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애인
새벽2시면 잠이 깬다.
남편이 현관 앞에 있는 작은 방의 문을 닫는 소리에 깨어버린 것이다.
벌써 몇 일째인지 모른다.
이렇게 곤두선 신경으로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
잠은 깼지만 가만히 누워 작은 방의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린다.
보지 않아도 10분 정도면 곯아떨어질 것을 안다.
요즘 남편은 체력을 너무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실로 나와 앉는다.
아파트의 새벽은 생각처럼 조용하지 않고 여러 가지 소리들로 분주하다.
차가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
지하주차장의 경광등 켜지고 돌아가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
조금 더 있으면 신문 배달하는 사람의 계단을 뛰어내리는 소리,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
우유 배달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소리,
그저 멍하게 앉아 있는 나로서는 이처럼 활기찬 새벽이 부담스럽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아니면 내가 받고 있는 이 스트레스를 글로 써 볼까 하고 노트를 펴지만 이내 덮어 버리고 다시 멍 한 모습으로 앉는다.
"으이그, 저 돈 덩어리..."
애인에게 쏟아 붓는 돈은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 남편은 신이 나서 돌아다닌다.
화가 나지만 참아야 한다.
그나마 남편이 요즘 활력을 되 ?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섬 같은 외로움이 든다.
나는 이제 남편에게 활력소가 되지 못한다.
망망대해에 불모의 섬으로 남는 꿈을 꾸다가 깜짝 놀라 다시 잠이 깼다.
남편이 테니스를 치러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을 챙겨 신는 소리,
현관문을 여는 소리,
현관문 잠그는 열쇠 돌리는 소리...
남편이 나간 것이 확인되자 더듬어 시계를 보니 새벽6시이다.
조금 전에 다시 잠들었었는데...
"쳇, 언제부터 새벽운동이야."
"애인을 거느리자니 체력을 길러야겠지..."
"으이그, 이젠 더 못 참아. 오늘은 담판을 져야 돼."
궁시렁 거리며 일어나는데 몸에 기운이 쭉 빠진다.
"애인에게 쏟아 부 울 돈은 있어도 나에게는 보약 한 첩도 생각지 않으니...으이그..."
어느새 운동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샤워를 하고 있다.
굉장히 뜰 떠 있어 날개만 달아주면 날기라도 할 것 같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나간다.
"어이구, 저렇게 속마음을 숨기지 못 할까. 40이 넘었는데도.."
따르릉∼
아침부터 무슨 급한 용건인지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수화기를 드니 남편이다.
"여보, 그 거 만지지마. 알았지."
"오늘 하루만 더 손보면 끝나니까 아이들 못 만지게 해야 되."
전화를 끊고 남편이 작업실로 쓰고 있는 작은방으로 갔다.
아직 조립이 끝나지 않은 컴퓨터의 본체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그렇게 소중하면 옷이라도 입혀놓고 나가지 어젯밤 만지던 모습대로 그냥 나가면 어떡해."
아이들이 손이라도 댈까싶어 옆에 있는 케이스를 가져다 씌워 주었다.
"혼자서 옷도 입지 못하는 너를 질투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