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느긋한 엄마를 만난 덕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큰아이 초등 3학년인 엊그제부터
서서히 영어를 가르쳐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 세대는 처음 영어를 접한 것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
요즘 아이들은 모든것이 빠르게 시작되는 듯 하다.
아이들이 테입을 틀어 놓고 교재를 보면서 발음을 따라 하고,
중간 중간 chant라나 뭐라나 박자에 맞추어 노래하듯 익히고,
아뭏튼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였는데 ...
고만고만한 두 아이들이 앉아서 낯설기만 한 언어를 익히는걸 보면서
저 아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이다음에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그 모습이 나에겐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적에도 영어선생님이 여러명 계셨어도
발음이 조금씩 달랐던 그런 기억이 있었는데,
아이들도 똑 같이 배우면서도 조금씩은 다른 느낌이었다.
작은아이는 어쩌면 그리 천연덕스럽게 억양까지 섞어서
발음을 적나라하게 잘 따라하는지 나에게 매번 웃음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참 발음 좋다... 하며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큰 아이가 슬슬 눈치를 준다.
엄마는 동생만 칭찬한다며 그새 시샘을 하며 큰 눈에 눈물방울 매달기 일쑤이다.
칭찬을 받은 작은아이는 마냥 기뻐하며 하는 말이
"엄마 그런데 영어 잘 하면 이다음에 미국사람이랑 결혼해서 미국가서 살 수도 있어?"
"그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어쩌지?"
그렇게 되물으며 벌써부터 걱정을 늘어 놓는다.
그래... 그럴수도 있지 ...
하지만 엄마는 코 큰 미국사위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
ㅎㅎㅎ
한바탕 웃어제키고 있을 무렵 큰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살그머니 데리고 나와서 난 그렇게 말한다.
"동생이 너보다 많이 영어를 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발음에 자신감이 좀 있어보여서 칭찬해 주었어" 하며 아이를 달랜다.
학창시절 그 복잡한 장문독해니 뭐니 사전 옆에 끼고 다니며
그렇게도 무수한 단어들을 기를 쓰며 외워대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그런데도 지금 생활속에서 과연 얼마만큼 그때 공부했던 영어를 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제 저녁에는 낮시간 동안 공부한 교재를 가지고 오라 해서 아이들에게 읽어 보라 했다.
그 단어는 "zero"였는데 아이가 "지브로"라고 읽는 거였다.
그 단어속에"b"가 없는데 어떻게 "브"라는 소리를 내느냐고 한사코 물어도
외국인의 발음으로 녹음된 테입을 들으면 자신의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거였다.
몇번씩 테입을 돌려가며 아이에게 이해를 시켰지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길래
엄마는 더 이상 못 가르치겠으니 내일 선생님 오시면 꼭 그 부분을 질문하라고 했다.
솔직히 처음 영어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발음문제는 처음 시작이 중요할 것 같아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가 아이에게는 중요한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낮동안 집에 있는 엄마가 아니니
직접 공부를 하는 과정을 보지 못하니 정확하게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더욱 어려움이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할일은 태산같은데 ...
아이들은 엄마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뭐는 영어로 뭐야?를 외쳐 댄다.
아는 단어는 성의 있게 알려주고 미처 생각나지 않는 단어는 나중에 배울꺼란다...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엄마가 먼저 공부를 해야할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 더 이상 엄마는 그런거 모른다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서는 안될지도 모르는 위기의식을
앞으로는 점점더 느끼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리세대와는 너무도 많이 다른 공부하는 방법의 차이
그런 거리감이 때론 아이들의 엄마인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학창시절 지 아무리 영어를 잘 했으면 뭘 하랴 ...
어설프게 알려주는 발음이 때론 아이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마도 아이들이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잊고 지내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나는 다시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어쩌다 해외여행 한번이라도 갈라치면
짧은 영어 실력으로 헤메는 일은 없어야 될텐데 ...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입이 댓발은 나와 가지고
밥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구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밥을 어디로 먹고 있는지 도무지 무슨 맛인지 몰랐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쉬운일이 아닌 듯 하다.
가끔씩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 모습이 바로 아이들에게 들어있음을 발견하기도 하는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없는 아이들의 학습에 대하여
이런 저런 생각으로 늘 머리가 아프다.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고,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고, 흥미로워 하니까
그냥 지켜 보며 기다리는 일만이 나의 할일로 남아 있다.
마음 한켠에서는 좀더 자신있게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 보고 싶다는
은근한 욕심이 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