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33

시간의 그늘에서(1)


BY 다정 2002-03-13

어렴풋이 들려오는 덜그럭거림에 선잠을 깼다.
옆방문을 열고 흐느적거리며 걸어나온 딸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예의 그 수선스럼이
바깥에서 들려 또다시 현관 확인 구멍으로
살며시 보니 이사가 한참이다.이 새벽(?)에____.

할머니,기어이 자식네 집으로 가시나 보다.
열가지도 넘는 약때문에 손이 떨려 수저도
잘 못드셨던 앞집 할머니.
가스 값이 아까워 일회용 부탄 가스만 쓰시다
홀라당 온 동네를 태울뻔도 하셨는데____.

엄마,엄마도 그랬나보다.

꼬장 꼬장한 성격 탓에 피곤하기마저 했던 울 엄마.
남의 집 음식 절대로 먹지 않고,
남의 신세 절대로 지지 않고,
어디 가서 잠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안 먹던 음식 먹으면 꼭 탈 나고,
엄만 그랬다.

간암으로 아버지 돌아 가시자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
돈 때문에 멀어지자
허구헌날 엄만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계셨다.
그 아들 돈 땜에 해코지하러 올까봐___.

"빨리 좀 온나"
허겁지겁 가 보면 엄만 촛점 없는 눈으로
다섯살배기 내 딸보다
더 투정을 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였나 보다,
엄마의 병이,

그 해 여름 차표를 몇번이나 바꾸기를 하고 내려간
외가의 기차역에서
엄만 내리다 발을 헛디뎌
몸의 반쪽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찾아온 엄마의 치매,

문을 걸어가며 무서워한 오빠를 기다리며
엄만 정말 다섯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되어,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

어제 화장실에 앉아 있던 딸이
"엄마, 나 애기때 궁뎅이 닦아 줄때 더러웠어?"
하길래
"뭐가 더러워 ,딸인데"하다가
갑자기 잊고 있던 내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그랬겠지,그래,엄마도_____.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앞집 할머니,힘없이 앉아 계시다
희미하게 웃으신다.
그 옛날 울 엄마처럼
촛점없는 눈으로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