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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멀리 있는게 아니야.


BY 분홍강 2002-02-22

달그락...달그락...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주방에서 몇개 안되는 그릇을
혼신(?)의 힘을 다해 뽀드득 소리가 나게 닦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갑자기 자기가 한번 설거지를 해보겠다며
나를 조르더니 자기 몸에 맞지도 않는 앞치마를 둘러 매고
너무 커서 빙빙 돌아가는 고무장갑을 엉거주춤 끼고선
소꿉놀이 하는양 신이 나서
싱크대 앞에 선다.

"깨끗이 닦을 수 있겠어...?"
"웅 ~잘 할 수 있으니까 엄만 걱정마.."
"구래~그럼 엄만 잠깐 은행에 다녀 올테니까 조심해서 하고 있어..."
"웅~"

그렇게 말 해 놓고 난 은행으로 볼일을 보러 나갔다.
어제는 날씨가 하루종일 꾸물꾸물하더니
오늘은 봄처녀처럼 햇살이 간지럽게 내 얼굴을 비춘다.
바람도 살랑살랑 나부끼고 불어오는 봄바람에게선
이른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걸어서 얼마 안되는 은행에서 볼일을 마치고
여유롭게 해바라기를 하며 돌아 오니
딸아이는 그때까지 싱크대 앞에서 여전히
그릇을 닦고 있다.

"연희야~아직까지 설거지 하고 있는거야..?"
"어~엄마,깨끗이 닦을려고..."
"그래~이제 그만하고 학원 갈 준비해야지..."
"웅~이제 다 끝나가..."

딸아이는 부산하게 일을 마치는 듯 싶더니
자기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는다.

어디 어떻게 잘 했나 보러 주방엘 가보니
건조대에 몇개의 그릇과 수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싱크대 주변은 거품이 아직도 흥건히 있고
냄비는 닦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두었다.

"연희야~
왜 냄비는 안닦았어...?"
"엄마~냄비는 너무 무거워서 못닦았어...
그건 엄마가 해줘~ 헤헷"

하며 자기방문에 기대어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배시시 웃는다.
나도 따라 같이 배시시 웃음으로 답을 하곤
남아 있는 그릇들을 닦아 건조대에 엎어 놓는데
마음 한쪽이 따뜻해 지면서 딸아이가 대견해진다.

어느새 우리 딸이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과
신통하고 대견함에
마음이 그 어떤 부자보다 더 여유로와진다.

'그래 행복은 멀리서 오는게 아니야...
내 마음 속에 있는거야...'

문뜩,소박한 행복감에 젖어
혼자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