어 오셨다고 한다,
어머님께선 땅을 좀 사놓자고 그리도 말리셨다는데 내가 시집와서도 보니 모든일이 아버님과 시작은아버님 시고모님 세분남매분의 손에서 다 이루어지고 어머님은 상대를 해주지 않는것 같았다, 그렇다보니 시동생인 작은아버님은 부인이 셋이나 되었고 놀란내가 물어보니 아들을 낳으려고 얻다보니 셋을 얻었고 얻을때마다 우리 아버님께 시고모님이 권해서 첩들에게 집을 사주었다고 한다, 새댁인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버님의 무분별한 형제애로 인해 우리집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어머님의 의견은 아예 무시되고...


형제들이 우애있게 지내려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고 또 모두들
어렵게 살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집을 통해서 알았다,
우리집에 돈있는 꼴을 못보던 시작은아버님께선 그후에 운수사업을 해서 한때 정말 잘 살았다고 하는데 그럴때도 우리집엔 전혀 도움은 커녕 조카들 용돈 한번 안주었다고 한다, 차사업이 망하니 여자들은 모두 떠나고 지금은 지하 단칸방에서 하루하루가 어려운 신세가 되어 힘겹게 사시지만 나는 전혀 동정하는 마음이 일지를 않는다,
모든게 자업자득이라는.....


우리엄니
언제인가 시댁에 갔을때 이웃아줌마들이 놀러와서 첫 딸을 낳은내게 " 언제 아들 날거여? 밥값을 해야지" 하니까 " 우리집일 걱정 말고 자기집일이나 걱정하고 살아요" 하며 면박을 주니 그후로는 그 아줌마는 물론이고 다른 아줌마들도 그런말은 아예 하지를못했다, 그리고 내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 자식은 하늘에서주는 것이지 사람마음으로 되는게 아니다"....


지금도 술을 안드시면 잠을 못주무시는 어머니...
언젠가 철없던 시동생이 술김에 유리창을 깨며 형에게
뭐 해줬냐고 대들며 소란을 떨때 주저앉아 통곡 하시던
약해지신 우리 어머니... 그후로는 어머님이 또 우실까봐
속상해 하실까봐 우리가 꾸욱 참기로 했어요!
자신이 이세상에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시는게 너무도
안스러워 " 어머니 두 아들이 건강하고 며느리들이 착한데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이세요" 젊어서 누군가에게 의지만
하고 뺏고만 살아오신 작은 아버님댁을 보세요! 자식들도 다니지 않고 덩그마니 살고 있잖아요, 하고 나의 손아래 동서와 함께 말씀을 드린후로는 사진도 찍으시고 너무도 많이 달라지신 어머니....


우리엄니
평생을 선비처럼 않아계시던 아버님 대신 생계를 꾸리시느라
손바닥이 마른장작처럼 되시고 손톱이 다 닳아져서 제대로
된 손톱 하나 없으신 우리 엄니...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서야 동네 아줌마들과 관광을 다녀보신
우리엄니...
항상 멀리 사는 손녀딸이 명절에라도 가면 보고싶을때마다
넣은거라며 오백원 동전을 저금통으로 하나씩 내놓으시던엄니...


결혼한 첫달부터 생활비 보내기를 내스스로 시작 했지만
살다보니 힘겨워 원망도 했었고 멀리 살지만 한번 다녀가시지 않는 엄니를 서운해도 했었고 맏아들이라면 끔찍이 여기는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 살다보니 된장 고추장 한번 안해주시고 아들 며느리 생일 한번 안챙겨 주시는 엄니에게 사랑도 받고싶어 서운해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엄니는 사랑을 받아보시지를 않아서
잔사랑을 주실줄 모르시는것을...


이제는 엄니! 오래만 사세요,
이제 내년이면 엄니 가까이서 엄니가 한평생 답답해
하신 한글도 가르쳐 드릴께요, 된장 고추장은 이제 제가
도사니까 엄니가 하실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건강하시고
웃는 얼굴로 사시기를 바랄뿐 이예요, 엄니! 엄니 집에는
언제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바글 바글 하지요?
엄니가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는 갈때마다 계신 아주머니들을
보고는 알아요, 엄니 입에서 단 한번도 누구 비판하는
소릴 못들어 봤는데 엄니를 닮아서 엄니 큰 아들도 그렇답니다,


엄니! 이밤은 또 얼마나 술을 드셨나요?
감기약 드신후엔 절대 마시면 안된다는 제 얘기 잊은건
아니시죠? 엄니! 이제 가슴에 ?셜?한 다 풀어 훌터내세요,
그 많은 한을 가슴에 담고서 긴세월을 어찌 지내 셨나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전 까지도 깨끗한 한복에 손수건 까지 다려서 용돈과 함께 주머니에 넣어드리며 경노당에 보내 드리던
엄니... 전 이따금 엄니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셨다면 통이 큰 여장부 일꺼라고 생각해 봅니다,


요즘 저의 걱정은 혹시 이제서 가까이 살게 되는데
엄니의 건강이 않좋아져서 맛난거 좋은거 엄니와 함께
즐기지 못할까봐 그게 걱정이 되네요,
오늘 유난히 엄니의 주름 투성이 얼굴이 떠오르네요,
엄니 제발 건강 하세요! 그리고 오래 사셔야만 멀리서 가끔
가서 되돌아 와야만 하던 큰 며느리가 엄니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곁에서 볼수가 있지요....



2000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두달 남은 49살을 보내는 허전함으로 이땅에 같은여자로 태어나 힘든삶을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