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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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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성(?) 강한 아이.


BY 지란지교 2001-03-21

작은 아들 빈이가 벌써 5학년이 되었다.
빈이는 또래 친구들하고 비교해 키는
좀 큰편이지만 얼굴은 아직도 아기티가 가시지 않고, 말하는 것도
좀 어리광이 많이 남아있다.

얼마전 잠시 틈을 내서, 학부모총회에 참석을 했다.
(이 때가 아니면, 담임 선생님 얼굴 뵙기가 어렵다.)
30대 초반의 젊은 여선생님인데, 일년동안 학급운영에 대한 자신의
방침이랄까, 교육 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이 참 야무지고 성실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5학년이면 마냥 아이만 이뻐해주시는 분보다는 저렇게
야무지고 당차게 이끌어줄 선생님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되서였다.
한참 설명을 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물으신다.

"혹시 빈이 어머님 오셨어요?"
"???"

깜짝 놀라 속으로 '이 녀석이 무슨 말썽을 부려 선생님
눈밖에 난 모양인가....덜컹~' (조마 조마)

"네~에...전데요...무슨 일이라도...." (작고 소심한 목소리로)
"호호호호...아~ 빈이 어머님이세요? ..빈이가 얘기 안하던가요?"
"무슨 얘기를...그저 5학년되니까 동생들이 많이 생겨서 이젠
의젓해져야겠다고는 했는데..." (여전히 작은 목소리다.)
"아..빈이가요...."

내용인즉, 우리 빈이가 그래도 그런대로 친구들에게 인기는 있는지
학급회장추천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자신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댄다. 이유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쩔수 없이 소릴지르고 화를 내야하고, 무엇보다 자기반에 00이가 회장을
너무 하고 싶어하니 그애한테 양보하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사람이 한다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일거양득이 아니겠냐고 했다는 거다.
(빈이는 속담을 즐겨 말한다.)
그리고 자기는 평민(?)으로 남아서 회장하고 싶은 00이가 잘 하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선생님은 빈이를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아는게 참 많고
규칙(선생님이 정해놓은)도 잘 지킨다고 하셨다.

"빈이 어머니, 빈이가 하는 말 들어보면 참 재밌어요..ㅎㅎㅎ"
에구, 벌써 티를 내는구나...
"얼마전에는 일기검사를 하는데, 규칙때문에 몸살나겠다고 하면서
그래도 선생님이 우리 위해서 정한거니 지켜야겠다.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니까...라고 써놔서 한참 웃었어요.."

내일 빈이는 극기훈련인가 뭔가로 2박 3일 동안 설악산으로
여행을 간다.
그 때문에 요즘 매일 밤 늦도록 놀이터에서 놀고들어온다.
극기훈련을 가면 분명 교관들이 벌도 많이 세우고 잠도 안 재우고
그러니까 그 때를 대비해서 '심성강화훈련'(자칭 정한 이름)을 한다는 거다.

어제도 놀이터에서 뭘했는지, 온통 모래투성이를 하고 들어온
빈이를 샤워시키며,
"빈아, 우리 빈이처럼 그 시간에 놀이터에서 노는 애 없지?"
"아냐, 엄마, 나 00이랑 둘이서 해요. 걔도 같이 훈련에 참가하고
싶다고 해서 둘이서 열심히 하는거에요"
난 그냥 마구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훈련에 참가하고 싶다고 해서 참가한 그애랑 둘이서 모래밭에서
구르고 뒹굴고 체조하고, 막대기(빈이는 劒이라고 한다.)를 휘두르며
노는 모습이 떠올라서이다.
자기는 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아무리 춥고 어려운 극기훈련이라고
해도 훌륭하게 마치고 아이들이 낑낑대며 힘들어 할때 도와줄거라고
한다.

그래서 미리 대비하는 거라고 했다.
일기에 그 훈련에 대해 써놓은 것을 본 선생님께서
-어디 빈이가 활약하는 극기훈련을 기대해볼까? 열심히 훈련마쳐서
우리반의 기사가 되어주렴- 하고 메모를 하셨다.
빈이는 더욱 힘을 내서 '심성강화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신발이며, 옷이며, 심지어 머리속까지 모래투성이로 들어온 빈이는
저녁밥도 아주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니 매운 것도 먹어야 한다고 고추장도
달라고 한다...
난 너무 웃음이 나오지만,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여행에 임하는
빈이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 이를데 없다.

어떤 일이라도 꼭 이벤트화 시켜서 재밌게 즐기는게 빈이만의
비결이다.
이런 점은 나도 배워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 진다.

건강하게,
즐겁고,
많이 배우고 경험하는 여행이 되길...
자는 아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지란지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