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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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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나쁜여자다


BY oldhouse 2002-02-18

설 전후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드뎌 남편에게 퍼붓고 말았다.
명절이면 흔한 얘기꺼리로 등장하는 일방적인 주부가사노동이나 시댁, 친정에 얽힌 불공평도 아닌 갑자기 닥친 가족사의 변화가 원인이랄까.

지난 여름 집 근처에 살고있던 형님내외가 열흘간격으로 돌아가셨다.
형님은 암, 시아주버니는 심장마비.

여름 한낮,
너무 고요하고
너무 작열한 태양 아래
잠시 아득해지는 혼절에 가까운
비몽사몽같은 무기력이
모든 가족들에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에게 큰 책임감이 떠 안겨지는 출발이기도 했다.
조카들이야 다 자란 성년으로 스물둘의 아가씨요, 스물다섯의 군복무를 마친 복학을 앞둔 청년으로 안심이 되었지만
자식이나 조카나 늘 염려스럽고 애뜻하기는 매일반.

가끔씩 반찬을 챙겨주는 일외엔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그 후로 모든 시선에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던것은 사실이다.
가까이 살면서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고보니 행여 곱지못한 소릴들을까 나의 염려와 바람만큼 잘 커나갈수있을까,,,,,,

그렇게 몇달을 지내다보니 매사 소심한 내 성격탓도 있겠지만 못마땅한 점들이 눈에 띄는게 날 괴롭게 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이들의 붙임성있는 태도와 인사가 너무 부족한것이 첫째였다.

형님 살아 생전 나와 마주앉아 자식 부탁하면서도 제일 맘에 걸리는 것 또한 그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이해해야지 싶으면서도 곧이 곧대로인 그들을 볼때마다 이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걱정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 명절에만해도 그렇다.
형님내외분의 제사준비 몫은 자연 내 몫이되었다.
지난 추석날때도 제사준비로 시장보기까지 다 끝내났는데 조카녀석들은 아무 얘기도 없이시골 할머니댁 즉 시댁으로 떠나버렸다.
다가오는 명절 안부 전화 한통만 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텐데,,,,
무척 괘씸하고 한심스러웠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미리 불러다 저녁식사도 함께하면서 간단한 준비일망정 통보를 했다.
그런데 자식된 입장에서 '제사 지내야되요?' 라고 의문문을 구사했다.
물론 한번 죽어지면 끝이고 제사상의 의미 굳이 현실성있는 일은 못된다고치자,,,,,,,


그 조상
그 부모 없이
어찌 잘난 내가 존재 할 수 있을 것인가.

먼먼 웃대 조상 제사상 차리라는 것도 아닌 당대 자식의 입에서,,,,

너무 경악스럽고 실망스러웠다.

낑낑대며 혼자서 하루 종일 제사 음식을 장만했다.
하지만 조카 애 둘 중 누구하나 마늘한쪽이라도 까겠다고 전화 한통화 하지 않고 하루가 저물었다.

차려놓고 보면 별거아닌 것인데 너무 힘겨웠다.

사실 난 관절을 앓고 있어 칼질조차 버겁고 일이 겁난다.
밤이 되자 컵을 쥐고 물조차 마실수 없도록 손이 아팠다.

남편과 애들편에 음식을 들려 보내고 혼자서 섣달 그믐날을 보냈다.

새벽 다섯시에 큰집엘 갔다.
보내진 음식들은 풀려지지도 않은채 그대로 베란다에 놓여있었다.
심사가 뒤틀린 내 입에선 '베란다에서 뒹굴고 있었다'라고 표현함이 속시원할듯한 일이었다.

제사를 마치고 애들 방에 들어가니 새컴퓨터가 눈에 띄였다.
자세한 내막이야 어찌?永怜??한푼이 아쉬운터에 업그레이드해서 쓸 생각은 안하고 덜렁 사들인 그 처사가 못마땅했다.
충분히 그만한 능력이 되면서도 왜 그리 생각이 깊지 못한 것인지,,,

하지만 더 나를 짜증나게하는 일이 있었다.
복학을 한 조카녀석이 엉뚱하게도 삼학년이 아닌 이학년으로 다시 등록을 마쳤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일년을 다니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일인데 덜렁 다시 이학년이라니,
더 기가 막힌것은 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 그것도 남편의 입을 통해 듣게 된것이다.

옆의 형제간들이 제아무리 걱정하고 뒷바라지를 하면 뭐할까 싶었다.
그런때 상의 한마디 해 오지 않는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들은
과연 그 애에겐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다.

명절을 보내고나니 한가닥 매듭이 지어지기는 커녕 스트레스가 더 쌓여 맥이 빠졌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되고 말하고 싶지 않아도 조잘거려야되는 때와 장소가 있고 이런 것을 터득해 가는 것이 결코 타협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세상살이가 그리 녹녹지않다.

이런 것을 처세라고하는 것인지,,,,

남편은 아직도 이런 말을 내뱉는 내가 못마땅한지 조카애들 역성만 든다.
'난 그 나이땐 더 철없는 행동했다'
'우리애들도 그렇게 버릇이 없지 않느냐'는 등

아, 과연 이런 내가 나쁜 여자인가요
생색내는 여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