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에 대한 편견과 오해
아줌마는 예비 아줌마에게도, 남성에게도 부담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줌마의 부정적 행위가 사람들 눈에 뜨이면 사람들은 곧바로 아줌마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 나선다. 요즘의 사회적 시선은 아저씨와 오빠를 비교해가며 아저씨를 희화화하기 시작했는데 아줌마를 희화화해온 것은 더 전통(?)이 깊다. 아줌마의 긍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주의 집중하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비난하는 것은 아줌마 집단이 비난을 받아도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임을 이용하는 것이다.
몇가지 일반적인 오해와 편견을 다루어 보면서 자세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오해1. 아줌마는 생존경쟁에 시달리지 않으며 편안히 먹고 산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생존경쟁이 남성을 소외시키는 것 못지 않게, 혹은 보다 더 여성을 소외시킨다. 퇴근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휴식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하면 티가 안나고 안하면 티가 나는 그림자 노동이기 때문에 성취감 마저 주지 않으며 여성을 소외시킨다. 또한 결혼한 여성에게는 시가 뒷수발까지 요구된다. 예전에는 남성이 하던 장보는 일, 관공서다니는 일등을 이제는 여성이 담당하고 있고 집안대소사 챙기는 일까지 담당하며 노인분들 병나시면 그 간호까지 해야 하는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안히 먹고 산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 또, 가사노동이 자동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자동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아줌마 중에는 생존경쟁에 시달려가면서도 동시에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오해2. 아줌마는 자기나 자기 가족 밖에 모른다.
아줌마에게 집에서 가사노동을 잘 하고 집안 행사를 잘 챙길 것만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시각과 사회적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비정합적이다. 가사노동과 집안 일에 신경쓰다보면 사회적 의식이나 시각을 가지기가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들 어머니 노릇,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주부 노릇에 완벽해주길 바라면서 그 와중에 어떻게 짬을 내어 신문을 보고 사회적 의식을 기르겠는가. 사회적 의식을 기를 조건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의식이 없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남존여비의 편견에 입각한 것이다. 감성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여가라고 해봐야 드라마를 통해 대리 카타르시스 하는 것이 고작이다. 과외나 부동산 투기등의 문제가 나오면 아줌마들의 치맛바람을 거론하면서 아줌마를 희생양으로 삼지만 실제로 개별 가정에서 수험생이 입시에 실패하거나 가정의 재산을 늘리지 못하면 엄마가 뒷받침을 못했다거나 주부가 살림 솜씨가 없어서 그렇다는 비난에 노출되기 쉽다. 뿐만아니라 아줌마 중에는 사회봉사활동으로 자신의 생활을 채우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나쁜 것에는 집중하고 좋은 것은 외면하는 태도로 아줌마를 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이 사그러 들지 않는다.
오해3. 명절증후군이라는 것은 단지 일하기 싫어서 생기는 것이다.
남성들은 유혼여성들의 감성노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에게는 자신의 부모가 자연스러워보이고 처가 부모가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여성에게는 시부모가 이해가 안되고 친정부모가 이해가 잘 되기 마련이다. 가정마다 가풍이라는 것이 있고 살림이며 제반 가정사를 처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방식의 차이가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을 상당히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사위는 '참 희안하구나' 하면서 앉아있으면 그만이지만 며느리는 그 희안한 가풍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야 하고 손님 접대를 해야 하고 그 기호체계에 부합하지 못할 때는 시어른으로부터 걱정을 들어야 한다. 여성에게도 명절에 자기 부모를 만나고 자기 친척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중적인 가사노동에 시달리면서 감성노동까지 하다보면 스스로 왜 결혼했는가 하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며느리는 결혼해서 시가 부엌에 들어서면서 부터 남의 집 부엌데기가 되는 듯한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한 시달림을 현대식교육을 받고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여성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견뎌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데 그것을 견뎌내려니 병이 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 가족의 제사를 부담스러워 하지만 유교 전통의 가부장제하에서 명절에 시가에 가지 않는 용기를 가지기도 어렵다. 이혼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기 전에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현실적으로 본인이 가지 않으면 다른 여성이 그 노동을 더 해내야 하니까 다른 여성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서라도 안 갈 수 없는 것이다. 살아계신 친정 부모 생신에는 못가도 돌아가신 남편 조상의 제사에는 가야 하는 것이 며느리에게 요구되는 바이니 그 비합리성을 감당해낸다는 것이 고문일 수밖에 없다.
오해4. 아줌마들이 성별 분업을 파괴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현모양처가 얼마나 좋은가.
아줌마는 아내나 엄마나 며느리로서만 살 수는 없다. 아줌마에게도 개인의 자아실현이 필요하다. 결혼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자아실현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남성이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여성도 결혼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아실현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남성들이 여성이 현모양처로 있어 주길 바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자아실현을 담보로 해서 자신의 성취를 이루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게 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오해5. 아줌마에게 일을 맡기면 가족 핑계를 대면서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직장을 가진 아줌마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에 가족 문제를 감당하면서 직장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본인의 여가를 모두 희생하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양육과 가사노동을 한 사람이 맡아서 해야 한다는 사고이다. 양육에 여러 사람이 참여할 때 오히려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모든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한데 유독 모자, 모녀지간에만 거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성신화이다. 사회가 양육을 담당해주지 않고 여성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면서 여성에게 직장일, 집안일 모두를 완벽하게 해낼 것을 요구하는 것은 비정합적이다. 24시간 가사노동과 육아에 매달리는 여성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는 24시간 엄마 노릇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경원시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직장일을 할 때에는 가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길 바란다.
오해6. 요즘 여성들은 참을성도 없고 희생정신도 없다. 편해지니까 한없이 편해지려고 한다.
현대 여성에게는 희생정신이 없다는 것이 요즈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는 부당한 시각이다. 그동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희생이 강요되어 왔고 여성들이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던 것이지 현대의 여성에게 희생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희생은 스스로가 하는 희생이어야 아름다운 것이지 사회적으로 이미 강요되어 있는 희생은 억압이지 희생이 아니다. 모성신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며 며느리도 며느리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