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영어에 더 흥미를 느껴 열심히 한 덕택에,
제법 영어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던 나 였으나,
막상 미국에 와 보니 나의 영어솜씨는 기대 이하였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영문법과 독해력 그리고 약간의 작문실력
뿐이었고, 따로 시간내어 연습한 회화실력도 미국생활을 제대로
하기엔 미흡하였다.
이민 온 지 30년 가까이 된 지금,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해도
겁나지 않을만큼 영어에는 자신이 있는데,
주윗 사람들도 "꽤 한다!"고 인정해줄 만큼 되기까지는
일찌감치 나름대로의 노-하우 (know-how)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 - 30년을 이곳에 살면서도 영어 제대로 못하는 사람 많음)
에피소드 1:
저녁을 먹고 평소대로 동생들과 테레비 앞에 앉아 "귀 뚤리는" 연습을
하고있던 어느날, 시트콤 (situation comedy)을 보다가 알아들은 부분이
있어서 웃었더니, 막내 동생이 물었다. "왜 웃어? 뭐가 우스워 ??"
처음에는 그저 보기만하던 녀석이,조금씩 알아들으면서 질문도 늘어가기
시작하였다. 나도 못 알아듣는 부분은 그대로 넘어가고, 알아들은
부분은 설명을 해주고... 동생 녀석은 들은대로 따라 해보고...
그러던 어느날, 같이 테레비를 보고있는데 동생 녀석이 갑자기
"하,하" 하며 웃었다. 형 체면(?)에 왜 웃는지 묻지도 못하고
같이 따라 웃었는데, 영문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동생이
'그저 따라하기' 석달만에, 회화공부까지 한 형을 앞지르는 순간이었다.
에피소드 2:
나보다 몇년 일찍 미국에 온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농구를 하자고 불러내어 나가보니, 같이 농구를 할 '친구'라며
소개하는데, 중학교 영어 선생님인 'Gary'라는 미국사람이었다.
나이가 10살이나 더 많은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기에 놀라했더니,
미국서는 20살 이상 나이 차가 나더라도 'friend'라는 관계가
가능하다 했다. 농구가 끝나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Gary와 짧은 영어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헤어지는데,
Gary가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너, 미국서 6년 산 저 녀석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 했다. 미국사람들과 별 문제 없이 대화를 하는 그 친구의
영어솜씨가 부러웠는데 내가 더 낫다니? 무슨 소린가 물어보니,
나의 문법이 그 친구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영문법 시험을 보면
내 성적이 더 나을지는 몰라도, 미국인과의 대화에서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이었는데.....
에피소드 3:
Adult School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시험을 볼 때마다 미국에 제일 늦게
온 내가 항상 1등을 하여 같은 반 학생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건 한국에서 이미 배운 영문법 실력 덕택이었고, 내 시험 결과에
존경심(?)마저 보이던 학생들이 항상 궁금해하며 내게 묻던 말은,
"ps ! 너는 말을 왜 그렇게 천천히 하니?"
곰곰 생각해보니 대답은 이러했다.
귀로 들어온 영어가 대뇌로 가서 한글로 번역이되고,
그 '번역 된' 한글에 대한 반응 역시 한글로 나오고,
그 '한글 번역'을 영문법에 맞게 번역을 한 뒤,
발성기관으로 전달이 되어 (휴~~~ 힘들다), 영어를 하게 되니,
자연 늦을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위의 세가지 일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영어를 빨리 잘 할수 있는
길이 보였다.
첫째, 회화는 문법이 조금 틀려도 괜찮다.
둘째, 발음 보다는 액센트와 음의 높낮이가 제대로 되는 억양이 중요하다
셋째, 사물을 볼 때 영어로 보는 연습을 하자. (숫자 "3"을 봤을 때,
..... "셋"이라는 생각보다 "three"라는 생각이 먼저 들도록)
넷째, 나는 미국사람이 아니다. 서투른 영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곤, 영어를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노력을 했다.
무조건 따라 해보고...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여보고...
부끄러운 생각도 버리고.....
변화는 내가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늘지 않는 영어솜씨에 매일매일 실망하며,
언제쯤 나도 쉽게 영어를 해보나? 하는 바램을 갖고
노력하기를 얼마쯤 됐을까...
어느날 나는 영어회화에 대한 조급한 욕심이 더 이상 없는 걸
느끼게 됐고, 그 때는 이미 주위에서도 인정해줄만큼
말문이 트인 때였다.
(2년 정도 걸렸는데,
빠른 사람은 1년 안에 해내는 사람도 있고,
늦는 사람들은 20년이 돼도 제대로 못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