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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알.콩.달.콩 - 32. 아가에게...


BY 꼬마주부 2002-02-20

**오늘 쓰는 글은 꽁트가 아닙니다...하지만, 제가 편하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기 때문에...죄송함을 무릅쓰고 제 얘기를 적습니다...**



꼬마주부의 알.콩.달.콩 - 32. 아가에게...

아가야...
우리 아가야..

오늘 엄마는, 너무나 속이 상했단다.

엄마는 우리 예쁜 아가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매일 매일 소원하면서 잠을 자는데, 우리 아가는 엄마와는 마음이 다른가 싶어서 몹시 속이 상했단다.

엄마는 벌써 결혼한지 2년이 넘었단다.
24살에 엄마는 엄마 친구들 보다 일찍 결혼한 편이라서 사실 2년이 지난 지금도 나이가 많은 건 아니란다.
엄마랑 아빠랑은 결혼하면서 젊은 나이에 조금만 고생 더 하고 부자가 되면 아가를 낳자고 약속했었어. 그 때는 엄마랑 아빠랑 버는 돈이 너무 조금이라서 저금도 못하는 형편이었거든.
그렇게 1년 쯤 지나니까, 엄마랑 아빠랑 열심히 일해서 저금도 하고 갖고 싶은 물건도 막 살 수 있고 부모님께도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부자가 되었어.

정말 부자가 ?楹캅?
그러엄~ 엄마랑 아빠는 마티즈라는 차도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오락기도 있고 펜티엄II 컴퓨터도 있고 자전거도 있는걸. 이불도 예쁜 거 많아. 이 정도면 부자 아니니?^^

처음에 결혼할 때보다는 부자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 아가를 만날 차례가 된거지.

엄마랑 아빠는 이제 너를 소원했단다.
"우리 이제 마음도 몸도 부자니까 얼른 우리 아가를 만나자."
엄마랑 아빠는 너를 만날 준비를 했어.
엄마는 병원에 가서 가볍게 피검사를 하고 아기집 검사를 했어.
의사 선생님이 엄마 몸은 건강하고 모든 기능이 정상이라고 하셨어.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벌써 기분이 좋아져서 마음이 들떴단다.

그런데,....우리 아가는 좀처럼 엄마 아빠를 찾아오지 않았어.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도록 우리 아가는 아무 소식도 전해 오지 않았단다.
엄마는 점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엄마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엄마의 문제는, 늘 엄마가 염려하는,..한달에 한 번 오는 손님이 매달 불규칙하게 오신다는 건데, 그것 때문에 그러나 싶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단다. 엄마의 우울한 얼굴을 본 아빠는 항상 "괜찮아, 무슨 걱정이야. 올 때까지 우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라고 위로를 해주었어.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아가를 별로 기다리지 않는 것 같이 느껴져서 아빠에게 몹시 섭섭했단다. 하지만 사실 엄마도 알아. 아빠도 엄마만큼 우리 아가를 몹시 기다린다늘걸...

그렇게 1년이 지나 2002년이 되었단다.
작년에 엄마는 우리 아가를 목 빠지게 기다리느라 너무나 지쳐서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만나야 겠다고 굳게 결심했어.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가는 영영 널 못만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엄마는 1월이 지나고 병원에 갔단다.
그 동안 엄마에게 찾아왔던 한달에 한 번 손님의 방문일자를 꼼꼼히 적어서 가지고 갔어. 그리고 널 몹시 기다린다고 얘기했지. 너무나 기다려서 마음이 다 타버릴 지경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성심껏 엄마의 몸을 진찰해 주셨어.
"아무 문제도 없는걸요! 손님이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것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네요. 아가가 곧 올거예요."
"네...그렇지만, 노력한지 1년이 되었는데도...."
"엄마 아빠가 아가 오는 날을 못 맞췄을 수도 있죠~ 정확한 날을 잡아 줄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엄마 마음은 다시 설레임으로 방망이질 쳐지기 시작했단다. 한 순간에 조바심이 사라지고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어. 엄마는 정성껏 널 맞이할 준비를 했어.
아빠도 운동도 많이 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준비했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2월 2,3,4일이 좋은 날이라면서 하루도 놓치지 말라고 알려 주셨고 엄마와 아빠는 아쉽게도 3일날 밤 하루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단다. 아빠는 괜찮을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많이 아쉬웠어.
이틀이나 시간을 놓친 것을 말이야. 하지만 기대를 많이 했지.
이 번엔 꼭 만날 수 있기를....

엄마는 오로지 네 생각 뿐이었어.
잠을 자면서도 버스에 타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께도 은근슬쩍 네 얘기를 하면서 엄마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너를 마구 자랑하고 싶었어.
네가 태어날 날까지 막 손으로 꼽으면서 계획을 세웠지.
엄마는 영 젬병인 운동도 했어. 비록 헬스장을 다니는 것에 그쳤지만 엄마한테는 꽤나 고난이도(?)의 운동이었어. 네가 잘 착상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엄마는 무엇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지...
제발 아가야, 오너라...

하루하루가 얼마나 더디게 가던지 이제 겨우 3일이 지났는데도 당장에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하고 싶었단다.
일주일이 가고, 이주일이 갔어.
와, 엄마의 손님이 오는 예정일인 14일도 무사히 지나갔어.
엄마는 더욱 가슴이 방망이질 쳐졌단다.
가슴이 얼마나 벅차던지 약국에서 시약을 사다가 테스트라도 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손님은 때때로 불규칙하게 온기도 하니까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어. 하루,이틀,삼일,사일.......제발 손님은 오지 말고 아가야 오너라....제발...

그리고, 오늘....
아가야, 오늘.../
오늘도 엄마는 우리 아가 만큼 멋지고 예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어.
엄마가 일하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랫배가 싸하게 아프고 묵직해지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엄마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휴지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 갔단다.
....아주 적게,..한 방울의 빨간색...
휴지에 희미하게 묻은 ... 다홍색...

눈물이 쏟아졌어.
변기통 물을 내리면서 눈물을 훔쳤단다.
....아가가..또....안 왔구나....
눈물이 자꾸 쏟아질려고 해서 얼마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몰라.
그 다음은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엄마 혼자 남은 공부방에서,..
엄마는 청소를 하다말고 눈물을 쏟았단다.
빗자루질을 하다말고,...걸레로 바닥을 닦다 말고...방석을 정리하다 말고...눈물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서둘러 집에 왔단다.
아빠는 헬스장에 가서 아직 안와있었어.
엄마는 아빠가 오기 전에 얼른 자는 척이라도 하려고 얼른 씻었단다.
세수를 하려고 물을 틀었는데 또 다시 눈물이 쏟아지는거야.
이젠 들을 사람도 없으니 울음을 참을 필요도 없었어.
엄마는 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단다.
세수를 하는데 물로 세수를 하는 건지 눈물로 얼굴을 씻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어. 이를 닦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서 치약거품이 목으로 넘어가기도 했어. 나중에는 욕실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세수대야를 부여잡고 목을 놓아 흐느껴 울었단다.

나중에는 속상하다 못해 마구 화가 났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엄마 친구 셋은 결혼도 하기 전에 원하지 않는 아가가 생겨서 병원에서 수술하고도 오는데,..누구는 결혼하자마자 아가 생겼다고 불평하는데...누구는 아가가 하나도 아니고 둘,셋,넷도 있는데....엄마의 막내 이모는 40이 다 되었는데도 예쁜 아가를 또 낳았는데....
나는 뭐가 부족해서 남들 다 있는 아가도 아직도 안 생기고,
이렇게 기다리는데도 아가는 아직도 안 오고...
나는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아가 너는, 올 생각도 안하고...
엄마가 뭐가 부족하니, 너한테 못해줄 것 같니, 엄마가 마음에 안 드니...엄마 배가 너무 나와서 그러니, 엄마가 편식해서 그러니, 엄마가 아빠 말 안듣고 엄마 맘대로만 행동해서 그러니, 엄마가 가르치는 애들한테 나쁘게 대해서 그러니, 엄마가 아직 너무 어린애 같아서 그러니, 엄마가 의지가 약해서 그러니, 엄마가 싫으니....
왜,...아직도 안 오니....왜 그러니....

아빠가 왔어.
헬스장에 오지 않은 엄마를 이상히 여긴 아빠는 엄마의 벌개진 눈을 보고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
그런데 엄마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
아빠는 분명 괜찮다고 하겠지만 엄마만큼 가슴이 아플것을 알고있으니까 대답 대신 또 눈물이 쏟아지는거야.
아빠를 보니까 아까 흘린 눈물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더 큰 눈물방울들이 마구 쏟아지는거야. 목이 아프도록 아빠를 붙잡고 울고, 또 울었어....겨우.....울음을 참으면서,

"화장실 갔는데....흑흑...손님이 왔잖아....엉엉"

아빠는 한참을 으하하하하, 하고 웃더라.
엄마는 아빠 웃음이 아빠의 울음인 것만 같아서 더 눈물이 났어.
"그게 왜 울일이야. 뭐가 문제인데? 다음 달 또 있잖아. 그 다음 달도 있고. 내년도 있고, 내 후년도 있잖아. 뭐가 문제야? 죽을 병 걸렸어? 10년만에 아가 생긴 사람들은 다 죽어야겠네? 괜찮아. 우리가 더 노력하면 되지, 왜 괜히 울고 그래, 아기같이. 이그..."

....그럴까?
아가야, 엄마랑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라도 올거니?
정말이니?
엄마랑 약속해.
정말로 오겠다고. 대신 너무 늦게 오지는 않겠다고.
너가 너무 늦게 와서 엄마랑 아빠랑 너무 늙고 지쳐서 기운이 다 빠지기 전에, 꼭 오겠다고.
아니, 빨리 오겠다고.
다음 달에라도 얼른 엄마에게로 달려 오겠다고 약속해.
네가 오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엄마랑 아빠는 포기하지 않을거야.
한 달에 한 번 오는 손님이 불청객으로 또 찾아 와도 포기하지 않을거야. 그러니 제발 빨리 오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엄마아빠가 되지는 못해도 우리 아가에게 가장 좋은 엄마아빠가 될 자신은 있단다.
네가 올 때까지 엄마는 늘 네가 오기를 소원하고 있을게.

....보고싶다, 아가야....


2002. 2. 20. 한 밤 중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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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죄송합니다. 저 보다 더 어렵게 아가를 기다리는 너무나 많은 분들께 거듭 죄송합니다. 올해는 아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살거예요. 부디...올해를 또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