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려던 큰딸애가 거울앞에 앉아있는 나를향해 너스레를한다
"엄마는 이혼하러가는 사람이 안하던 화장은 왜 하고있우? 꼭 파티장에가는 사람같네"
"이혼파티 아니겠니 이혼주례하는 판사님께 잘보여야하지 않을까?"
내게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세번째 법원출두.
난일찍부터 서둘러 경호원과 만나기로한 역으로 나갔다
흐린날씨 탓인지 옷깃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이 차갑다
50평남짓의 109호법정.
홀안에는 백여개의 의자가 놓여있었고 앞에는 간단한 재판석이 배치되있었다
좌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대기한사람들로 가득찼다
우리나라의 이혼률이 30%라는 언론보도가 입증되는 순간이기도했다
경호원과나는 맨뒷좌석에 자리를잡고 앉았다
우리보다 조금늦게 도착한 님편은 어느틈에 우리 바로앞 좌석에와서 털석앉았다
경호원이 남편의 등뒤에다 손을 가리키며 내게 남편이냐고 묻는다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재판석에서 사건번호와 원고와 피고의 이름을 호명하면 원고석과 피고석에 나눠앉아 재판을 받았다
변호사를 임명한 사람들은 본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변호사가 대신 출석하여 재판에응했다
40여분의 시간이 흘러 판사는 우리 두사람을 호명했다
"사건번호 2001드단 31318
원고ㅇㅇㅇ 피고ㅇㅇㅇ 앞으로 나오십시요"
나는 원고석에 남편은 피고석에 앉았다
"두분은 그동안 만나서 합의좀 보셨습니까?"
"만나본일도 없습니다"
남편이 대답했다
판사는 "남편분께서는 어떻게 생각좀 해보셨습니까? 다시 결합해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판사가 질문하자 남편이 대답하고있었다
"지금까지 여러번 집을나갔던 여자였지만 제가 잘 타일러서 살아왔고 난 잘살아보려고 했는...."
남편의 대답이 끝나기도전에 난 자리에서 벌떡일어섰다
"판사님 이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있습니다 이혼소송 내내 다 죽이겠다고 협박전화를 보내왔고 자기 친구들에겐 마누라가 이혼을 안해줘서 지금껏 못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저는 남편이 죽인다는 협박때문에 법원에 올대마다 경호원과 오고있습니다 이사람은 법원문만 나가면 살인마로 변하는사람입니다"
난 법정안이 떠나가라고 큰소리로말했다
남편이 말했다
"경호원인지 뭔지 압니까?
아마 딸하고 관련된 남자일겁니다 "
난 순간 가방안에 들어있던 소형녹음기를 앞에있는 탁자위에 힘껏 소리내어 올려놓았다
"여기 다 녹음됐습니다 음성사서함으로 이혼하면 식구들을 다 죽인다고 딸들 휴대폰에다 계속협박한 사람입니다 판사님이 들어보십쇼"
시종 웃음을 참는듯한 얼굴로 두사람을 보고있던 판사가 말했다
"원고. 판사도 얘기좀 하십시다
피고는 직업이 뭡니까?"
판사가 남편쪽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남편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목사입니다"
"목사님이 왜 그러십니까?"
내가 판사의 말을받았다
"이사람은 지금은 목사도 아닙니다
여러해를 놀고먹는 사람입니다
이시람이 세상에 나와서 할줄 아는거라고는 먹고 마시고 놀고 거짓말하고 섹스하는것 외엔 할줄아는게 없는사람입니다"
남편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보십쇼 이 여자가 이런 여자입니다
정신없는소리 하는거보십쇼"
난 더 참을 수 없었다
두사람의 언성은 높아가고 법정안은 순식간에 싸움터로 변했다
내흥분은 가라앉지않고 계속되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도 없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다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아니던가.
"두분이 이렇게 흥분하시면 안됩니다
두분은 이미 이혼을 하겠다고 법원에서 거론이됐기 때문에 이혼은 합의가 된일이고 남은건 위자료 문제인데요 피고가 집을 사는데 자녀의 카드를 사용했다고 하셨는데 원고는 증거 될만한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시고 자녀들의 진술서를 받아오십시오 피고는 원고가 가출한적이 있다고 했으니 증언해줄만한 사람의 진술서를 받아서 보내시고
다음재판은 한달 후에 있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라는 판사의 말에 난 동의할 수 없었다 난 판사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이게 뭡니까? 이런문제는 지난번에 조정위원에서 얘기를했으면 바로 준비해서 보냈을텐데 이제와서 다시 또 오라니요 벌서 네번째입니다 전 나오라고 할때마다 나올만한 형편도 못돼고 이사람이 계속해서 협박을하기 때문에 전 올때마다 경호원과 나와야됩니다
그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전 그럴만한 돈도 여유도 없는사람입니다 남은건 위자료문제 뿐인데 그건 위자료라고 볼 수도 없는돈입니다 남편이 아이들의 카드를 쓴돈만 달라는건데 뭐가 그렇게 오래걸리는 일입니까?
위자료를 요구했다면 몇억을 요구했지 그깟액수를 요구합니까?
전 저사람이 주는돈은 동전한잎도 쓰고싶지않은 사람입니다
판사님 지금 판결해주십시요
전 다음에 또 나올수도없습니다"
추위에 떨듯 내입술과 손과발은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울며 소리치는 내게 판사는
"원고. 오늘 판결은 어렵습니다
재판이란 순서가있고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증거서류를 정확히 하셔서 다음에 꼭 나오십쇼 흥분은 가라앉히시고...."
난 힘없이 법정문을 나올 수 밖엔없었다
내몸과 마음은 상심할대로 상심해있었다
법정문을 나서자마자 뒤 따라나온 남편은
"너 이혼 하고나면 내가 가만 둘줄아냐
너 죽이고 나죽고할거야
네가 이세상에 살아남을것같냐"
"목사님 지금죽이시죠
나중까지 갈것없이 지금 죽이세요
그래 지금죽여라 지금죽이라구"
난 경호원을 믿고 남편의 몸을 밀치며 악을쓰고 있었다
경호원은 내몸을 남편에게서 떼어내며 자제시켰다
이때 남편은 경호원에게
"야 넌뭐야 뭐하는놈야
경호원? 네가 뭘하는놈인지 알게뭐야
너 이여자하고 무슨관계야?
이여자는 아직 내마누라야 네놈이 왜상관야"
그때 우리 바로 앞에서 택시 한대가 멈췄다 난 더이상의 실랑이를 단념하고 택시에 올랐다
K산으로 들어가는입구에서 버스를내렸다
인적이드문 산길로 난 혼자 걸어들어갔다
얼마쯤 걸어간 산속엔 언제그리도 피어있는지 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진달래꽃잎을 따서 입속에넣었다
싸아하고 달작지근한 향내가 입안가득고였다
진달래꽃잎은 옛그대로인데...
아. 그리운날들 이제는 가고없는 어린시절들...
난 더 걸을 수 없었다
풀섶에 주저앉았다
내모습이 너무 작고 초라해보였다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부모님이 그리웠다
난 휴대폰을열어 저 하늘나라 그어딘가에계실 부모님게 전화를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 그사람하고 이혼해요 참잘했죠 잘한거죠 아주 잘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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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 그사람하고 헤어지고싶어요
저 헤어질래요 아버지"
어쩌다 아버지와 마주칠때면 난 아버지앞에서 참고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며 한마디씩 푸념을 하곤했다
그럴때면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래도 참고 살려므나 어쩌겠니 네 늙은부모 살아생전엔 그런생각은 하지말고살렴 네부모 눈감거들랑 그때 네맘대로 하렴 그때가지만이래도 참고 살려므나"
눈물을 그렁그렁이시며 딸의 마음을 달래시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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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들고있던 휴대폰을 내던지며 발버둥쳤다
왜 울고있는걸까?
인적도없는 이 산중에서 왜 혼자 울고있는걸까?
냉정하게 끝까지 잘견디리라고 마음먹었던 내가 흥분을 가라앉히지못한것이 끝내 속상하고 괴로웠다
무엇보다 마음을 추스리는일이 필요했다
아니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 더 인간적일 수 있는지도모르지.
내 마지막감정 그어딘가에는 아직 맑은 영혼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오랫동안 풀섶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흐릿한 하늘은 그래도 봄기운으로 온통 눈이 부시다
오늘만 울고 이제 울지말아야지
이제 눈물따윈 흘리지않을거야
봄빛이 가져다주는 새롭고 신선한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내게 주어진 순간들을 아름답게 가꿔나가자고 해맑은 봄빛에다 난 내 상하고 헝클어진 영혼을 씻고있었다
난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온몸에 묻어있는 마른풀들을 털어냈다
그것들은 내가 이제껏 살아온 옛시간들. 잊고싶은 지난날들을 털어내는것이기도했다
난 눈을 뜬채 봄이 가득한 하늘을보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요
하나님이 싫어하셔도 전 이렇게밖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제마음 아시지요 다 아시지요?"
난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을안고 산길을 내려오고있었다
그때 내등뒤에서 언듯 부드럽고 낮은음성이 조용히 들리는듯했다
"그래 그럴수도있지......'
진달래꽃을 한웅큼따서 입속에넣었다
순간 온세상은 진달래꽃 향기로 넘쳐나고 산길을 내려오는 내발걸음은 새털처럼가벼웠다
푸드득---.
저만치서 꿩한마리가 높이솟은 나뭇가지사이로 힘차게 날아오르고있다
------never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