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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의 처진 어께가 싫어요"


BY 리아 2002-02-20

어린시절 맏아들의 맏손녀였던 나는 조부모님과 삼촌들과
함께 살았었다.
삼촌들이 멀리학교에 가거나 군대를 갔을 때 조부모님께
"부모님 전상서"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보내오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내 부모님께 "부모님 전상서" 라는 편지를
아니 다른 내용으로도 편지를 쓴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고3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졸업과 함께 부산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난 명절 때나 방학 때
부모님을 만났고 전화라는 편지보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난 재빠르게 이용하면서 더욱 부모님께 편지를 쓰지 않았다.

보다 큰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나의 철없는 반감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많은 갈등으로 한동안 방황하시더니
큰살림과 늙으신 조부모님 우리 사형제를 생각하셔서 재혼을 서두러셨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생들을 돌볼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나의 간절한 애원을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으시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보다 13살이 많은 노처녀와 재혼을 하셨다

사람들은 우리형제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새엄마와 어떻게 살꺼나 불쌍해서 어쩔꺼나 살랑대면서도
궁색하지 않은 아버지의 부 덕택에 사람들은 앞다퉈 재혼을 권하셨다

나와 내동생들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체 진정하기도 전에
젊은 새엄마의 새생활에 적응해야했다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자연 소원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난 계모와 함께 살지 않은 것 만으로도 해방감을 맛보았고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학비와 용돈을 청구하고 그것을 결제하는
그런 관계로 밖에 물위의 기름처럼 좀처럼 섞이지 못했다.
아버지 라는 거대한 산이 나에게는 너무나 높고 근접하기 힘든
때가 많았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도 난 부모의 애뜻한정을 다 느껴보지도
못한체 아니 외면한체 나의 새로운 인생출발을 했다
세상을 살면서 나도 가정을 가졌고 자식을 낳고 어른이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아니 부모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 갔다.

오십대 초반인 엄마는 자신의 일을 가지기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나이드신 아버지를 고향집에
홀로 남겨두시고 내게 자주 전화라도 하거라 라며 서울에서
새일을 시작 하셨다

그렇게 늦은 나이에 모험을 할만큼 궁색한 살림도 아닌데
그런 엄마를 격려해야할지 고생스러울텐데 걱정을 해야할지
아버지는 서울에서는 답답해서 생활을 못 하시겠다니
별수없이 두 분이 별거아닌 별거를 할수 밖에

두 어시간이 걸리는 친정엘 아버지 혼자 계신걸 뻔히 알면서도
늙으막에 싱크대 앞에서 궁상을 떨고계실 아버지의 모습이
속상해서 나는 가보지도 못하고 남편에게 괜히 트집만 잡고있다
남편은 그런다
그렇게 마음이 쓰이면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그렇지만 아버지의 성격상 절대로 우리집에 오실분이 아니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가 아무리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해서
자기네로 모시마고 해도 아버지는 자신의 일은 알아서 하니
걱정말라 하시지만 나는 속상하고 마음이 쓰인다

언제까지라도 젊음을 유지하며 근접할수 없는 철옹성으로만
생각했던 그런 아버지가 아님에 마음이 저리고
예순 일곱 아직도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젊고 정정하시지만
요즘 와서 병원 출입이 잦고 한의사인 아들이 지어주는 약을
아무말없이 드시고 예전과 같지않게 힘이 빠져있는 어께에는 황혼의
외로운 그림자 마져 느껴짐은 왜일까?
약해져가는 당신모습이 싫다

언제까지라도 당신은 내게 뚫리지 않는 벽으로
아무리 거센 폭풍우에도 끄떡 하지 않는 나무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당신과 내가 풀어놓지 못한 그 세월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데
당신의 흰머리와 굵은 주름속에 숨겨진 인고의 그 시간들을
나는 아직도 다 이해를 못했는데
아버지 라는 이름때문에 자신의 속내를 자식 앞에 좀처럼 내어
보이시려 하지 않았는데
마음고생이 심했을 엄마에 대한 배려도 이제는 할수 있게 되었는데
벌써 당신은 지쳐있고 늙어감에 속상하다

나도 이제 부모라는 명찰을 달았고 자식의 아픔이나 고통쯤은
느낌만으로 알수있게 되어서일까?
세삼 지금에와서 부모에 대한 애뜻한 정이 담긴 편지는 쓰지 못할 것이다.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드리고 싶어진다.
나도 철이 들었나보다.
효라는 것이 어떤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