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02

엽서 한 장


BY wynyungsoo 2002-02-28

"어머!? 특실 간호사일동? 이게 뭐지?!" 하고 엽서를 보니 깨알 글씨로 빽빽이 공간을 메운 환자인 남편에 대한 안부내용이었다. 며칠 전에 배달된 우편물 중에 끼어있던 엽서는 이 월초에 남편이 입원해 있었던 병동인 너어스 스테이션에서 보낸 안부의 엽서였다. 난 엽서를 들고 출처를 확인하는 순간 뜻밖의 서신에 반가워서 "어머! 이런 고마울 때가 또 있나!"...하고 깨알같고 반듯한 필 채를 좍 읽어 내려갔다. 사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수시로 드나들며 건강체크를 하는 간호사들의 표정과 미소에 따라서 환자나 보호자들은 그날 기분이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트 근무 때면 외래가 아닌 입원실 병동 간호사들은 그냥 날 밤을 하얗게 새기가 일쑤이니! 그런 고단한 업무중임에도 늘 상냥하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마음에 내심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병원이란 단어만으로도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긴장과 불안한 마음을 안겨주는 곳이기도 한 공간이 병원이 아닌가 싶으니, 그런 공간인 병원에 입원한 환자 도우미들은 중증인 환자나 경증인 환자에게나 고된 일상으로 잔무처리를 감수하는 작업이 간호사들의 책무이기 때문에 그들의 고된 고충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것은 건강치 못한 남편 덕에 병원 출입이 잦았던 터인지라 의사보다도 뒤처리 잔무가 더 고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백의의 천사들에게 늘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 내심 밑바닥이 깔려있다. 사실 퇴원하던 날에도 신세진 분들에게 변변히 인사도 못하고 병실을 나왔었는데, 이렇게 정겨운 안부의 엽서를 받고 보니 더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엽서를 받아 들고 가만히 상념에 잠겨본다. 한 20여 전, 그 당시에는 난 건강했었음으로 종합병원이란 단어도 생소했었던 시절을 상기해본다. 남편이 한 57일 동안 입원해 있을 때 담당의사 선생님의 미소가 불현듯 떠오르며 그 당시 네게 고맙게 해준 일들이 책 속의 폐이지 내용들로 선명하게 상기되며 그 때 그 상황들의 회상에 젖게된다. 그 당시 남편은 중환자였기 때문에 소변을 스스로 볼 수가 없었고 해서, 보호자인 내가 거의 30일 가량을 도뇨를 시도하는데 매번 수거할 때마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배설 량을 체크하는 작업에 밤을 새는 일이 허다하여 참으로 힘들었었던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감회가 새로워지니 또 목이 메인다. 그렇게 힘든 나에게 늘 격려와 용기를 심어주었던 분이 바로 그 당시의 담당의사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오전 오후 회진 때에는 우울해 있는 보호자인 나에게 늘 예쁜 말과 격려의 말로 위로해주며, 때론 본인의 가정 사 예기도 들려주면서 같이 아파하기도 하며, 늘 보이지 않는 버팀목으로 나약해지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포용 심으로 다독여주곤 했었던 선생님이셨다. 남편이 사경을 헤매다가 중환자 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던 날, 바로 그 날이, 선생님의 결혼식 날이었었다. 일반병실로 옮겨진 남편은 이미 정신이 돌아온 상태여서 담당 선생님의 결혼식에 다녀오라는 부탁을 하기도 할 정도로 의식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이었다. 해서난 마음의 선물을 품에 안고 선생님의 결혼식장인 홍릉에 위치한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시간 맞춰 늦지 않게 도착을 한 나는...

바로 신부대기실을 찾아 들어가 보니 흰색의 드레스로 곱게 단장한 선생님은 참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천사같이 아름다웠다. 나는 순간 동공을 고정시키고 천사 같은 미소의 선생님 미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멍한 상태에서 난 "선생님! 축하합니다." 하고 미소를 보내니 선생님은 나의 외출이 뜻밖이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한 미소로 내게 물어오는 첫마디가 "아저씨는 좀 어떠세요?" 하고 물으며, "우리 기념사진하나 남길까요?" 하며 두리번거리면서 사진사를 찾던 선생님의 정에!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별안간 뜨거운 음식이 목에 걸린 듯 목이 메었었다. "세상에 천사가 따로 없구나!" 내심 감탄해 마지않으며 결혼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식장을 빠져 나와 부지런히 병원으로 달려오면서 환자의 안부를 묻는 선생님의 표정을 다시 상기시켜보니! 정말 담당의사로서 진정 환자가 걱정되는 진솔한 표정임이 영역해 보이는 의사인!! 신부의 미소는 천사의 이미지 그 자체로 다가왔었다.

나는 천사의 미소인 신부를 축하하는 박수소리를 등뒤로 의식하며 급한 마음에 남편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황급히 달려오니 남편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내가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은 만나봤냐고 대뜸 물어온다. 해서난, 드레스를 입은 선생님 모습은 마치 천사같이 아름답더라고! 그리고, 그새 당신의 안부를 묻더라고! 하며, 신부대기실에서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예기들을 상세하게 들려주니 그냥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은, "마음이 고운 여성이니까 복 많이 받을 거야!" 하며 "나이는 어린 것 같은데 심성은 아주 모성애를 지닌 심성이라고" 하며 고맙다는 표정의 표현을!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목이 타는지 물을 찾는다. 물을 찾는 남편에게 물을 한 컵 가져다가 입에 대어주니 그냥 맛있게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에 호전이 됨을 직감하게되니 내심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후 선생님은 밝고 더 예뻐진 모습으로 병실을 들어서며 신혼여행지에서 사왔다며 마음에 선물을 내게 내민다. 나는 선물보다도 선생님의 마음이 더 고맙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얼른 선생님을 꼭 껴안았던 기억이 상기되면서 지금도 코끝이 찡하며 눈에 이슬이 맺혔다. 참 나이에 비해서 매사에 마음씀씀이가 조숙하고 내게 마음을 많이 써준 선생님이라 그런지!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가족들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러다가 퇴원을 며칠 앞두고 선생님은 늦은 밤 시각에 우리 병실로 전화를 넣었다. 아저씨가 주무시면 잠깐 15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놀러오라는 전화였다. 해서난, 선생님의 초대에 반갑기도 하면서도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앞서서 전화 상으로는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해놓고도, 그냥 갈까말까하고 망설이다가 끝내는 안가고 말았다.

나는 그 날밤 설레는 마음과 또 약속을 어긴 마음이 교차되면서 그 날밤은 꼬박 날밤을 새웠던 기억과, 또 그이튼날 아침 회진 때 선생님의 얼굴을 송구함에 차마 뵐 수가 없었던 기억도 상기되고, 또 퇴원하던 날 선생님께서 간호사실 앞에서 내 손을 잡으며 손에 쥐어준 봉투를 난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그 봉투 속에는 따뜻한 색상의 무늬인 예쁜 사각 실크 스카프와, 또 규격이 큰 카드에 하느님 말씀과, 또 개인적으로 내게 보낸 사랑의 메시지가 두 쪽의 카드 면을 빽빽하게 채운 작문의 사연인 카드를, 난 지금도 곱게 모셔두고 있다. 봉투를 받아든 나는 바로 병실로 들어와 정담의 사연을 읽어 내려가면서 눈물을 얼마나 쏟았던지! 금방 목이 잠기면서 두 눈꺼풀이 호 빵처럼 부어 올랐었던 기억도!, 집에 간다는 사실이 그냥 좋기만 하면서도, 마음 저변 구석에는 선생님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었던 기억들도!...그 당시 선생님의 부군께서는 하느님 사업을 하시는 목자의 길을 걷는 "목사의 직함을 가진 신앙인" 이라고 했었다.

난 며칠 전 "간호사일동" 이란 안부의 엽서를 받는 순간, 그 때 그 이후로 근황이 궁금한 예쁜 의사선생님의 미소를 떠올리니 지금 이 시각에도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음성이 귀 전을 스치는 듯 해서!...
대충 그 당시의, 57일간의 남편 병상일지를 최대한 함축해서 상기해 기록하며 아름다운 선생님과의 추억에 조심스럽게 젖어보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소식을 풍문으로 들은 기억에는 모교인 종합병원을 퇴직하고 개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지만, 일상의 색깔들에 동분서주하는 삶이라! 그냥 까맣게 접어두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우린 한 지붕아래의 삶일지니! 언젠가는 꼭 사랑스런 선생님을 뵐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또 선생님께서 기억하고 계신 그 당시 나의 이미지인 체형을 고수하기 위해서! 몸매관리 유지에 전력을 쏟고 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