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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회상


BY Suzy 2000-10-30


나는 나의 친정아버지 제사를 내가 모신다.
전통이나 형식을 따지자면 딸로서 친정제사를 모시는 것이 합당치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분의 오직 한 점 혈육인 나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분이 내게서 아주 떠나지 않으셨음을 상기하고 싶었다, 딸도 자식이거늘...

전통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타협인 셈이다.

어제는 딸로서 내 아버지를 기억하며 공경 할 수 있는 스물 다섯 번째 기일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건만 아직도 익숙지 못한 살림솜씨가 아침부터 마음을 바쁘게 한다.

간소하게 차렸지만 그래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일하는 것으로만 친다면 그 누가 제사를 반갑다 하겠는가?

하지만 제사를 준비하는 동안 가슴에 차 오르는 고인에 대한 추억과 절절한 사모의 정이 음식을 만지는 손끝까지 전해지는 뭉클함으로 코끝이 알싸했다.

"아부지, 간소하게 할래요, 그래도 이해하시죠?" 난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요즘은 물가가 비싸서 간단히 하는데도 만만치 않아요, 요게 삼 천 원 어치 라니까요.
옛날 우리 집 텃밭에 지천이었는데..... 기억하시죠?"
한웅큼 밖에 안 되는 시금치 나물을 주무르며 여전히 주절댄다.

"에구우~~ 고사리나물이 짜네? 왜, 아부지 짜게 잡수셨잖아요? 괜찮죠?"
형편없는 음식솜씨도 변명했다.


봄이면 울아부지 나뭇짐에는 진달래가 한아름씩 꽂혀 있었다.
그 꽃을 나에게 안겨주시며 "옛다!' 그 한마디 뿐이셨던 그분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언어가 숨어 있었을까?

무더운 한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쑥으로 모깃불을 피웠었다.
내가 멍석 위를 누워 구르면 울아부지는 ?아 다니시며 줄 풀로 만든 투박한 부채를 휘두르셨다,
"허허, 이넘.... 모기 물릴라!" 그리고는 내가 잠들 때까지 앉아서 부채질을 해 주셨다.

"아부지! 더 세게...!"
꾸벅꾸벅 졸면서도 여전히 부채질을 하시는 아버지께 난 앙칼지게 요구했다.

"엉? 어~~그려어~~~!" 아버지의 부채질은 빨라지고 난 시원하게 잠들곤 했었다.
실눈으로 확인한 아버지의 구릿빛 얼굴이 날 안위하게 했다.

초가을, 이맘때쯤이면 벼가 익어 누우런 들판으로 밤에 논게 낚시를 갔었다.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발을 드리워 실개천을 막고 있으면 실하게 속이 찬 참게가 발을 타고 슬슬 기어올랐다.

아버지는 항상 나를 업고 가셨다.
"아부지, 조오기 있다!" 내가 큰소리로 손가락질하면,
"어허, 넘어질라!" 울아부진 기어오르는 게보다 경사진 개울둑에 서있는 딸을 먼저 쳐다보셨다.

희미한 호롱불아래서 집게발을 들풀로 묶은 참게를 실로 길게 매어서 갖고 놀게 해 주셨다.

유난히 추웠던 그 시절 겨울, 매서운 북풍에도 우리는 밖에서 뛰어 놀았다.
별다른 보온 장구가 없었던 때여서 우리들은 꽁꽁 언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부지, 나 손 시려워!" 내가 울상을 지으면, 아버지는 윗저고리 가슴을 활짝 벌리신다.
"으~~차거워!" 아버지의 외마디소리도 아랑곳 않고 나는 꽁꽁 언 손을 아버지 겨드랑에 폭 파묻고 빨갛게 얼어붙은 뺨을 맨 가슴에 붙인다.

"쪼금 있으면 따듯해진다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오히려 눈흘겼다, 아--- 정말로 따듯했었다!

내가 사춘기에 들어 서면서는 아버지의 무능함을 원망했고, 한때는 끝없는 증오의 대상이었으며 어느 때는 내 등허리가 휘는 벅찬 짐이기도 했었다.


"어? 술을 안 사왔네?"
몇 번이나 장을 봤는데도 빼놓은 것이 또 있어 짱구아빠한테 핀잔을 듣는다.

"아부지, 아부지 딸도 이제는 늙어 정신이 없다우, 그래도 걱정 마세요,
내가 살아 있는 한 해마다 이날만은 기억할게요."

가슴 밑바닥을 훑는 아픔을 식구들에게 들킬세라 나는 열심히 절을 하며 아닌척했다.

내 남편과 아들딸들이 차례로 절을 했다.
"아부지 자손들 이예요! 아부지가 업어 키운 아부지 딸이 낳았어요!"

제사상위에 촛불을 끄며 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부지,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내가 업혀 잠들었던 당신의 따듯한 등이 목 메이게 그립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