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821

또 하루 멀어져 간다...


BY 수선화 2000-05-23

또 하루 멀어져 간다..

그래..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 검던 머리숱에 흰그림자 하나 더 드리우며..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간다..

황당하게 시작한 하루..
조금 이르다 싶은 시간에 눈을 떴다
내 어릴적 할머니의 이른 기침소리마냥..
마른 기침소리를 내며 커피한잔을 청한다.

초저녁(?)잠으로 일찍 눈을 뜨긴 했지만 몸은 그저 말을 듣지 않는다
오두마니 앉아..그렇게 하루가 열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키고 있었다
아이 학교 갈 시간도 잊은 채..
남편 출근할 시간도 잊은 채..

아이의 '엄마 학교 갈 시간이야'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벌써 8시가 넘고 있다.
'엄마! 아빠 오늘 비상이래..'
'어..이게 무슨소리..비상은 분명 23일인데..오늘이..'
달력을 보니 23일 숫자가 보란 듯이 눈을 맞추고 있다.
메모판에 곱게 꽂아놓은 비상 통지서..
빨간 잉크로..3차 어쩌꾸..뭐라뭐라..벌금 30만원....
이런 큰일이네..벌금 30만원이라...어쩌나..

남편 눈치 살피며 다가가서는
'오늘 22일 아냐???? 난..내일 인줄 알았어..어쩌나...나..늙나봐..
요즘 초저녁잠도 많아지고..모두 다 귀찮아 지는 게..갱년기인가?
갱년기 우울증이 무섭다던데..요즘은 갱년기도 일찍 온다나..
이깟 건망증은 그래도 봐주겠는데..우울증에 걸리면..나 어떻하지..
또 당신은 어쩌구..초기증상인가...'

남편 눈치를 슬슬보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 내 이야기에 그만 우울해지고 만다..

그래..정말 늙는 건지도 몰라..
그 놈의 갱년기가 남보다 조금 이르게 내 빈 구석을 잘도 찾아
자리 메김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루 저물어 가는 이시간..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젠..두려워 지려 한다..
저물어 가는 하루..
내 검은 머리숱에 하얀 그림자를 드리우고 또 멀어져 가고 있구나..

또 하루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