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지아님,
전철역 앞 자그마한 꽃 파는 트럭에 노오랗게 상큼한 향을 폴폴 바람에 날리는 후리지아꽃을 보며 문득 님을 떠올렸어요.
후리지아꽃은 꽃 하나하나를 쳐다보면 별로 그리 예쁜 느낌은 없지만 다발로 묶여서 어우러져 있을 때, 비로소 그 정신차리지 못할 아름다운 향기와 봄을 닮아있는 가녀린 모습을 보게 되지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은 이 짧디짧은 인생에서 태양처럼 환하게 밝혀줄 명예를 찾고,
또 다른 사람은 꿈속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무지개를 찾아 거친 가시밭길을 달려가고 있지요.
어떤 사람은 자자손손 써도써도 없어지지 않을만큼의 돈을 벌어놓으려고 애를 쓰고,
또 어떤 사람은 허망하다,허망하다,허망한 인생이로고..하며 산속으로 들어가고, 혹은 사람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으로 애를 쓰며 신학에 몰두하고 있기도 하지요.
참으로 다양한 인생의 모습, 다양한 세상살이, 다양한 삶들이지요.
각자 자기가 생각한 가치기준에 맞추어, 살아왔던 배경과 주어졌던 환경에 따라 자신에게 결정된 인생관에 가늠하여 이렇게도 저렇게도 세월을 지나가고, 세상은 또 변하고 있어요.
가끔씩은 산에 올라가보면, 숨이 턱에 닿을 듯이 헐떡이며 몇 시간 수고를 하여 정상에 올라서면 깨알만큼이나 작아진 사람들이 사는 집을 볼 수가 있어요.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작아져 있는 사람들의 세계가 말이지요.
광할한 우주, 대폭발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그 시커먼 우주,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고, 수금지화목토천혜명, 그외에 알 수도 없을만큼,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이해하고 파악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별들중에 글쎄, 그중에 지구가 있다는 것이 또 경이로운 것이지요.
그 지구에 큰 대륙과 큰 대양들이 얼켜설켜 있고, 그 육지에 작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말이죠, 사실은 다양한 듯 하면서도 참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거든요.
후리지아님,
꼭 내 자신이 스스로 온 몸으로 체험을 해 보아야 어떤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고, 문학을 배우고, 수학을 배우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 어찌 보면, 스스로 일일이 체험하지 않고서도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었음을 아는 것처럼, 교과서 바깥의 세상일 또한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해요.
내 자신이 아프지 않고서도 어떻게 하면 아프게 되는 것임을 뻔히 아는 것 처럼요.
창밖에 엄동설한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의 추위로 온 몸이 오그라질 정도의 혹한이 닥쳤는데, 변변한 외투도 없이 내 몸을 보호해 줄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만약 고스란히 몇시간째 추위에 방치되면 내 몸은 이미 병을 예약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파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열병.
스스로 그 열병을 감당해내기엔 내 자신은 이미 너무 많은 것에 연루되어 있어서 서글픈 현실.
넘어져서 피흘리지 않아도 돌부리에 걸린다는 것은 예견된 불행일 수 있음이지요.
후리지아님,
후리지아 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피곤하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 꿈, 다시금 살아나갈 수 있는 격려가 되고 있어요.
후리지아 향기는 겨우내 삭막하게 메말라 있고,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봄이 다시 오고있음을 예보해주는 전령사와 같지요.
집안에 있으면 온 집안이 그 향기로 넘쳐나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살짝살짝 그 감미로움을 실어다주듯이, 님이 있는 곳에서 진정 멋진 향기가 그윽하게 빛나지요.
보세요.... 정말 아름다운 봄이 오고 있잖아요.
님의 계절이라니깐요.
용기를 내세요.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행여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리만치 짧은 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얼마큼 허락되어 있는 지,
아파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혹독한 댓가를 요구하는 지.....
후리지아님,
이름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운 님이실거라고 생각해요.
글에서 느껴지는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 얼굴을 보지 않아도, 또 일일이 배경을 알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됨을 믿어요.
님이 아프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일부러 그 혹독한,
얼음이 뼈와 살을 깎는 냉혹한 추위속으로 뛰어들지 않으시길 빌어요.
바람을 타고 꿈결처럼 날아오는 후리지아향기를 부디 얼리지 마세요.
밤하늘엔 총총 별이 맑은 얼굴을 하고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네요.
별이 있기에 밤하늘이 더 아름다운 거 겠지요?
우리 인생 어디가에도 저렇게 맑은 얼굴을 하고 숨어있는 별들이 있는거라고 믿고 싶어져요.
늦은 밤....
후리지아님께 공연히 글이 쓰고 싶어져서 이렇게 두서없이 주절거렸어요.
님의 맑은 향기가 오래도록 영원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