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프로페셔널한 엄마란 말이 더 맞으리라. 직장을 나가는 엄마만큼 단정한 모습은 못되겟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깔끔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으로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손질과 화장을 하고, 쓸만한 옷을 골라입고 근무에 임한다. 가정은 내 직장이다. 그러나 나는 살림을 잘 못한다. 재미없다. 노력해도 잘 안느는게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게 살림이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을 엄중히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으로 분리한다. 물론 둘 다 잘해야 할 일이지만, 육체적 양분을 주는 데에 필요한 노동 (청소, 요리, 빨래)과 정신적 양분을 주는 양육 두가지 중에서 나는 육아 부분에 더 큰 신경을 쓰고 살림은 느슨하게 하는 편이다. 전공이 육아이고 살림이 부전공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대단한 영재교육이라도 하는 것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다. IQ도 EQ도 과히 높지 않은 아들과 딸이 다른 IQ와 EQ가 높은 애들한테 주눅들지 않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내놓고 자랑할 게 없는 엄마이다. 그러고보니 한가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나는 아이들과 잘 논다는 것이다. 내가 매일 직면하는 딜레마는 아이랑 잘 놀까와 밥을 잘 먹을까이다. 물론 재미있는 쪽은 노는 것이니 대부분을 놀고 만다. 나도 양심은 있는지라 일 주일에 세번 정도는 밥을 준비해 놓는다. "강신주네 식당은 격일제로 운영합니다"가 내 모토이다. 어쩌다 구색이 차려진 식탁을 맞으면 에릭은 고맙다면 내 손에 키스를 퍼붓는다. 나느 속으로 '이그, 정상적인 한국 여자랑 결혼했으면 까무러쳤겠구나" 생각하면서 시침 뚝 떼고 있다. 밥이 준비가 안 된 날은 퇴근한 에릭과 같이 '뭘 먹을가' 궁리하며 같이 만들어 먹는다. 밥을 잘 챙겨 먹는 날은 애들이 덜 재미있는 날이다. 집안정리도 마찬가지다. 집이 단정한 날은 애들이 한 번이라도 혼나는 일이 더 많아진다. 내가 성질 안 내고 애들도 편안하게 있으려면 살림은 느슨하게 해야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낡은 옷을 얻어다 입히면 정신 건강에 좋다. 찢어져도, 더러워져도, 신경을 안 쓰고 지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사회의 비판과 칭찬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나 많은 편견에 의해 물든 칭찬과 비판이기 때문이다. 때 빼고 광낸 집을 보여주며 "정말, 열심히 사는 주부야"라는 칭찬을 받으려고하기엔 하루가 너무 짧고 나의 나이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칭찬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아쉽지도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한국 여성들에게 내 팔자 자랑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두려움이 생긴다. 오해 받아도 마땅하다. 나는 일반적인 한국 여성보다는 아주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벨기에 시댁에서 멀리 떨어져, 페미니즘적 의식이 상식화 되어있는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제사상 올릴 때의 고역, 시어머니의 억압과 시누이의 참견, 끝이 안나는 가사노동과 자녀 교육의 스트레스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여성과 내가 놓인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 남성들께 여성의 수고를 감사하고 부인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가 되라 권유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페미니즈스 아빠의 삶이 결코 남성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남 보기에 부끄러운 생활방식이 아님을 이야기하려 함이다. (이미 대안적 삶에 동참하는 남성들에게는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고개숙인 아버지'의 실패담을 기억하자. 그는 남성적 남자관을 장려하는 사회에 이용되었고, 가정과 남성을 유리시키고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성차별 사회의 피해자였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가정에 돌아왔을 때, 그를 따뜻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가정의 신뢰와 사랑은 바닥나 있었다. 아버지는 완전한 타인, 본받으면 안되는 패배자라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런 고개숙인 아버지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아버지 스스로가 가정 내애서 자녀 양육이 '나의 일'이라느, 집안 일이 '나의 일'이라는 주인 의식으로 살아야한다. 그래야 진정한 집주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돈을 벌러 하루 종일 나가 잇는 에릭은 나보다 살림과 육아에 기여하는 정도가 적을지도 모르지만 책임감만은 투철하기 이를데 없다. 깨끗한 가정과 행복한 자녀를 만드는 임무는 우리 공동의 것이다. 에릭은 절대로 나에게 "집안이 왜 이모양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저녁 준비가 안 되었다고 나를 탓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내 '더러운 성격'을 건드리지 않는 게 그에게 이로워서만이 아니다. 하루 종일 애 보면서 밥 한 끼 차려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자기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에릭의 역할이 두 배 정도 늘었다. 그는 출근 길에 애들을 유아원에 데려갔다가 점심 시간에 잠깐 시간을 내어 애들을 집에다 데려다 놓고 다시 회사로 간다. 그러면 내가 1시간 정도를 글쓰는데 더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도 7시 30분에 저녁상을 치우면 목욕과 책읽기, 재우기를 에릭이 담당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가정 내의 살림과 육아의 역할이란 그때그때의 배우자 개개인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에릭이 가계에 더 많은 금전적 기여를 하지만, 나는 나대로 호시탐탐 돈 벌 기회를 찾는 전업주부이다.그래서 가끔씩 일을 하기도 한다. '내 본업은 전업주부고 강의는 내 아르바이트야' 라며 강의도 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에릭의 수입을 능가한다면 요리를 잘하고 애들을 잘보는 에릭은 기꺼이 집에 머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가정의 구조를 뛰어넘는다고도 할 수 있다. 전업주부로서 돈 없으면 돈벌러 나가겠다는 말은 직장에서 돈을 벌어오는 에릭이 가사를 자기 일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녀, 남편/아내, 밖/안, 공/사, 보수/무보수의 엄밀한 구분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이 글은 제 책, '세계를 놀이터삼아' (문예당) 에서 퍼왔습니다. 민주적 가정을 만들고, 전업주부의 노동이 사회의 인정, 아니 그 이전에, 남편의 인정을 받는 풍토를 만들고 싶어서 제 치부를 다 드러내면서 쓴 글입니다. 남편과 부부싸움할 때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후후후. 조만간에 이글의 뒷부분도 퍼올리겠씀더!! 충성!!
강신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