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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100) * 소중한 인연 *


BY 쟈스민 2002-02-21

"체크무늬 주름치마와 연카키색 자켓,
그리고 살색 스타킹과, 구두 한 켤레 ..."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9년전에
여고를 갓 졸업한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무렵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선물을 받던 그 때를 잊지 못하고 삽니다.

서울의 모 대학을 굳이 고집하며
눈물로 몇날을 지세우던 내게
대답대신 돌아온 그것은
그렇게 밖에 하실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땐 그게 내가 처한 현실이었으니까요...

단발머리 얼굴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나
까맣고 큰 눈을 갖고 있었던 나는
아버지의 그런 배려에 의지하여 세상을 향하여 조심 조심 한발자욱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너무도 적응하기 힘들었으며,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여겨져
나는 한동안 방황의 시간들로 자신과의 힘든 싸움을 겪어야 했지만
그저 말한마디 못한채 그냥 견딜 뿐이었습니다.

나의 그런 힘듬을 아시면 그렇게 밖에 해줄수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이
더 힘들어질까봐서였지요.

그럴수록 나는 자신만이 아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 보기도 했으며,
이곳 저곳 시험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란 곳이 이렇게 냉정한 곳이구나 ...
작은 깨달음도 나름대로 하나씩 얻으며 한해 두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접었던 탓인지
잠재의식속엔 늘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살기도 했나 봅니다.
꿈을 꾸면 꿈속에서 난 언제나 학생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긴 공부란 것이 정해진 학교의 테두리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꺼라는 생각이 점점 들더군요.
그래서인지 지금의 직장에서도 나름대로는 배울 꺼리를 찾아서
늘 헤메이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 긴 방황의 늪에서 조금쯤 벗어날 힘이 생긴
어느날 나는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쓸 생각으로 알게 되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무를수 있었을지 그 이상의 인연에 대한 예감도
그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루라도 안 보면 보고 싶은 사람처럼
내겐 이곳이 그랬습니다.
이곳에서의 만남은 나에게 커다란 휴식을 주었으며,
살다가 눈물나는 날에도 어김없이 들러 잠시 한숨보따리를 풀러 놓아도
더없이 편안하기만 했습니다.
따뜻한 마음들이 그곳엔 항상 있었고,
그네들의 삶의 이야기를 항시 공감할 수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섬을 주저하지 않아도 되었지요.

나에게 그렇게도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준 이곳에서의 만남이
오늘로 꼭 100번째를 맞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삶의 전선에서 살아내신 분들...
더 많은 학식과 연륜으로 더 깊은 가르침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계셨음에도
굳이 제가 이렇게 부족한 글이나마 처음에 하였던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다 이방에 머물고 계신 분들과의 소중한 인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부족하기만 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고개숙여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잊지 못할꺼예요.

그래서 앞으로 더 노력하는 이로 거듭나고저
오늘은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가슴 언저리에 곱게 담아 두렵니다.

누구나 가슴에 아픈 상처 하나쯤은 다 간직하고,
그러고 사는 게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동안에 이렇듯 좋은 인연을 만날수도 있음에
우린 작은 위안으로 살 수 있나봅니다.

힘겹게 걸어나온 시간속의 터널들을 아직도 다 벗어나고 있진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쯤은 삶이란 그런거야 ... 하며
너털웃음 한번 웃어볼 줄 아는 여유로움이 내게 있음에
나는 감사하렵니다.

오늘은 19년전 내가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과의 인연이 닿았던 날이며,
아컴에서의 100번째 만남의 날입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몇번이나 아쉽고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 보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기도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진 않을 겁니다.

다가오는 내일도 오늘처럼 소중한 인연으로
우리 곁에 둘 수 있을테니까요...

우리 모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