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졸업앨범을 찾아왔다.
가슴이 너무 크게 나와 내가 한마디를 하니 아이는 입을 대빨로 내민다.
" 헤이~ 젖순이 "
라고 말이다.
눈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얼굴 하나가득 짖고 있는 미소가 너무도 어여쁘다.
내 새끼라서 일까?
내 아이가 받아온 첫 졸업앨범.
소중히 간직해야지.
내겐 졸업장이라던가 졸업앨범.
학창시절과 연관지어 이름지을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내게도 아주 없기야 했겠냐만.
차곡차곡 엄마께서 모아둔 졸업장과 상장들...
그리고 앨범 사진 기타등등.
하다못해 엄마는 작아지고 낡아진 교복조차도 버리시지를 못하고 모아두신 분이셧는데.
내 고집과 작은 오빠의 아집으로 인해 한순간
학창시절의 내 모든 추억과 꿈은 재가되어 날라갔다.
출생의 비밀이 무어라고.
낳아준 엄마가 아니면 어떻고
배다른 오빠들이면 어떻다고.
심한 방황을 했었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전학을 왔지만 적응을 할수 없었던 나는
야금야금 보충수업비와 학용품값을 용돈으로 날리다가는 급기야는
큰 액수인 수업료까지 학교에 내지 않은채 흐지부지 내 개인의 용돈으로
날려 버리고 말았다.
작은오빠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었는데
여동생 하나 있는거 어떻게 하던 학교공부는 시켜야한다고
방황하는 나를끌고 일부러 지방 발령을 받아서는 대전까지 내려오게 된것이다.
남들은 모두 서울로 올라가지 못해 안달들을 하는데
작은오빠는 결국 동생을 위해서 희생을 하신 것이다.
바늘도둑이 소 도둑되고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고...
그렇게 조금씩 학교에 낼 돈들을 집어쓰다가는
점점 오빠의 안 주머니에 손을 대게 되었고.
엄마의 반찬값이 들어있는 손 지갑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딱히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
그것은 반항이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속을 썩혀 드릴수 있나?
어떻게 하면 내가 좀더 망가질수 있나?
처음에는 모르는척을 하신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셧던건지.
그랫던 두분이.
어느날은 나를 조용히 부르는 오빠의 목소리에 무릎을 꿇고 마주 앉으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빠는 질문을 하였다.
" 학교에서 회사로 연락이 왔더라 "
" 왜? 무슨일로? "
속으로야 뜨끔 했지만...
시치미를 뗀 나는 천연덕 스럽게도 오빠에게 물을수 있었다.
" 너...수업료 어떻게 했니? 그리고 보충수업도 안 받는다고 하던데... "
" 수업료는 친구들하고 다 써 버렷고 보충수업비도 역시 그랫어 "
담담히 대꾸하는 내게 그냥 오빠는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가까스로 참고 자기의 양 무릎위에 올려 놓은것을...
" 다시 내 줄테니 영수증 꼭 챙겨오고 학교 열심히 다녀라 "
오빠는 자기자신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끈쥔 오빠의 주먹에서도 느낄수 있었지만...
잠긴 목소리가 가늘게도 떨리고 있었다.
" 알았어 "
짧게 대꾸한 나는 그 자리를 물러 나왔지만.
결국은 다시 받은 그돈조차도 학교에 내지를 않고
몇번인가를 선도들한테 찍히고 나니 다음부터는 학교 그 자체도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버렸다.
학교를 간다고 집에서는 나갔지만 난 학교를 가지 않았다.
문제아 친구들과 모여 극장으로 공원으로 그렇게 헤메고를 다녔었다.
그러던중 학교에서는 자퇴서가 날라오고...
그 얄팍한 눈 속임이 과연 얼마나 갈수 있었을까?
내나이 겨우 열 일곱 인것을...
머지않아 그 모든 사실들을 알아버린 오빠는 많은 분노를 터트렷다.
엄마의 눈물어린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소지품을 모두 한꺼번에 마당 한 귀퉁이에 쌓아놓고는 최종적인
확답을 내게 요구했다.
" 마지막으로 네게 한마디만 묻자 "
"......"
" 학교...어떻게 할래? 졸업은 해야하는거 아니니? "
" 아니, 안다녀 안다닐래 "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빠는 부엌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웬 통을 하나 갖고 나온다.
이미 오빠는 준비를 해둔 상태였나보다.
작은 통에서는 석유냄새가 진동을 햇고...
석유통을 들은 오빠의 팔은 보기에도 딱하게 심하게 흔들렷다.
" 이걸 여기에 부을것이다. 이래도 학교를 안다니겠니? "
" 응 안다녀 "
생각할것도 없이 대답을 해 버리자 오빠는 그 석유통을 거꾸로 들고는 쏟아붓기 시작한다.
좔좔좔좔....콸콸콸콸....
망서림없이 기름은 강한 냄새를 피우며 내 소지품 위로 쏟아져 내렸다.
엄마는 거의 혼절 직전까지 가셧지만.
나설수도 나서지도 못 하시고는 그냥 아들과 딸년의 하는 양만을 바라보셧다.
흐느낌이 통곡으로까지 가도록 울면서 하시는 말씀이
" 순디가 무조건 잘못햇다고 빌고 핵교는 다녀야한다 "
하지만....
이미 내겐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싫었고.
학교도 급우들도 선생님들도...
내 곁에 있는 가족까지도.
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낸 오빠는 한순간에 불을 붙여버렸다.
순식간에 기름부은 옷 가지들과 책 보따리들은 미친듯 화염을 뿜으며 타 올랐고.
그제서야 내눈에서도 한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뿐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내나이 열여덟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살아왔던 내 인생이 그렇게 불살라지고 있었다.
빠른 시간에 모든것은 재가 되었고.
망연자실 서 계시는 엄마를 뒤로 하고는 나는 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의 그 일이 내 최종 학력으로 남아버렷고.
학창시절의 내 모든 흔적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채.
그저 내 기억으로만 묻혀버렸다.
아이의 초등학교 앨범을 보니.
그때가 후회까지는 아니어도 그냥...착잡해진다.
엄마의 앨범을 묻는 아이에게
난...침묵할수 밖에.
조금더 크면 아이는 알수 있을까?
엄마의 그 힘들고 길었던 방황의 시간들을.
아니, 맹목적인 반항을.
딸아이의 졸업앨범을 바라보고 있자니.
철없던 내 사춘기의 방황이 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보았다.
내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학창시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