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욜날 오후 4시 양재동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오페라 극장앞에서 고등하교 동창을 만나서 극단 유와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오페라 '로마의 휴일'을 감상하였다.
이 오페라는 사실 오드리헵번 주연의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었지만 영화에서 맛 볼 수 없는 생생한 음악을 제공하였음으로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었다.
-일욜 오후 4시 나는 허겁지겁 양재동을 찾았다. 점심을 먹고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웬 때가 그리 많이 나오냐? 열씨미 밀다 보니 시간이 급해 허겁지겁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갔지만 아슬아슬 5분전에 도착할 수 밖에... 30여분을 기다려준 친구에게 넘넘 미안했다. 역쉬 친구란 고마운 것이여...
이 오페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유인촌씨가 주연을 맡았지만 연륜과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중후함과 안정감이 관객을 끌어 모은 듯 싶었다. 비싼 입장료탓인지 객석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일욜 오후 입장치고는 적잖은 관객이었다. 우린 초대권이라 옛날 왕과 왕비가 앉아 보는 로얄박스석에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보는 맛도 새로웠다.
-유인촌이 주연이라니..... 보다 핸섬하고 날렵한 젊은 총각이 주연이었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까? 아줌마들이 되고보니 이젠 우리보다 나이많은 연기자들 보다는 젊은 사람이 좋더라.
그래, 가을동화의 송승헌처럼. 물론 연륜과 경력도 좋지만, 안 그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 더 오페라에 걸맞는 배우가 좋잖아..
어라? 이건 또 뭐야? 초대권이라 좋다구 해서 높은 자리엔 앉긴 앉았지만 에구구구...
비스듬히 앉아서 보니 불편하기 그지 없네. 나이가 나이니만큼
그저 편안한게 젤이야.
누워서 오징어다리나 뜯으며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그래?
있다가 쉬는 시간에 밑에 비어있는 자리로 옮겨야지...
야! 공짜로 오페라 보는 맛 좋은걸...
어휴~~~ 공짜나 되니깐 들어와 보지, 웬....
로마의 휴일의 첫장면은 앤공주가 갑갑하게 억눌려서 사는 자신의 처지를 처량하게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맑고 낭랑한 목소리와 화려한 드레스 의상과 품위있는 자태가 첫장면을 아주 인상깊게 했다.
누구나 자기가 있는 곳에서 최대의 만족을 하고 살지는 않는가 보다. 앤공주는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을 결심하고 로마의 거리로 나선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머리도 컷트하고, 젊은 여인이 되어 보통의 젊은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한다.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꽃을 사들기도 한다. (물론 꽃집남자가 그냥 주었지만...)
일탈을 시도한 기쁨은 무척 크고도 새로웠다.
앤공주는 첫장면의 시들어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생기발랄한 아가씨가 되었다.
-와~~~ 저렇게 멋진 의상, 나도 한 번 입어 보았으면... 좋겠다. 저 여배우는. 나도 배우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화려한 조명에, 의상과 멋진 남자배우들... 좀 더 다른 인생이 있었을텐데....,
어쩜 저렇게 꾀꼬리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
아이, 샘나!! 아이, 미워!!
극이 중반이 들어서면, 신문기자인 조 브래들리가 지난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자기 방에서 재워준 사람이 바로 앤공주임을 알고, 자기의 빚도 청산할 겸 특종기사를 쓰기로 맘을 먹고 호의를 베풀며 로마의 여기저기를 관광시켜준다.
앤공주는 조 브래들리의 그런 속셈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아주 선량하고 착한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게 되고, 사랑하는 맘이 생기는데, 사랑이란 때론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지만, 결국 공주라는 신분때문에 원래의 위치로 돌어가고, 그와의 만남은 가슴속에 묻을 수 밖에 없다.
-이젠 우리에게 이런 사랑이 또 올 수 없겠지? 손을 잡으면 가슴까지 바르르 떨리던 그런 느낌을 다시 맛 볼 수도 없겠지?
대신 우리에겐 내살인지 니살인지 구별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사람과 그저 한이불 속에서 푸근하게 잠들수 있는 情만이 가득하겠지...
참, 음악 듣기 좋다...
오페라가 끝나고 나서 친구와 나는 낙엽이 얼굴을 스치며 툭 떨어지는 서초동 길을 걸어서 아주 아담한 우동집을 찾아들어갔다.
뭐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만이 근사할쏘냐?
맘맞는 오랜 친구와 뜨끈뜨끈한 우동을 시켜놓고 마주 앉아 먹는 맛은 월매나 좋은지...
보고나온 오페라 얘기도 하고, 나즉히 틀려있는 음악도 감상하고, 아이들 얘기며, 시댁식구들 얘기까지...
우동집에선 보리차대신 아주 맛난 녹차를 주었다. 거푸 몇잔을 마시고 나니 입안에서 아주 향긋한 차내음이 감돌고, 배도 부르고 추웠던 몸도 조금 녹이고 나니 하루의 피곤이 몰려들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오는 길엔 말랑말랑한 연시를 한아름 샀다..... 내 대신 아이들 저녁 챙기신 어머님을 위해서.
가끔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윤기있게 하는지....
*초대권을 준 내동생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며.
대한민국의 모든 아줌마들도 가끔 시간내서 연극이나 영화를 보았으면....그런 호사스런 사치가 우리 아줌마들에겐 얼마나 큰 삶의 위안이 되는지....
멋진 가을을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