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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18


BY 후리지아 2002-02-16

바람이 달랐습니다.

아마도 봄이 정말 오려는 모양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몇일전까지 보이던
물오리떼들이 한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거센 물결위에서 둥둥 떠다니던 오리들이 모두 한강보다
좀더 추운곳으로 날아간 모양입니다.
물가는 잔잔한데...잔잔해서 그럴까요? 쓸쓸해 보이더군요.

그래요!
우리들 마음도 진정 봄이 되어 춥지않고 따뜻했으면 합니다.
설연휴동안 시댁을 하루 다녀온것 말고는 내내 방안에서
지냈습니다. 물론 갈곳도, 오란곳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을 정리, 정돈하는 시간이 필요
하단 마음에서 였지요.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니 그것도 걱정이고, 대학생이 한명 더 늘어
그것도 걱정이고, 생각하는 것마다 걱정 아닌것이 없었지요.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진다는 옛어른들 말씀처럼 오늘까지
살고 있습니다.

설날아침 작은녀석은 할머니댁에서 문자메세지를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쯤 그런것 하지 않으면 안돼겠냐는 어미를
바라보며 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 어머니가 몇년전에 유방암 수술을 하시고 투병중이신데
겨울이라 면역성이 떨어지셔서 설인데 큰댁도 가지 못했고,
떡국은 물론 부침개도 못먹었다는 메세지란 것입니다.
저도 잘 아는 작은녀석 친구지요, 가끔씩 좁은 저희집에 놀러도오고
항상 샐샐거리며 웃은 녀석인데...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일날 고속버스 상행선을 예매해 갔기 때문에 우린 점심을
먹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승용차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탄 버스는 전용차선을
씩씩하게 달리고 있어 지루하지 않았지요.
몇년전만해도 저흰 승용차대열에 끼여 있었는데...
추억이라 할 것도 없는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니, 그때도, 지금도
시댁을 향하여 명절을 보내는 것은 변하지 않고 하고 있구나...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없어도 시댁을 다닐 수 있는
용기가 있으니까요.
어른들은 아이들 잘 키우고 살아주어서 고맙구나 라고 말씀들
하시지만, 제가 원하는 말을 그런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추석명절에 시어머님께서 좋은사람 있으면 재혼을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때 시아주버님, 시동생들은 어머니께
화를 냈습니다. 화를낸 속사정은 제가 다 알 수 없지만...
한가지는 알것 같았습니다. 아이들 문제겠지요...

정말은 제가 나쁜 며느리고, 나쁜제수,형수 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안고 시댁을 찾아 간다는 것이 말입니다.
전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와 함께하는 날까지는 다음번 명절에도
시댁엘 갈것입니다.

서울로돌아와 저희는 친정엘 갑니다.
어머니도 계시고 않고, 오빠도 돌아가신 친정입니다.
올캐언니는 친정어머니도 계시지 않고 남편도 없으며 더구나
여자형제가 없는 절 늘 안쓰러워 하십니다.
된장, 고추장을 담그어 주시는 친정올캐입니다.
오빠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으시기에 시누이의 사정이 더 딱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오빠들은 사정이 있으셔서 못오시고 조카들만 모여있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고...언니는 제게 주실 여러가지를 챙기십니다.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누어 주시려고...
김치, 갈비, 전유어등을 쌓아 챙겨놓으시고, 다른 봉지를 하나
내미십니다. 작은녀석이 친구에게 가져다 주려고 부탁을 했다고...
할머니댁에선 어려워서 말을 못하겠더라고...
외숙모께 말씀드리면 챙겨주실것이라 생각을 했다더군요.
그랬습니다. 같은성씨를 쓰는 본가인데, 더 어렵습니다.

장가갈 나이가 지난 장조카부터 제 작은녀석까지 모이니
넓은 거실이 가득합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맥주를 한잔씩 하자고
합니다. 차려진 상가에 앉아보니, 이젠 세대교체가 되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제 형제들은 보이지않고, 사촌으로 맺어진 조카들과
제여식둘이 모이니 제 자리는 없어도 될 듯 했습니다.
한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전 자리에서 일어났지요.
고모는 피곤하니 집에가서 쉬어야 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오는 거리에서...행복했습니다.
어느새...저렇게 많이 자라 저희들끼리도 재미난 명절을 보낼 수
있구나 생각을 하니 이젠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다는 것은...
언제인지 모르게 나이가 먹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조금만 더 있다가 어른이 되어도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