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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애인 없니?


BY 雪里 2002-03-24

사촌 시동생 결혼식날.

오후 두시에 예식이 있으니 오전에 일찍 아들네 집엘 들를 양으로
마음은 전날부터 앞서가며 시간을 할당해서 이리저리 간추려 놓는다.

아들이 좋아하는 알타리 김치도 담그고,
오이도 먹기 편하도록 썰어서 부추와 버무려서 담고,
어머님이 손주를 위해 다려 놓으신 한약도 챙겨서
깨끗한 병에 옮겨 담고,
지난 주말에 친구가 가져온 버섯을 먹을때마다
버섯을 좋아하는 아들 생각이 났었는데,
버섯도 조금 볶아서 넣고...

아침부터 늘보인 남편을 독촉해가며 서둘러 준비를 하고는,
우리차에 동승하신다는 작은 아버님 내외분을 모시고
운전석에 앉았다.

만년 초보인 나의 운전 실력이 미덥잖아서 옆에 앉아 있으면서
연신 손을 올려 고리를 잡아대는 그이의 불안감을 못본체하며
여유있게 아들네 오피스텔 앞에 차를 세웠다.

전화도 없이 나타난 엄마아빠에게 반가움은 따로 놓고
퉁명을 부린다.
"저 없으면 어쩌려구 연락도 없이....엄마가 운전 하셨어요? "
"응, 잘 찾아 왔지? 차가지구. 난 서울엔 못 살아,정말."

손바닥 만한 냉장고엔 신김치국물만 남은 김치통이 불쌍하게
넣어져 있다.
비워진 밥솥과 싱크대속을 보니 방금 아침밥을 먹은것 같다.
"뭐하고 밥먹었니?"
"마지막 김치요. 그러잖아도 반찬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울컥하니 가슴이 막혀 온다.
처음에 방을 얻어 내 놓으면서 밥솥을 앞에 두고 쌀높이와 물높이를
가르쳐 주며 밥만드는 일만 되면 될 것 같았는데,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 하지 않던 아들이
어느새 편리함으로 그걸 애용하고 있으면서...

그럭저럭 몇달을 그렇게 살아온 아들이 신통해선지
제때 반찬을 챙겨 주지 못한 어미로써의 미안함 때문인지
늘어논 옷가지 주섬거리며 아픈가슴 감춘채로
입으론 잔소리만 내 ?b는다.

"양복을 옷장에 걸어야지."
"벗은 양말은 뒤집어 놓아야지 이게뭐니?"
"황사가 심한데 방은 닦으며 지내니?"

어른되어가기 연습을 하는게 영 미덥지 않으면서도 나는
모른척 그냥 맡겨 보는데 익숙해 지려 노력한다.

잘게 잘라 봉지에 담아 보낸 미역으로 미역국을 만든다는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로 국 끓이는 법을 설명하면서도
냄비앞에 선 아들 모습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고,

끓는 보리차를 보면 보리차 끓인물을 잘먹는 아들이
정수기 물을 받아다 먹는게 걸리는 어미면서도
아들앞에선 씩씩하게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들며 사는것!"을 늘 강조 한다.

냉장고 안에 들어찬 김치통을 보며,
어미가 사들여준 20킬로짜리 쌀자루를 보며,
부자가 된 느낌이라는 말을 하는 아들에게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엿보며 웃는다.

한시간여의 여유시간으로 아들을 만나고 나오면서
난 뜬금없는 말을 아들에게 던지고 나왔다.

"너, 애인 없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