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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때쯤이면 그곳으로 가고싶다.


BY 지란지교 2001-03-17

이젠 이 복잡한 거리와 차들의 수없는 행렬, 이어지는 소음이 너무
싫다.

결혼하면서 참 좋다고 생각했던것은 나에게도 이렇다할 [시골]이라는
것이 생긴것이었다.
음력 4월이면 어머니생신이 들어 있었는데 양력으로 5월이니,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울때인가....
난 한가로이 새풀이 돋아난 논두렁길을 남편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네잎클로버도 찾고, 따사로운 햇살에 온 몸을 맡기며
[시골]의 달디단 공기와 정적을 맘껏 누리리라 상상하며 좋아했었다.

하여 시댁으로 향하는 나의 첫 마음은 설레임과 기대가 동반한
즐거운 마음 그 자체였다.
시댁에 당도하자 마자, 맨발로 뛰어나오시는 어머님과 형님, 조카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계절]이 너무 좋음을 이야기 했다.
(난 내 맘속의 계획으로 더 즐거웠지만)
하지만, 나의 상상과 기대는 너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무지였다.
큰형님과 작은 형님, 뒤늦게 당도한 세째 형님, 나...이렇게 며느리
4명은 사명을 가지고 차출된 소수정예의 병사들 마냥 부엌에서
허리 필 사이없이 지지고 볶고, 끓이고, 굽고, 데치는 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생신상을 차려놓고 축하인사드리며 마을의 할머니, 아주머니등이
오시는데 일정한 시간에 오시는것이 아니라, 한 사람 오셔서
상차리고 치우고 나면, 또 한사람 오시고...
차려드리고 나면 다시 또 한사람...
약속시간이란 개념이란게 도데체 존재하지 않는것 같았다.
분명 아침을 드시고 가신 할머니 같은데 점심때 또 오시기도 해서
형님께 여쭤보니'여긴 생일이면 삼시세때 다와서 자신다네.'
하신다..음...
젤 졸병이었고, 서투르기짝이 없는 지원병이던 나는 불만과 불평을
입밖은 커녕 아예 마음 한구석에라도 숨겨놓을 수가 없었다.
큰 형님은 그 일은 거의 20년 이상 해오신 분이 아니신가...

어찌 되었건 근 이틀이상을 부엌에 매달려 있으면서 이 좋은 봄볕을
언제 온몸으로 느끼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기회를 엿보면 당연히 그 차례가 와 줄줄 알았는데, 일이란게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고 오히려 형님은 형제들이 오랜만에
모였으니 이걸 해 먹인다, 저걸 해 먹인다 하시며 부엌에 온갖
재료들을 꺼내 놓으셨다...

삼일동안 그 부엌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올라가야 할 날이 다가왔다.
아...정녕 이대로 가야만 하는가....
저 봄볕은, 저리도 처절하게 나를 부르는데...
삼일내내 설겆이통에 부르튼 손을 내려다보며...이대로 가야만 하는가...
나의 첫[전원에 대한 동경]은 이렇게 막이 내리고 마는가...

올라오는 길에 그이가 말한다.
당신 기대처럼 하지 못해서 어쩌냐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다면 어쩌냐고...
다음엔 맘먹고 핑게라도 대고 부엌에서 나를 빼돌려 논두렁 밭두렁을
실컷 걷게 해주마하고 약속을 한다...

허나,
어디까지나 그건 희망사항이었고, 내가 동경하는 [전원생활의 그림]
으로 밖에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님 기일이 이때쯤인데, 이틀정도를 예정하고
출발하니 밤에 도착해서 제사드리고, 아침이면 출발을 한다.
봄볕을 따사로이 쬐며 논두렁 밭두렁을 걷는 것은 아예 계획에
넣을 수도 없다.

언젠가는 여름휴가를 시댁으로 정하고 [전원생활]의 꿈을 펼치려
갔었다.
여름내 시골에서는 일도 많고, 형님은 한시도 쉬지 않으신다...
땡볕이 내리쬐는 논두렁을 도저히 걸을 자신이 없고(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른 저녁을 먹는 관계로 준비해야하고...
여름엔 좀 그림이 금방 안 떠오른다..

어쨋거나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그 놈이 오면 재빨리 포착하리라 다짐한다.
다시 시작하는 저 찬란한 봄의 햇살.
올해는 꼭 논두렁에 아들녀석 둘을 앞세우고 그이와 나는 뒤에
좀 쳐져서 한가로이 거닐며, 노래도 흥얼거리리라...
꼭 이루리라...

그리고,
그이와 조금씩 조금씩 [전원에서의 노년]을 준비하리라..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마음껏 거닐 수 있는 검은 흙이 지천으로 있는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하리라...