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치 않은 침대 그리고 낮밤이 바뀌어
(미국 서부지역이 한국보다 겨울에는 17시간, 여름에는 16시간 늦음)
깨었다, 잠 들었다, 또 깨기를 반복하다, 문득 아버지가 부르시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하얀 천장이 낯설게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응? 여기가 어디지?'하는 생각도 잠시...
흐리멍덩하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며, 긴 비행기 여행 끝에
어제 도착한 우리의 새 아파트라는 게 기억이 났다.
녹색 카펫과 하얀 벽이 여전히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아침 먹자!"라는 아버지 말씀에, 씻고서 나가보니, 식탁에 근사한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계란 후라이, 토스트, 여러가지 시리얼(cereal), 우유, 그리고
깨끗이 깎여 놓여진 오렌지와 처음 보는 꿀참외(honey dew)...
갑작스레 고파진 배를 쓰다듬으며, 의자에 앉고보니,
부엌에서 계란후라이를 만들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비치면서
가벼운 충격이 왔다. 그리고 전날 저녁 아버지가 준비하신 불고기와
된장찌개를 별생각 없이 맛있게 먹고 잠들었던 기억이 났다.
긴 여행의 피곤함과 새로운 곳에 대한 흥분감 때문이었는지,
전날 미처 느끼지 못했었는데, 부엌에서 음식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잠시 혼란스럽게 했다.
집안의 장손이시고 가장으로서 항상 위엄을 풍기시던 아버지!
제사 지낼 때도 나이 많으신 작은 할아버지들 보다 먼저 잔을 올리시고,
집에서도 부엌에 들어가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
나 마저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라는 교육을 받은 덕분에
물 한 모금이 마시고 싶어도 여동생들을 시키곤했는데...
그렇게, '한국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느낌으로 항상 높은 곳에 계시던
아버지가, 손에 기름을 묻히신 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그것도, 오랜만에 보는 자식들 먹이신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뒤늦게 나온 여동생들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아버지에게 달려가,
대신하려 했으나,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다. 너희들 앉아서 빨리 먹기나해라. 배 고플텐데..."
충주에서 자라나,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니시면서 자취를 하셨고,
미국이민 수속을 밟으시면서 혼자 일년을 계셨던 때문인지,
아버지의 음식솜씨는 수준급이었다.
갈비 불고기도 맛 있었고, 된장찌개와 곰탕 솜씨도 그럴듯 했으며,
배추가 귀해서 대신 양배추로 담근 김치도 우리 입맛을 돋구었다.
여동생들은 첫날 부터 설겆이를 하게 하셨으나, 나에게는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식사 후에는 한국에서 하던대로 그저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서 T.V. 앞으로 가 저녁시간을 즐기곤 했는데,
어느날 부턴가 그것이 조금씩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두달 후, 어머니가 합류하셨을 때는, 나도, 밥상 준비도 하고,
저녁 먹은 뒤 치우는 걸 도울 정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런 아버지의 '산 교육' 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