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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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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줄 또 하나의 유산


BY cosmos03 2002-02-19

" 다녀왔읍니다 "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온 딸아이 녀석이 옷도 벗지 않은채
가방속에서 부스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놓는다.
아이가 꺼내 놓은것은 부피도 무게도 꽤나 나가는 한권의 책 이었다.
" 이게 뭔 책이니? "
" 엄마, 엄마! 이거 봐봐 여기에 엄마글이 실렸다 "
아이는 흥분에 달뜬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 웬 내글이 여기에 실렸니? "
그러며 아이가 펼쳐놓은 책 표지에는 6학년 1반 '유이화' 어머니
라는 글귀와 내이름 조순덕이 적혀있다.
내용을 눈을 따라 훑어가니
언젠가 아이를 통해 학교에 보낸 내가 쓴 '딸의 선물' 이라는 글 이었다.
" 어머나! 이게 책에 실렸네? "
" 응, 엄마 좋지? "
좋기도 하지만 활자로 나온 내글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 난 엄마가 자랑스러워 "
하는 아이의 말에 기분이 좋다.

책 첫 페이지부터 천천히 읽어가던 나는 6학년의 엄마글중에
유독 내글 한편만 실린것이 의아도스러웠지만
마치 6학년 학부모를 대표하는것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1학년의 병아리 꼬마들의 글부터 6학년의 고학년 글까지 읽다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글들을 잘 쓰는지...
아이들의 실력이라고 믿어지지않을 정도로 많은 느낌과 감명.
그리고 웃음을 받았다.
한편으론 내 아이와 비교되는 마음 숨길수 없엇지만...
각기 모두는 재능이 다 다르겠지 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해보려해도.
내 딸 아이도 한편쯤은 이렇게 신설학교의 '글수레' 창간호에
제 이름 석자가 올라왓더라면,,,하는 부질없는 욕심이 피워진다.

책에 씌여 있는 글들에 한참을 빠져있다보니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는것도 몰랐다.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드니 어느새 남편은 현관안에 들어와있다.
" 어머 당신 오는줄도 몰랏네 "
미안함에 얼른 일어나 남편의 옷 가지들을 받아걸고는
나 역시도 아이와 다를게 없이 책에 씌여있는 내 이름 석자와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을 보여주기 바쁘다.
대충 눈으로 훑어본 남편의 입에서는 기대와는 다른 말이 나옴에
잠깐은 섭섭해본다.
" 뭐 별거 아니고만. "
" 별거 아니라니? 자세히 봐봐. 6학년 학부모 이름이 그 책 어디에 또 있나 "
" 이야~ 얼마나들 글들을 안 써 보냈으면 달랑 당신이름 하나뿐이냐? "
" 어떻게 같은 말을 해도 그리하냐? 나 혼자만 보낸게 아니고
다른 엄마들도 보냈겠지. 그중에 내 글이 실린거지. "
" 꿈보다 해몽이 좋다. "
그리고는 한쪽으로 밀어버린다.
나는 적어도
" 이야~ 당신 대단하다. 6학년 엄마의 대표글이 ?碁?"
그 정도의 말을 기대했었는데...
꼭 그렇게 말을 해야만 자기 체면이 서는것인지.
으이구~ 저 화상.
속으로야 서운했지만 아까부터 혼자 좋았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나 둘...
아이에게 물려줄 유산을 난 차곡히 모으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야 말로 가장 귀한 유산이 아닐까?
아이가 제일처음 들어간 초등학교에서 받은 마지막 선물이 될것이고.
다음...이다음에 초등학교시절을 추억할수 있음에 한없이 소중한것인데...
남편의 무관심과 무시.
나 역시도 무시하고는 그냥 아이의 물려줄 소지품에
고이고이 간직하려 예쁘게 포장을 해 두었다.
아직 채 다 읽지는 않았지만.
행여 때라도 탈까 싶은 마음에 포장지를 씌워 놓은것이다.
이것은 또하나의 남겨줄 유산이 될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